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로스트> 시즌 4, 5화(The Constant)까지의 내용만을 철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전개에 대한 어떠한 단서나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재 진행형' 리뷰이니 안심하고 감상해 주세요!
전 세계 수많은 미드 팬들과 평론가들이 <로스트> 전체 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바로 그 에피소드입니다! 이번 5화 '상수(The Constant)'는 복잡한 SF적 타임 리프 설정과 가슴을 울리는 절절한 로맨스를 완벽한 비율로 직조해 낸,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45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화물선의 통신실에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페니와 통화하며 오열하는 데스몬드의 씬
이번 화의 핵심 장면 (디테일과 연출)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요. 이번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극 후반부 데스몬드와 페니의 크리스마스이브 전화 통화 씬입니다.
헬기를 타고 화물선으로 향하던 중 뇌에 이상이 생겨 1996년과 2004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죽어가는 데스몬드. 그가 살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에 모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강력한 닻, 즉 '상수(Constant)'가 필요했습니다. 1996년의 데스몬드가 페니를 찾아가 "8년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전화를 걸 테니 제발 번호를 바꾸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마침내 2004년 현재 화물선에서 다이얼을 돌렸을 때 페니가 전화를 받는 교차 편집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완벽하게 무장해제 시킵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다급하게 반복하며 전화가 끊기는 순간의 여운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1996년 옥스퍼드 대학 연구실에서 방사선 실험을 하고 있는 젊은 다니엘 패러데이와 그의 수첩 씬
캐릭터 심리 프로파일링 & 숨은 이스터에그
[심리 프로파일링] 데스몬드의 운명적 사랑: 데스몬드 흄이라는 캐릭터가 왜 <로스트>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인지 이번 화에서 확실히 증명됩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8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오직 한 여자, 페니만을 바라봅니다. 그에게 페니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혼돈과도 같은 섬과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게 해주는 유일한 생명줄이었습니다.
[이스터에그] 찰스 위드모어 경매장의 '블랙 락(Black Rock)': 1996년 데스몬드가 찰스 위드모어를 찾아갔을 때, 위드모어는 경매에서 한 항해일지를 낙찰받고 있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이 바로 시즌 1 정글 한가운데서 발견되었던 노예선 '블랙 락 호'입니다. 위드모어와 섬의 연결고리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아주 오래전부터 섬의 미스터리를 추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소름 돋는 떡밥입니다.
미스터리 추적 일지 (현재 시점)
[규칙의 발견] 섬과 화물선의 기묘한 시간차: 헬기에 동승했던 사이드와 섬에 남은 패러데이의 무전 실험을 통해 엄청난 사실이 밝혀집니다. 헬기에서 화물선을 향해 로켓(페이로드)을 발사한 시간과 섬에 그 로켓이 도착한 시간 사이에 명백한 '시간의 지연'이 발생한 것이죠. 섬과 바깥세상(화물선)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경고 기제] 민코프스키의 비극적인 죽음: 화물선의 통신 장교 민코프스키 역시 데스몬드와 똑같은 증상(의식의 시간 여행)을 겪고 있었습니다. 상수를 찾지 못한 그의 뇌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출혈과 함께 사망하는 장면은, 데스몬드가 제한 시간 내에 페니와 통화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시한폭탄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1983년 제5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8개 부문을 휩쓴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간디(Gandhi)>. 벤 킹슬리의 압도적인 원맨쇼 뒤편에는, 1940~50년대 할리우드의 낡은 관습을 깨부수고 스크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당대 최고 배우들의 숨 막히는 앙상블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시네필도, 작가주의 감독도 아니며 오직 배우를 사랑하는 연출자"라 칭한 리처드 아텐보로의 캐스팅 철학과 현장의 생생한 비하인드를 정리했습니다.
"배우의 최고를 끌어낸 연출자" — 명품 앙상블을 진두지휘한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
'블랙페이스'의 거부: 진짜 인도인을 찾아서
과거 서구 영화계에서는 인도인이나 유색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의 얼굴에 짙은 갈색 분칠(Brownface)을 덧칠해 연기시키는 관습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아텐보로 감독은 기획 단계부터 이 구태의연한 관습을 결사반대했습니다.
"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 배우가, 인도인은 인도 배우가, 영국인은 영국 배우가 연기해야만 한다."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역으로 낙점된 로샨 세스(Roshan Seth)는 대중에게 친숙한 네루의 온화한 기품과 사소한 제스처까지 완벽히 체화하며 스크린을 장악했습니다.
인도 국민의회의 거두 사르다르 파텔 역의 사이드 재프리(Saeed Jaffrey), 그리고 간디의 곁을 지키다 옥중에서 숨을 거둔 성모 같은 아내 카스투르바 역의 로히니 하탕가디(Rohini Hattangady)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로히니는 숭고하고 절제된 열연으로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BAFTA)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으며 전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분칠한 백인이 아닌 진짜 인도 배우들의 기품 — 로샨 세스
요절한 천재 이언 찰슨과 전설적인 '연극계의 기사단'
백인이면서도 간디의 비폭력 저항에 가장 먼저 공명해 헌신했던 영국인 성공회 사제 찰리 앤드루스 역은 당대 최고의 청년 명배우 이언 찰슨(Ian Charleson)이 맡았습니다.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1981)의 에릭 리델 역으로도 유명했던 그는 특유의 맑고 순수한 영혼의 연기를 유감없이 뽐냈습니다. 40세라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요절했지만, 영국 연극계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이언 찰슨 상(Ian Charleson Award)'을 제정해 매년 가장 뛰어난 젊은 고전극 배우에게 수여하며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또한, 아텐보로 감독이 연출하는 모든 영화의 단골이자 페르소나였던 존 밀스 경(Sir John Mills)과, 대영제국 특유의 서늘한 귀족적 권위를 뿜어낸 존 길구드 경(Sir John Gielgud) 등 영국의 기사(Knight) 작위를 받은 전설들이 총독과 관료로 대거 포진하며 영화의 무게중심을 완벽하게 잡아주었습니다.
