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마다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마성의 키워드들이 있다. 나에게는 우주, 외계인, 괴물, 고립된 폐쇄 공간, 악령, 좀비 같은 소재들이 그렇다. 이런 요소들이 하나라도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꿀잼'은 보장된다. 스토리가 다소 허술하거나 설정에 빈틈이 있더라도, 정말 구제 불능의 엉망진창만 아니라면 이 폐쇄적인 공포가 주는 텐션 자체를 온전히 즐기게 된다. 폴 앤더슨 감독의 1997년작 《이벤트 호라이즌》은 바로 그 완벽한 취향의 교집합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훌륭한 수작이다.

존 카펜터의 《괴물(The Thing)》이 인도한 심우주
이 영화를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알고리즘의 기막힌 인도 덕분이었다. 내가 가장 열광하는 밀실 크리처물의 교과서이자 영원한 마스터피스, 존 카펜터 감독의 1982년작 《괴물(The Thing)》의 연관 영화로 이 작품이 당당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극의 고립된 기지에서 미지의 존재에 의해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던 《괴물》의 그 서늘한 폐쇄 공포증이, 이 영화에서는 광활하지만 도망칠 곳 없는 심우주의 버려진 함선 안으로 무대만 바꿔 완벽하게 이식되어 있다.

우주, 밀실, 그리고 악령이라는 '꿀잼 보장' 치트키
SF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의 알맹이는 지독한 오컬트이자 고어 스릴러다. 워프 기술을 테스트하다 우주의 끝이 아닌 '순수한 악(지옥)'의 차원으로 넘어가 버렸다는 설정은, 단순한 외계인의 습격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고립된 우주선이라는 밀실 안에서 대원들이 각자의 끔찍한 트라우마와 환영에 시달리며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적 쾌감을 단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스크린에 쏟아낸다.

[어쩌다 피칠갑]에 걸맞은 핏빛 미장센
지옥의 기운에 잠식된 함선 그 자체가 거대한 악령으로 변모하는 후반부는 시각적인 타격감으로 가득하다. 중세 유럽의 고딕 양식을 연상시키는 기괴하고 장엄한 중력 구동기 코어 룸, 지옥을 경험한 이전 승무원들의 끔찍한 비디오테이프 기록,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엔 눈이 필요 없어(Where we're going, we won't need eyes to see)"라며 스스로 두 눈을 파낸 위어 박사(샘 닐)의 모습까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선혈과 바디 호러적 연출은 장르 팬의 갈증을 완벽하게 해소해 주는 핏빛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우주, 외계인, 괴물, 고립된 곳, 폐쇄 된 장소, 악령, 좀비 등등 내가 일단 다른 어떤 소재들 보다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다. 영화에 이런 요소가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꿀잼 보장. 이 영화가 바로 딱 그런 영화였다. 어쨌든 조금은 허술할지라도 정말 엉망진창이 아닌 이상 그동안 이런 소재들의 영화는 다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게 바로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The Thing, 1982)>이라는 영환데 참고로 이 영화의 연관영화로 뜬 게 마로 이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영화였고 그래서 본 것이다."
좋아하는 재료를 전부 때려 넣었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이 미친 우주선이 선사하는 핏빛 광기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즐거웠으니까.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이런 기념비적인 컬트 호러는 감상이 끝난 직후 특유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식어버린 화면을 뒤로하고 익숙하게 노션(Notion)을 열어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를 띄운다. [어쩌다 피칠갑] 장르 탭을 설정하고 《이벤트 호라이즌》의 타이틀을 박아 넣는다. 부티크 레이블에서 발매된 해외판 4K UHD나 한정판 스틸북이 있는지 디아볼릭 DVD(DiabolikDVD) 같은 사이트를 슬쩍 기웃거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 비고란에는 '존 카펜터의 남극 기지를 우주선으로 쏘아 올린 완벽한 지옥도'라고 타이핑하며, 나만의 호러 컬렉션 아카이브를 든든하게 채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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