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선의라는 얄팍한 문명의 가면이 아마존의 거대한 원시 정글 한복판에서 문자 그대로 잘게 씹히고 뜯겨 나가는 파국을 목도한다. 일라이 로스 감독이 고전 식인종 영화 《카니발 홀로코스트》에 바치는 지독하고도 기괴한 헌사 같은 이 작품은, 환경을 구하겠다고 대책 없이 덤볐다가 부족의 식재료로 전락해 버리는 대학생들의 잔혹한 잔혹극이다. 플랫폼의 바다를 떠돌다 마주한 이 핏빛 가득한 타이틀은, 고어 장르 특유의 원초적인 공포와 예측 불허의 파국을 한 화면에 담아내며 '어쩌다 피칠갑'의 소용돌이 속으로 관객을 사정없이 밀어 넣는다.

줄거리: 선의로 포장된 문명, 정글의 식탁 위에 놓이다
뉴욕의 대학생 저스틴은 아마존의 원시 부족과 밀림을 보호하겠다는 거창한 명목의 친환경 환경운동 단체에 가담한다. 이들은 정글 개발 현장에서 몸을 쇠사슬로 묶는 극단적인 시위를 벌이고, 이 과정을 SNS로 전 세계에 생중계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승리감에 도취해 뉴욕으로 돌아가던 비행기가 정글 한복판에 추락하게 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구하려 했던 바로 그 아마존의 미접촉 원시 부족에게 붙잡힌다. 그러나 그 부족은 문명의 잣대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외지인을 사냥해 먹는 잔혹한 식인 부족(야해족)이다. 평화롭고 순수할 것이라 믿었던 정글의 환상은 그들을 가둔 우리 앞에서 무참히 깨져나간다.

결말: 위선의 종말과 현실로의 씁쓸한 귀환 (※ 스포일러 주의)
포로수용소 같은 우리에 갇힌 대학생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살아있는 채로 눈이 뽑히고 사지가 절단되어 부족의 식탁에 오른다. 환경운동 단체의 리더였던 알레한드로는 정글 보호라는 대의명분 이면에서 사실 사익과 기업의 돈을 챙기려 했던 위선자였음이 드러나고, 결국 정글의 개미들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주인공 저스틴은 또 다른 원시 부족의 침략으로 기지가 초토화된 틈을 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어린 부족 아이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해 문명 세계로 복귀한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저스틴은 청문회에서 야해족이 자신을 구해준 은인들이며 그들은 식인 부족이 아니라고 거짓 증언을 한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부족을 지킴으로써 아마존 정글 개발을 막아내고 환경 운동의 아이콘이 되는 기괴하고 역설적인 엔딩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미지의 세계가 주는 원초적 공포, 그리고 선입견의 장막
타인의 감상평이나 줄거리를 미리 읽지 않는 것은 스크린을 마주하기 전 나만의 고유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사전에 입력된 타인의 관점은 감상자의 인식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여 장르 본연의 궤적을 즐기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번 감상은 그 단단한 정보의 덫에 완전히 걸려들고 말았다. 작품을 접하기 직전 눈에 들어온 "타 문화에 대한 맹목적 혐오 조장"이라는 날카로운 문장은 스크린 전체를 규정하는 거대한 색안경이 되어 러닝타임 내내 시야를 완강하게 통제했다.
어떻게든 이 부자연스러운 시선을 걷어내려 했지만 실패한 것은, 일라이 로스 감독의 전작이 남긴 공포의 학습 효과가 그만큼 지독했기 때문이다. 동유럽 여행의 심리적 장벽을 세우고 타인의 호의를 무조건 의심하게 만들었던 《호스텔》의 악명은 여전히 뇌리에 단단한 트라우마로 작동하고 있었다. 감독은 이번에도 아마존의 미접촉 부족을 '식인종'이라는 극단적이고 야만적인 장치로 스크린에 올려놓으며, 낯선 세계에 대한 인간 근원적인 무지와 공포를 무자비하게 헤집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장르가 기획한 피칠갑의 카타르시스에 순수하게 몰입하기보다, 먼저 주입된 선입견의 프레임과 타 문화에 대한 두려움의 장벽이 먼저 와닿은 씁쓸한 감상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아마존의 짙은 녹음 위로 선혈이 낭자하던 지옥도가 끝나고, 위선 가득한 청문회장에서 덤덤하게 거짓 증언을 늘어놓는 저스틴의 모습을 끝으로 OTT 플랫폼의 스트리밍 재생을 종료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클릭했던 스트리밍 화면은, 역설적이게도 영화를 보기 전 접한 단 한 줄의 정보가 감상에 얼마나 치명적인 선입견의 늪을 만들어내는지 증명하는 씁쓸한 확인서가 되었다. 비록 압도적인 고어 연출과 정글의 원시적인 시각적 타격감만큼은 장르물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전작이 심어놓은 거대한 두려움의 장막 탓에 온전히 시네마틱 쾌감으로 수용하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연다. 초반의 평화로운 환경운동극을 비웃듯 후반부를 선혈과 식인 풍습으로 물들이는 골 때리는 연출의 타격감을 존중하여, 고민 없이 [어쩌다 피칠갑] 카테고리에 할당한다. 비고란에는 'OTT로 감상한 일라이 로스의 식인 고어물. 전작 호스텔의 망령과 사전 정보에 함몰되어 영화 자체를 온전히 즐기기는 어려웠으나, 사지가 찢기는 피칠갑 파국 속에서 문명의 위선을 조롱하는 장르적 밀도만큼은 확실하다. 무지와 두려움이 만들어낸 선입견의 잔혹사'라고 솔직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단상을 타이핑해 넣는다. 나만의 데이터베이스 랙에 장르적 불일치의 명확한 마침표를 찍으며 오늘 밤의 상영 로그를 씁쓸하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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