빈민의 참상을 보고 출연료 전액을 내놓은 마틴 쉰
<지옥의 묵시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마틴 쉰(Martin Sheen)은 극 중 간디의 투쟁을 서방 세계에 알리는 미국인 기자 빈스 워커 역으로 합류했습니다.
마틴 쉰은 촬영을 위해 방문한 인도 현지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빈민들과 특히 '하리잔(불가촉천민)'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이 받기로 한 영화 출연료 전액을 캘커타의 극빈층 구호 기금으로 즉시 기부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의 따뜻한 휴머니즘은 영화 속에서 간디와 나누는 교감 연기에도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
캘커타 빈민을 위해 출연료 전액을 기부했던 마틴 쉰
"납작한 악당이 아니었다": 에드워드 폭스가 빚어낸 암릿차르의 광기
영화 속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처절한 시퀀스는 단연 1919년의 '암리차르 학살(잘리안왈라 바그 학살)'입니다. 무방비 상태로 평화 집회를 열던 남녀노소 군중을 벽으로 몰아넣고 10분간 무차별 난사를 명령해 대영제국의 몰락을 자초한 장본인, 레지널드 다이어 장군 역은 명배우 에드워드 폭스(Edward Fox)가 맡았습니다.
아텐보로 감독은 다이어 장군을 단순한 삼류 악당으로 얄팍하게 묘사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에드워드 폭스는 이 인물을 연기하며 섬뜩한 설득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다이어 본인의 뒤틀린 내면 속에서는 이 잔혹한 학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대영제국의 통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숭고한 의무'였다는 뒤틀린 신념을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사후 청문회에서 "리엔필드 소총탄에 온몸이 찢긴 어린아이가 어떻게 걸어 나와 구호를 청하느냐"는 조사관의 서늘한 일갈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에드워드 폭스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숨 막히는 서스펜스와 분노를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넷플릭스 썸네일에 포레스트 휘태커와 테오 제임스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고, '미 대륙을 덮친 원인 불명의 재앙'이라는 문구가 보이면 누구라도 한 번쯤 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깊은 깨달음이나 서스펜스가 아니라, 내 피 같은 시간 113분을 허공에 날렸다는 극심한 분노뿐이다. 기획과 개연성이 장렬하게 폭망한 2018년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에 하나다.
줄거리: 시카고에서 시애틀까지, 2천 마일의 개고생 로드무비
변호사 윌(테오 제임스)은 임신한 약혼녀 사만다(캣 그래험)가 기다리는 시애틀을 잠시 떠나, 까다롭고 완고한 전직 군인 출신 장인어른 톰(포레스트 휘태커)을 만나 결혼 승낙을 구하기 위해 시카고로 날아간다. 불편한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가려던 찰나 사만다와의 전화 통화 도중 의문의 굉음과 비명소리가 울리며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다.
동시에 시카고를 비롯한 전역에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고, 서부 해안가(시애틀 일대)에 지진인지 폭격인지 모를 초유의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흉흉한 소문만 나돈다. 비행기와 기차가 전면 마비되자, 사만다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톰과 윌은 톰의 튼튼한 4륜 구동 캐딜락을 타고 2,000마일이 넘는 대륙 서쪽 횡단길에 오른다.
치안이 붕괴되어 무법천지가 된 고속도로에서 기름을 노리는 약탈자들의 총격을 뚫고, 부패한 자경단과 추격전을 벌이며 나약했던 변호사 윌은 점차 살기 어린 총잡이로 변해간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늑골 골절과 내출혈을 입은 장인 톰은 시애틀을 목전에 두고 차 안에서 숨을 거두고, 홀로 남겨진 윌은 장인을 묻어준 뒤 마침내 잿더미로 변해버린 시애틀에 도착한다.
결말: 제레마이어의 난입, 캠프파이어, 그리고 환장의 도주극(※ 스포일러 주의)
사만다가 살던 폐허가 된 아파트에서 교외 숲속 별장으로 피신했다는 쪽지를 발견한 윌. 천신만고 끝에 별장에 도달해 살아있는 사만다와 눈물의 재회를 나눈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만다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줬다는 이웃집 남자 제레마이어(마크 오브라이언)가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날 밤, 사만다는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구하려다 길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는 비보를 듣고도, 남친인 윌이 지쳐 잠든 틈을 타 제레마이어와 단둘이 오붓하게 캠프파이어를 피워놓고 술까지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잠에서 깨어 캠프파이어 자리에 합류한 윌에게 제레마이어는 "이건 북한이나 중국의 EMP 공격일 수도 있고, 음모론이 어쩌구..." 하며 마치 지가 재앙의 전말을 다 안다는 듯 확신에 차서 헛소리를 늘어놓고, 윌은 이에 정색하며 피곤한 언쟁을 벌인다.
다음 날 아침, 제레마이어가 윌의 차 주변을 수상하게 서성거리며 접근하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윌. 무슨 짓을 하느냐고 따져 묻자 제레마이어는 "근처 애새끼들이 당신 차를 건드리고 있길래 확인하던 중이었다. 그놈들 어디 있는지 보여주겠다"며 윌을 깊은 숲속으로 유인한다.
숲 한가운데 이르자 제레마이어는 사만다를 향한 비뚤어진 집착을 드러내며 윌에게 권총을 겨눈다. 처절한 몸싸움 끝에 윌은 총을 빼앗아 제레마이어를 사살한다.
