조나단 헨슬레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토마스 제인이 마블 코믹스의 가장 처절한 안티 히어로로 분한 《퍼니셔》는 가족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된 프랭크 캐슬의 고독한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액션 시네마다. 단란했던 일상이 마피아 조직의 무자비한 학살로 파국을 맞이하고, 사방에 선혈이 낭자한 피의 단죄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장르적으로 명확한 타격감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작 특유의 묵직하고 서늘한 복수극의 텍스처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대신,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연출을 남발하며 시네필에게 짙은 아쉬움을 남기는 파편이다.

줄거리: 무참히 짓밟힌 일상, 법이 포기한 자들을 향한 단죄의 서막
가족을 위해 위험천만한 언더커버 임무를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FBI 요원 프랭크 캐슬(토마스 제인). 하지만 그의 마지막 작전 중 거대 마피아 조직의 보스 하워드 세인트(존 트라볼타)의 아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분노한 하워드는 프랭크의 은퇴 기념 가족 모임이 열리던 섬을 급습하여 그의 아내와 아들은 물론, 가문 전체를 무참히 학살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프랭크는 법과 공권력이 악인들을 처단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스스로 신의 징벌을 대행하는 '퍼니셔(처단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해골이 그려진 방탄조끼를 입고 하워드 세인트의 조직을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한 정교한 복수의 덫을 놓기 시작한다.

결말: 불타오르는 복수의 불길, 처절하게 무너지는 마피아 제국 (※ 스포일러 주의)
프랭크는 하워드 세인트의 아내와 오른팔을 이간질하여 조직 내부의 불신을 조장하고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심리전을 펼친다. 뒤늦게 파멸의 덫에 걸렸음을 깨달은 하워드는 괴수 같은 킬러 '더 러시안'을 보내 프랭크를 죽이려 하지만 치열한 사투 끝에 실패한다. 마침내 하워드의 본거지를 단신으로 급습한 프랭크는 폭약과 총기로 가득 찬 피의 축제를 벌이며 조직원들을 차례로 단죄한다. 아내와 부하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잔인한 진실을 하워드에게 일깨워준 프랭크는, 그를 달리는 자동차 뒤에 매달아 폭발하는 가스통 불길 속으로 밀어 넣으며 완벽한 복수를 완성한다. 불타오르는 하워드의 저택을 뒤로한 채, 프랭크가 도시의 밤거리에서 악인들을 향한 영원한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데어데블 속 퍼니셔의 그늘, 시대를 감안해도 극을 해치는 엉성한 코믹 요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데어데블》 시즌 2와 단독 시리즈에서 존 번탈이 보여준 그 압도적이고 서늘하며 자비 없는 퍼니셔의 강렬함을 통해 이 캐릭터를 처음 접했던 터라, 2004년작 영화 버전을 재생하기 전 품었던 기대치가 상당히 컸던 타이틀이다. 하지만 막상 상영기를 끝까지 돌려보고 난 뒤의 소감은 한마디로 '영 아니네'라는 씁쓸한 실망감뿐이었다.
이토록 아쉬운 감상이 남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우선 2000년대 초반이라는 제작 연도에서 오는 '시간의 간극'이 생각보다 유독 크게 다가왔다. 현대의 웰메이드 다크 히어로물들이 보여주는 묵직한 완급 조절과 정교한 액션 시퀀스에 눈이 익숙해져 있다 보니, 2004년작 특유의 투박하고 평이한 연출 호흡이 다소 느리고 지루하게 읽힌다. 진짜 극의 몰입을 완벽하게 깨뜨리는 치명적인 결함은 영화 드문드문 뜬금없이 삽입된 어색한 코믹적인 요소들이다. 프랭크가 머무는 허름한 아파트 이웃집 캐릭터들의 유치한 만화적 설정이나, 거구의 킬러 '더 러시안'과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마당에서 흘러나오는 쾌활한 오페라 음악 등은 하드보일드 복수극이 지녀야 할 날카로운 긴장감을 완전히 희석시켜 버린다. 차갑고 처절해야 할 퍼니셔의 세계관과 헐거운 슬랩스틱 코미디의 불협화음은 장르적 쾌감을 갈구하던 시네필의 눈에 그저 엉성하고 어색한 흠결로 비칠 뿐이다.

넷플릭스 《데어데블》이 정립한 퍼니셔의 묵직하고 잔혹한 아우라에 비하면 한참 미치지 못하는 2000년대 초반의 아쉬운 파편. 시간의 간극에서 오는 투박한 연출과 더불어, 처절한 하드보일드 복수극의 흐름을 툭툭 끊어먹는 드문드문한 코믹 요소들의 어색한 난입이 장르적 탄력을 완전히 떨어뜨린 안타까운 안티 히어로 무비.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하워드 세인트의 저택을 집어삼킨 폭발의 불길이 꺼지고, 무거운 발걸음의 프랭크를 비추며 영사가 끝났다. 이번 상영은 국내 OTT 플랫폼인 웨이브(Wavve)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라이트한 호흡으로 아카이브를 뒤적이다 선택된 케이스다. 소장용 물리 매체 패키지가 선사하는 묵직한 소유욕이나 완벽한 스펙의 소장 맛은 덜할지언정,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과거의 문제적 타이틀을 터치 한 번으로 가볍게 찾아내어 연출적 오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스트리밍 아카이빙이 가진 나름의 유용한 이점이다. 다만 드라마가 정립해 놓은 정교한 캐릭터 스펙에 취해 과거의 필름을 역추적했다가 마주한 세월의 이질감은 시네필의 라이브러리 안에서 다소 깊은 피로감을 남긴다.
비록 서사 구조와 액션의 깊이 면에서는 진한 아쉬움과 엉성함을 남긴 실패작에 가까울지라도, 가족의 몰살과 피의 처단이라는 자극적이고 하드코어한 플롯의 외피만큼은 선명하기에 이 타이틀은 예정대로 [어쩌다 피칠갑] 카테고리 랙에 수감한다. 라이브러리 안에서 완벽한 명작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장르 영화가 유치한 완급 조절과 어색한 유머의 코드를 잘못 결합했을 때 도달하는 기괴한 불협화음의 반면교사적 기록물로 박제해 둘 것이다. 기대치와 결과물의 거대한 격차에 씁쓸해진 깊은 밤의 재생을 무겁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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