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거대한 지진과 함께 인근 화산이 폭발하며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화쇄류와 연기 폭풍이 몰려온다. 윌과 사만다는 차를 타고 지평선 너머로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아 도망치고, 쫓아오는 화산재 구름을 백미러로 비추며 영화는 "그래서 도대체 재앙의 원인이 뭔데?"라는 질문에 끝끝내 단 한마디의 해답도 내놓지 않은 채 어이없게 화면을 암전시켜 버린다.
끝까지 안 알려주는 겉멋과 망조 든 결말의 대환장 콜라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깊은 빡침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도대체 재앙의 이유가 뭔데?!"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류작들의 모태가 된 명작 영화들은, 설령 재앙의 원인을 화면에 직접 보여주지 않더라도 라디오 뉴스나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최소한의 정황이나 언급은 해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쓸데없이 겉멋만 잔뜩 들어서 "우리 영화는 끝까지 원인을 안 알려줄 거야. 그래야 있어 보이고 남들과 다르게 돋보이지!"라는 식의 얄팍한 심보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기만한다.
백번 양보해서 원인을 안 알려주는 불친절함까지는 장르적 뚝심이라 치고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관객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건 결말부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제레마이어'라는 캐릭터와 그 이후의 환장할 전개다.
장인어른 목숨까지 바쳐가며 대륙을 횡단하는 개빡센 여정을 겪고 왔더니, 그 개고생의 마무리가 고작 '미친놈 만나서 여친 빼앗기기 직전의 치정 배틀'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게다가 캠프파이어 자리에서 제레마이어라는 작자가 "이러이러한 외국의 공격 때문에 재앙이 터진 거 아니겠냐"라며 뇌피셜을 확신에 차서 늘어놓으면, 온갖 생고생 끝에 간신히 살아 돌아온 윌 입장에선 "아 눼눼, 그래요? 참 대단하시네요(XX 귀찮네)" 하고 대충 넘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아니거든! 헛소리하지 마!"라며 쓸데없이 언쟁을 벌이는 꼴도 우습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건 여자친구 사만다의 태도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살리겠다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면서 남친을 보냈는데, 그 고생을 하고 온 남친이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틈을 고새를 못 참고 제레마이어랑 둘이서 캠프파이어를 켜놓고 히히덕거리며 술을 처먹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마저 나온다. 결국 다음 날 숲으로 끌고 가 총질이나 해대는 미친놈한테서 여친을 지키는 꼴이라니.
도대체 시나리오를 어디까지 대충 쓰고 내던진 건지 알 수가 없다. 거창하게 벌려놓은 재난은 수습할 능력도 없어서 화산재 뒤로 도망치는 장면으로 퉁쳐버리고, 결말은 뜬금없는 삼각관계와 캠프파이어 술판으로 말아먹은, 그야말로 '망조가 제대로 든 산업 폐기물' 그 자체다.
2천 마일의 고생길 끝에 마주한 건 캠프파이어 술판과 숲속의 치정극. 겉멋에 취해 결말을 내던진 넷플릭스표 재앙.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넷플릭스 스트리밍으로 감상했다. 포레스트 휘태커의 묵직한 카리스마가 아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떡밥 회수 실패, 개연성 증발, 발암 캐릭터의 환상적인 삼박자를 두루 갖춘 이 끔찍한 시간 낭비의 파편을 수장고의 [산업 폐기물 처리장 (내 아까운 2시간 물어내)] 깊숙한 곳에 영구 격리한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 대중의 오락적 쾌감과 장르적 완성도를 동시에 쥐고 흔들 줄 아는 최동훈 감독의 2012년작 천만 케이퍼 무비 《도둑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감상했다. 1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끌고 가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장르적 세공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카오의 다이아몬드에서 부산 아파트 총격전까지의 궤적
미술관 털이를 마친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씹던껌(김해숙), 잠파노(김수현)가 경찰을 피해 홍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옛 동료 마카오박(김윤석)이 제안한 거대한 판에 합류한다. 출소한 금고 털이 펩시(김혜수)와 중국 측 도둑들(임달화, 오달수 등)까지 뭉친 10인의 목표는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 하지만 마카오박과 뽀빠이, 펩시 사이에 얽힌 과거 배신의 앙금과 각자 보석을 독식하려는 속셈이 뒤엉키며 위태로운 잠입 작전이 시작된다.
작전 당일 금고는 열리지만 다이아몬드는 이미 마카오박이 빼돌린 뒤였고, 경찰의 급습으로 첸과 씹던껌이 목숨을 잃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다이아몬드를 쥔 마카오박과 이를 쫓는 뽀빠이, 펩시, 예니콜, 그리고 장물아비 웨이홍 일당까지 모두 부산의 낡은 데파트 아파트로 집결한다. 외벽 와이어를 오르내리는 처절한 총격전 끝에 웨이홍은 사살되고 배신을 일삼던 뽀빠이는 비참하게 몰락한다. 혼란을 틈타 보석을 가로채 홍콩으로 튄 예니콜의 뒤를 마카오박이 다시 털어버리고, 과거의 오해를 푼 펩시에게 마카오박의 연락이 닿는 경쾌한 반전으로 이야기는 매듭지어진다.
생각 없이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았지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역시 생각 없이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유치하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데는 최동훈 감독이 대가다.
한국 상업 영화에서 수많은 캐릭터가 쏟아져 나오는 멀티캐스팅 무비는 자칫하면 인물들이 따로 놀며 산만해지거나, 관객을 억지로 웃기고 울리려는 신파와 억지 개그로 흘러 유치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열 명이 넘는 주·조연 캐릭터 하나하나에 뚜렷한 욕망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귀에 착착 감기는 맛깔스러운 대사와 리드미컬한 편집 덕분에 관객은 머리를 복잡하게 굴릴 필요 없이 그저 물 흐르듯 화면의 속도감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서도 영화적 품격과 긴장감의 줄을 결코 팽팽하게 놓지 않는다. 마카오 카지노의 세련된 케이퍼 무비에서 출발해 후반부 부산 연산동 아파트 외벽의 투박하고 처절한 와이어 총격 액션으로 장르의 공기를 전환하는 뚝심은, 대중 오락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도파민이자 웰메이드 오락의 정수다.
10인의 욕망을 꿰어낸 팽팽한 리듬. 쉬운 몰입 속에서도 끝내 유치해지지 않는 최동훈 표 케이퍼의 정석.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넷플릭스 스트리밍으로 감상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대사의 차진 말맛과 캐릭터들의 티키타카, 그리고 후반부 부산 아파트 총격전의 서스펜스는 여전히 압도적인 흡인력을 자랑한다. 천만 관객의 선택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쾌작으로서, 수장고의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룸에 기분 좋게 안착시킨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본 리뷰는 <로스트> 시즌 4, 4화(Eggtown)까지의 내용만을 철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전개에 대한 어떠한 단서나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재 진행형' 리뷰이니 안심하고 감상해 주세요!
시즌 4의 롤러코스터는 쉴 틈이 없습니다! 4화 '에그타운(Eggtown)'은 도망자 케이트의 미래(플래시 포워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시청자들의 턱을 빠지게 만드는 시즌 4 최고의 반전 엔딩 중 하나를 선사합니다. 섬 안팎에서 벌어지는 기싸움과 거짓말이 극에 달하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법정에 선 케이트의 긴장한 모습
이번 화의 핵심 장면 (디테일과 연출) 이번 에피소드는 미래의 '케이트의 재판'과 섬 현재 시점에서의 '마일스와의 거래'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법정에 선 케이트는 과거의 끔찍한 범죄들로 인해 중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압권은 엔딩 씬입니다. 기적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케이트가 호화로운 저택에 돌아와 2층 방으로 향할 때, 시청자들은 숨을 죽이게 됩니다. 그녀가 "우리 아기(my baby)"라 부르며 안아 든 금발 머리 아이의 이름이 다름 아닌 '애런(Aaron)'이었기 때문입니다. 섬에 있던 클레어의 아기가 왜 미래에 케이트의 아들이 되어 있는지, 그 충격적인 시각적 반전은 에피소드 전체의 판을 뒤집어 버립니다.
입에 수류탄을 문 채 공포에 질린 마일스
캐릭터 심리 프로파일링 & 숨은 이스터에그
[심리 프로파일링] 잭의 완벽한 위증: 플래시 포워드에서 잭은 케이트를 변호하기 위해 증인석에 섭니다. 잭은 오세아닉 815편이 바다에 추락했으며, '오직 8명만 생존해 섬으로 떠밀려 왔고, 그마저도 2명은 죽었다'는 완벽한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뱉어냅니다. 정의롭고 정직하던 리더 잭이 법정에서 위증을 불사하는 모습은, 오세아닉 식스가 공유하고 있는 '거대한 은폐'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보여줍니다.
[이스터에그] "Eggtown"의 의미: 에피소드 제목인 에그타운은 꽤 중의적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로크가 섬에서 벤을 위해 달걀 프라이를 요리하는 장면을 뜻하지만, 암묵적으로는 케이트의 '임신(난자, Egg)'에 대한 두려움과 애런을 둘러싼 복잡한 모성애,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껍질처럼 위태로운 생존자들의 상황을 은유하는 훌륭한 상징입니다.
미스터리 추적 일지 (현재 시점)
[신규 떡밥] 클레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애런이 미래에 케이트와 함께 섬 밖으로 나왔다면, 진짜 엄마인 클레어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오세아닉 식스의 거짓말 속 '죽었다는 2명' 중 한 명일지, 아니면 섬에 남겨진 것인지 거대한 미스터리가 추가되었습니다.
[현재 시점의 긴장감] 마일스의 320만 달러 청구서: 벤과 단둘이 남게 된 마일스는 벤을 생포해 넘기는 대신, "320만 달러를 주면 당신이 죽었다고 보고해주겠다"는 황당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 화물선 사람들은 단순히 정체불명의 배후 세력이 내린 명령에 복종하는 척하면서도 각자의 시커먼 꿍꿍이를 품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국면 전환] 흑화하는 리더, 로크: 마일스가 벤과 접촉한 사실을 안 로크는 폭주합니다. 마일스의 입에 수류탄을 물리고 핀을 뽑아버리는 로크의 모습은 과거의 온화했던 철학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섬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점점 무자비하게 변해가는 로크의 흑화가 소름 돋게 그려졌습니다.
어두운 사회적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스릴러 영화는 현실의 아픔을 파고들 때 비로소 묵직한 생명력을 얻는다. 2000년대 중반 아동 학대와 왜곡된 구원의 광기를 미스터리 연쇄 살인극의 틀 안에 담아내려 했던 조의석 감독의 2006년작 《조용한 세상》을 웨이브(Wavve)를 통해 감상했다.
줄거리: 연쇄 소녀 피살 사건, 그리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 아이
서울 도심에서 어린 소녀들이 잇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희생된 아이들의 신원을 추적하던 강력계 김형사(박용우)는 살해당한 소녀들이 모두 지금은 문을 닫고 폐쇄된 보육시설 '천사의 집' 출신이라는 결정적인 공통점을 밝혀내고 수사망을 좁혀간다.
한편,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며 가끔 귀국하던 전문 사진작가 류정호(김상경). 그는 다른 곳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된 친척의 집에서 머물던 중, 친척이 입양 절차를 밟아 데려오기로 했던 어린 소녀 수연(한보배)과 뜻하지 않게 한집에서 지내게 된다.
과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던 수연. 정호는 수연이 당시 사고로 각막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제때 치료받지 못할 경우 언젠가는 완전히 실명하게 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남다른 감각 때문에 사람과 거리를 두던 정호는 순수하지만 상처 입은 수연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지만,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노리던 범인의 마수가 수연에게까지 뻗치며 아이는 납치당하고 만다.
결말: 불타는 '천사의 집', 두 눈을 감싸 쥔 마지막 희생(※ 스포일러 주의)
수연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적을 이어가던 정호와 김형사는 마침내 연쇄 살인의 진범을 밝혀낸다. 범인은 다름 아닌 폐쇄된 '천사의 집' 여직원이었다.
과거 끔찍한 성폭행을 당해 심각한 정신병력을 앓고 있던 그녀는, 남자와 어른들의 폭력과 학대로 가득 찬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더럽혀지기 전에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고통 없는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다"는 광기 어린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폐쇄되어 인적이 끊긴 '천사의 집'으로 알고 지내던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납치해 차례로 목숨을 빼앗아 왔던 것.
정호는 홀로 폐쇄된 '천사의 집'으로 뛰어들어 수연을 구출하려다 범인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건물에 거센 화재가 발생한다. 정호는 수연을 안고 불길을 뚫고 탈출하려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불타는 건물 잔해에 깔려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뒤늦게 화재 현장에 들이닥친 김형사가 잔해에 깔린 정호를 구하려 필사적으로 매달리지만, 당장 세 사람 모두 불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정호는 "수연이라도 먼저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친다. 결국 김형사는 수연을 안고 먼저 탈출한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후, 차갑게 식어버린 잿더미 잔해 속에서 류정호의 시신이 수습된다. 그는 불길 속에서 타 죽어가는 순간에도 오직 자신의 두 눈만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어 보호한 채 숨을 거두어 있었다. 실명 위기에 처해 있던 수연에게 자신의 각막을 온전히 물려주기 위한 정호의 눈물겨운 마지막 선택이었던 것. 이후 수연이 정호의 각막을 이식받아 세상을 보게 되었음을 암시하며 영화는 씁쓸하게 막을 내린다.
특별한 여운을 가로막은 무리수, 억지로 밀어붙인 각막 이식의 아쉬움
영화는 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의 곪아 터진 상처였던 아동 학대와 보육 시설의 그늘, 그리고 성폭력 피해 트라우마가 낳은 비틀린 연쇄 살인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다. 김상경과 박용우의 탄탄한 연기 호흡과 차갑게 가라앉은 서스펜스는 수사극으로서 초반의 긴장감을 그럭저럭 끌고 간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솔직하게 다가온 감상은 "특별하게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아쉬움은 억지로 '각막 이식'이라는 신파적 소재를 결말에 밀어붙인 무리수에 있다. 정호가 수연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까지는 좋았으나, 굳이 아이의 과거 사고와 각막 손상, 그리고 실명 위기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덧붙여 마지막 화재 현장에서 주인공이 '불타는 와중에도 눈만 손으로 가리고 죽어 각막을 물려준다'는 도식적인 희생 플롯으로 귀결시킨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폐쇄된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벌어진 참극과 범인의 빗나간 구원관이라는 무거운 서스펜스를 뚝심 있게 파고들지 못한 채, 결말부 감정의 정점을 뜬금없는 각막 기증의 신파로 대체해 버리니 정통 스릴러로서 남겨야 할 사회적 충격이나 묵직한 울림이 힘없이 휘발되어 버린다. 소재의 무게감에 비해 억지스러운 설정의 봉합이 주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작품이다.
비틀린 구원의 칼날과 '천사의 집'에 번진 화마. 그러나 억지로 끼워 맞춘 각막 이식의 무리수가 묵직한 여운을 가로막아버린 아쉬운 스릴러.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웨이브(Wavve) 스트리밍으로 감상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스릴러 특유의 서늘하고 우울한 공기는 뚜렷했으나, 설득력 있는 서사 대신 각막 이식이라는 억지스러운 희생으로 급하게 닫아버린 결말의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미완의 감상을 정리하며, 수장고의 [크레딧이 올라가도] 룸에 차분히 수납한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극단적인 애국주의 판타지와 앙상한 외교적 논리로 가득 차 158분이라는 물리적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시험에 들게 했던 강우석 감독의 2006년작 대작 《한반도》를 웨이브(Wavve)를 통해 감상했다. 어릴 적의 순진했던 도취를 지나 세상을 알고 난 뒤 마주했을 때 밀려오는 지독한 거부감과 씁쓸함이 가득하다.
어릴 적의 순진한 도취를 지나 마주한 지독한 거부감
영화를 보는 내내 한숨이 새어 나왔고, 솔직히 영화 보기가 진짜 힘들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15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물리적인 피로감보다도, 영화가 다루는 소재와 강우석 감독 특유의 선동적이고 웅변조에 가까운 연출 스타일 때문에 견디기가 버거웠다.
문득 내가 한참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초등학교 시절, 유선방송에서 방영해주던 '한강의 기적'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슴 벅찬 애국심에 취해 우리 민족이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사실에 감격하고 고무되었던 그 시절이었다면, 아마 긴 러닝타임 따위는 잊은 채 별점 10점도 모자라다고 손뼉을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을 알아버렸고, 결코 그런 순진한 나이가 아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 속 지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체득한 지 한참 지난 지금의 시선에서, 이 영화는 지독한 거부감만을 남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대놓고 낯부끄러운 중국식 관제 프로파간다와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이 불편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냉혹하고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와 외교적 역학 관계를 '숨겨진 도장 하나 찾으면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된다'는 유아기적 판타지로 치환해 버린 게으름, 그리고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감정적 굴종과 민족주의적 결집만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연출 때문일 것이다. 성숙한 시선으로 마주하기엔 너무나 낡고 위태로운, 2000년대 거대 기획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도장 하나로 국제 정세를 뒤집겠다는 앙상한 유아기적 판타지. 어른이 되어 마주한 158분의 버거운 거부감.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웨이브(Wavve) 스트리밍으로 감상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조재현, 안성기, 문성근 등)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듯 쏟아지는 강우석 감독 특유의 직설적인 웅변과 계몽주의는 끝내 피로감으로 귀결되었다. 어린 시절의 맹목적인 감정이 휘발된 자리에 남은 공허한 씁쓸함을 삼키며, 수장고의 [산업 폐기물 처리장 (내 아까운 2시간 물어내)] 랙에 격리 수납한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본 리뷰는 <로스트> 시즌 4, 3화(The Economist)까지의 내용만을 철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전개에 대한 어떠한 단서나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재 진행형' 리뷰이니 안심하고 감상해 주세요!
시즌 4의 미친 속도감이 이번 3화 '경제학자(The Economist)'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섬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 싸움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사이드의 플래시 포워드(미래) 반전이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베를린의 차가운 거리를 걷는 사이드의 모습
이번 화의 핵심 장면 (디테일과 연출) 단연코 이번 에피소드 최고의 명장면은 플래시 포워드의 마지막 엔딩입니다. 섬을 무사히 탈출한 '오세아닉 식스' 중 한 명인 사이드는 골프장과 베를린을 오가며 '경제학자'라 불리는 인물의 조직원(엘사)에게 접근해 살인을 저지릅니다.
총상을 입고 절뚝이며 동물병원으로 은신한 사이드를 치료해 주러 온 '보스'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시청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바로 섬에서 가장 끔찍한 적이었던 벤자민 라이너스였기 때문이죠. 섬에서 서로의 목에 총과 칼을 들이밀던 두 사람이, 미래에는 암살자와 고용주의 관계로 묶여있다는 이 충격적인 반전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오세아닉 식스의 미스터리를 한층 더 깊고 어둡게 만듭니다.
벤이 갇혀있는 로크의 막사 안에서 로크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드의 정글 씬
캐릭터 심리 프로파일링 & 숨은 이스터에그
[심리 프로파일링] 사이드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 플래시 포워드 속 사이드는 벤에게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이 내 친구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살인 기계가 되는 길을 택합니다.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에서 고문관으로 일했던 끔찍한 과거를 끊어내려 섬에서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피를 묻혀야만 하는 사이드의 비극적인 운명이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스터에그] 엘사의 팔찌와 나오미의 팔찌: 플래시 포워드에서 사이드가 타겟으로 삼았던 엘사가 차고 있던 묵직한 은색 팔찌. 섬에 추락했던 화물선 요원 나오미가 차고 있던 팔찌와 상당히 유사한 디자인입니다. 화물선 팀을 보낸 거대한 배후 세력(위드모어 등)과 미래에 사이드가 쫓고 있는 타겟들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흥미로운 시각적 힌트입니다.
미스터리 추적 일지 (현재 시점)
[현재 시점의 명승부] 사이드의 완벽한 인질극: 섬 안에서는 헬파티가 벌어집니다. 사이드는 헬기를 타고 화물선으로 가기 위해, 로크의 진영에 침투하여 샬럿을 빼내옵니다. 마일스를 로크에게 넘기는 대가로 샬럿을 챙기는 사이드의 협상력과 전술적 우위는 왜 그가 생존자 그룹 최고의 브레인이자 해결사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해 냅니다.
[신규 떡밥] 마침내 이륙한 헬리콥터!: 에피소드의 마지막, 샬럿을 데려온 대가로 사이드는 헬기에 탑승합니다. 헬기 조종사 프랭크, 나오미의 시신을 실은 사이드, 그리고 페니를 찾기 위해 합류한 데스몬드까지! 세 사람을 실은 헬기가 마침내 섬을 떠나 화물선을 향해 이륙하면서 3화가 마무리됩니다. 이들은 과연 무사히 화물선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1982년 개봉한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간디(Gandhi)>에서 타이틀롤을 거머쥔 배우 벤 킹슬리의 캐스팅은 당시 영화계에서 거대한 모험이자 파격이었습니다. 장편 영화 주연 경험이 전무했던 연극 무대의 배우가 어떻게 콧대 높은 영국 대배우들과 수억 인도 민중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오스카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는지, 그 치열했던 빙의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의 축복을 받은 자" — 벤 킹슬리가 빚어낸 불멸의 마하트마 간디
20년 만에 찾은 얼굴: 아들의 추천과 5시간짜리 뉴스릴
1980년,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이 20년의 세월 끝에 마침내 영화 제작 자금과 인도 정부의 공식 지원을 확보했을 때, 치명적인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가 과거 염두에 두었던 당대의 쟁쟁한 주연 후보들이 기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20대의 '젊은 간디'를 연기하기엔 모조리 20살이나 나이를 더 먹어버린 것입니다. 청년 간디의 형형한 눈빛이야말로 이 대서사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때 돌파구를 열어준 인물은 감독의 아들 마이클 아텐보로였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벤 킹슬리가 연기한 <햄릿>을 관람한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간디 역 후보 명단을 짤 때 이 배우만큼은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고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에서 다져진 웅장한 서사 감각과 역사적 통찰력에 매료된 아텐보로 감독은 단숨에 그를 낙점했습니다.
캐스팅 직후 벤 킹슬리는 극장에 앉아 5시간 분량의 간디 실제 뉴스릴 기록 필름을 연속으로 시청했습니다. 극장 문을 나설 당시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오직 하나, "이건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연기"라는 절망감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사람들의 억양과 제스처를 귀신같이 흉내 내던 그의 모방 본능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음향 감독을 속인 목소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물레질 스턴트'
인도 현지에 도착한 킹슬리는 혹독한 다이어트로 뼈마디가 드러날 만큼 살을 깎아냈고, 뙤약볕 아래서 피부를 인도인의 구릿빛 톤으로 태우며 내면을 다져나갔습니다.
음성 훈련의 성과는 극적이었습니다. 간디의 실제 육성 테이프를 수백 번 들으며 특유의 억양과 어조를 그대로 흉내 내 녹음한 뒤,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음향 감독 사이먼 케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녹음본을 진지하게 듣던 사이먼이 "벤, 자네가 내야 할 소리가 바로 이 목소리야! 똑같이 따라 해봐"라고 감탄하자, 킹슬리는 씩 웃으며 답했습니다.
"사이먼, 방금 네가 들은 그 목소리... 간디가 아니라 바로 나야."
배역을 향한 집념은 몸짓 하나에도 배어 있었습니다. 각본 지문에 적힌 [간디, 앉아서 물레를 돌리고 있다]라는 문장을 본 그는 대역 없이 직접 실을 잣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에게 물레질은 목숨을 거는 액션보다 까다로운 '특급 스턴트'였습니다. 일정한 리듬으로 쉼 없이 손발을 움직여 실을 잣는 동시에, 긴 호흡의 명대사를 평온하게 내뱉는 것은 배우 인생을 통틀어 극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난제였습니다. 손끝의 실과 입술의 대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까지 그는 홀로 수없이 손을 놀려야 했습니다.
액션보다 혹독했던 '물레질 스턴트'와 피나는 감량으로 일궈낸 완벽한 체화
포크 위에서 튄 완두콩: 친손자와의 침묵 속 점심 식사
인도 상류층 역사가들과 보수 정객들의 시선은 냉담했습니다. 그들은 "영국 놈들이 찍는 영화에는 4천 개의 오류가 있을 것"이라며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그런 살얼음판 분위기 속에서 킹슬리는 간디의 실제 친손자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 진땀 빼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노년 간디의 분장을 완벽히 갖춘 채 식탁에 앉은 킹슬리는 어찌나 손을 떨었던지 포크로 집어 올린 완두콩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갈 정도였습니다. 손자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그를 바라볼 뿐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일어서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께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선생께서 지금 '보이지 않는 힘(unseen forces)'에 이끌려 보호받고 계시다는 것만은 분명하군요. 앞날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간디의 피를 이어받은 혈육이 건넨 그 한마디는, 킹슬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숭고한 면류관이 되었습니다.
눈부신 금발의 미인 캔디스 버겐과 노년의 간디가 빚어낸 절묘한 앙상블
영국의 기사(Knight)들과 맞선 무명 배우의 기세
영화 속 간디는 대영제국의 거대한 권력과 당당히 마주합니다. 흥미롭게도 현장에서 킹슬리가 마주한 벽 역시 대단했습니다. 총독 역의 존 길구드 경, 회담장의 존 밀스 경, 그리고 법정의 트레버 하워드까지, 상대역들은 모두 영국의 기사(Knight) 작위를 받은 연극·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들이었습니다.
영화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킹슬리는 이 거인들과 마주하며 주눅 드는 대신 배역의 결기를 폭발시켰습니다. 특히 트레버 하워드가 연기한 브룸필드 판사와의 법정 시퀀스는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습니다. 판사가 선고를 내리기 위해 피고인 앞에 먼저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자 법정 전체가 기립하는 역발상의 연출 속에서, 킹슬리는 대영제국의 법률적 권위를 침묵으로 압도하는 성자의 무게감을 완벽하게 뿜어냈습니다.
판사가 먼저 기립해 고개를 숙인 역사적 법정 명장면 (트레버 하워드 & 벤 킹슬리)
"밀랍 인형 치우고 내가 눕겠소": 40만 인파 속에서 살아난 바푸
가장 극적인 순간은 단연 기네스북에 등재된 오프닝 장례식 시퀀스였습니다. 원래 운구차 위에는 특수분장팀이 정교하게 제작한 간디의 '밀랍 시신 인형'이 올라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를 살피던 리처드 감독은 인형이 인위적이라며 고개를 저었고, 킹슬리에게 직접 차 위에 올라가 국기를 덮고 누워줄 것을 긴급히 요청했습니다. 트럭 주변에만 8만 명, 라지파트 대로 전체에 4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상황이었습니다.
행진이 시작되자 군중 속 몇몇 짓궂은 젊은이들이 시체로 누워 있는 배우를 놀래켜 테이크를 망치려고 얼굴을 향해 단단한 장미 꽃봉오리를 툭툭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킹슬리는 눈꺼풀 하나 깜빡이지 않고 완벽한 부동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러자 장난을 치던 이들도 이내 숙연해졌습니다. 단단한 꽃봉오리 대신 부드러운 꽃잎들이 조용히 흩뿌려졌고, 군중 속에서 흐느낌과 나직한 추모의 노래가 번져나갔습니다.
이윽고 40만의 거대한 물결이 숨이 멎을 듯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넓은 라지파트 대로에 울려 퍼진 소리는 오직 밧줄을 쥐고 운구차를 끌던 400여 명 장병들의 군화가 자갈길을 밟는 '바스락, 바스락' 소리뿐이었습니다. 1948년 실제 간디의 장례식 날 울려 퍼졌던 바로 그 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촬영이 무사히 끝나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길, 킹슬리를 태운 현지인 운전기사는 룸미러로 그를 슬그머니 바라보며 짧게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Well done, sir)."
그 어떤 평론가의 화려한 찬사보다 묵직했던 그 평범한 인도인의 한마디는, 무명의 셰익스피어 배우가 스크린 위에서 마하트마의 영혼을 완벽히 부활시켰음을 알리는 가장 진실한 증명서였습니다.
때로는 고상한 체면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날것의 폭력과 총성이 귓전을 때리는 무자비한 영화가 격렬한 해방감을 준다. 타란티노와 가이 리치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2000년대 중반 B급 액션의 폭주를 제대로 보여주었던 조 카나한 감독의 2006년작 《스모킹 에이스》를 쿠팡플레이를 통해 감상했다. 피비린내와 핏빛 난투가 스크린을 적시는 이 광기 어린 난장판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다.
줄거리: 100만 달러의 심장, 타호 호수로 몰려드는 암살자 군단
라스베이거스의 인기 마술사이자 마피아 조직과 깊게 얽혀 있던 버디 '에이스' 이즈라엘(제레미 피번). 조직의 자금을 횡령하고 보스 프리모 스파라자의 분노를 산 그는, 살기 위해 연방 검찰과 거래를 맺고 마피아 조직을 일망타진할 핵심 증인으로 나서기로 약속한다.
이에 분노한 노환의 보스 스파라자는 에이스의 목에 1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그가 숨을 거두기 전 심장을 도려내 오라는 기괴한 청부 계약을 내린다. 이 소식이 암살자 세계에 퍼지자, 전 세계의 온갖 기상천외한 사이코패스 킬러들이 타호 호수의 노마드 호텔 펜트하우스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전기톱과 도끼, 샷건으로 무장한 네오나치 삼총사 트레모어 형제(크리스 파인 외), 변장과 침투의 달인 라즐로 수트, 전문 저격수와 잔혹한 고문 기술자 파스콸레 아코스타, 그리고 여성 킬러 듀오 사이크스와 샤리스(타라지 P. 헨슨, 알리샤 키스)까지. 한편, 에이스를 살려서 법정에 세워야 하는 FBI 요원 리차드 메스너(라이언 레이놀즈)와 도널드 카루터스(레이 리오타) 역시 현장에 급파되면서, 조용하던 특급 호텔은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변한다.
결말: 호텔의 대학살, 그리고 병실의 플러그(※ 스포일러 주의)
펜트하우스 층에서 킬러들과 경호팀, FBI 요원들이 마주치자마자 엘리베이터와 복도는 대구경 바렛 대물 저격총의 벽 관통 사격과 기관총 난사, 전기톱과 도끼가 난무하는 지옥도로 변한다. 피칠갑이 된 복도에서 수많은 킬러들과 카루터스 요원을 포함한 요원들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고, 메스너 요원은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살아남았으며 에이스의 신병을 확보한 스탠리에게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병원에 도착한 메스너는 상부의 지시 뒤에 도사린 믿을 수 없는 음모를 마주한다. 마피아 보스 스파라자는 사실 과거 FBI의 극비 언더커버 요원이었으며, 배신자 에이스를 처단하라는 그의 살해 청부(100만 달러 현상금) 때문에 전 세계 킬러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장 질환으로 죽어가던 스파라자가 에이스의 친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FBI 상부는, 스파라자에게 거물들의 정보를 넘겨받는 대가로 에이스의 심장을 강제로 적출해 스파라자에게 이식해주려는 추악한 뒷거래를 꾸미고 있었다. 수많은 동료들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지켜낸 증인이 고작 부패한 권력의 장기 이식용 제물에 불과했다는 진실 앞에, 메스너 요원은 깊은 환멸을 느낀다.
결국 메스너는 병실 문을 걸어 잠그고, 나란히 혼수 상태로 누워 있는 마피아 보스 스파라자와 에이스의 산소호흡기 생명 유지 장치 플러그를 망설임 없이 뽑아버린다. 삐-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이 멈추고, 홀로 병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메스너의 공허한 표정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간만에 만난 취향 저격의 피칠갑, 그리고 드라마 《로스트》 출신들의 반가움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솔직한 감상은 "간만에 정말 내 스타일에 딱 들어맞는 영화를 만났다"는 짜릿함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캐릭터들의 광기를 폭발시키며 사방으로 피와 탄피를 흩뿌리는 거친 에너지와 화끈한 난장판 액션은 B급 무비 특유의 거부할 수 없는 흡인력을 자랑한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또 하나의 재미는 미국 드라마 《로스트(Lost)》 출신 배우들이 대거 얼굴을 비춘다는 점이었다. 《로스트》의 든든한 리더 '잭 셰퍼드' 역의 매튜 폭스가 카지노 보안 책임자 빌 역으로 등장하고, 드라마에서 늙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 '리차드 알퍼트'로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던 네스터 카보넬이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 킬러 '파스콸레 아코스타'로 분해 섬뜩한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드라마 속 악명 높은 용병 '마틴 키미'로 분했던 거구의 케빈 듀랜드까지 광기 어린 네오나치 트레모어 형제의 일원으로 난장판에 가세한다. 명작 드라마 속 굵직한 얼굴들이 이 피비린내 나는 호텔 총격전 속에서 제각기 미친 캐릭터로 치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영화적 잔재미를 안겨준다.
다만 한 가지 남는 아쉬움은 결말이 지나치게 영화적인(각본에 맞춰 꿰맞춘 듯한) 줄거리로 급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중반부까지 호텔 복도를 피칠갑으로 물들이며 통제 불능으로 폭주하던 캐릭터들의 그 생생한 야성과 긴장감에 비해, 후반부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숨겨진 혈연관계와 심장 이식 음모'라는 반전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복잡하게 얽힌 피의 연쇄를 서사적으로 수습하려다 보니 너무 전형적인 영화적 클리셰에 기대어 플러그를 뽑는 방식으로 매듭지어 버린 결말은, 앞서 보여준 거친 광기와 카타르시스에 비추어 볼 때 묘한 뒷맛과 아쉬움을 남긴다.
사방으로 튀는 피와 탄피의 카니발. B급 감성의 폭발력 뒤로 작위적인 서사의 봉합이 못내 아쉬운 2000년대 하이텐션 킬러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