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복트-로버츠 감독 연출, 톰 히들스턴과 브리 라슨, 그리고 사무엘 L. 잭슨이 가세한 2017년작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Island)》는 워너 브러더스와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의 '몬스터버스' 중에서도 가장 직관적인 타격감과 스타일리시한 시각적 쾌감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베트남전의 포연과 70년대 클래식 록 사운드, 그리고 거대한 미지의 섬에서 펼쳐지는 괴수 배틀은 팝콘 무비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영화다.

상업 영화의 스펙터클이란 결국 스크린의 물리적 한계와 싸우는 일이다. 조던 복트-로버츠의 〈콩: 스컬 아일랜드〉는 1933년 메리언 C. 쿠퍼가 창조해낸 거대 유인원의 신화를 1973년 베트남 전쟁의 포연과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한가운데로 난폭하게 착륙시킨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노골적으로 환기하는 붉은 석양, 그 거대한 태양을 등진 채 헬기 편대를 파리처럼 짓이기며 솟구쳐 오르는 콩의 실루엣. 영화는 시작과 함께 자신이 무엇을 팔러 온 팝콘 무비인지를 숨김없이 선언한다.

이 선언은 꽤나 정직하게 작동한다. 존 카펜터풍의 기괴한 대나무 거미의 습격부터, 버려진 난파선의 쇠사슬과 스크루를 감아쥐고 스컬 데빌의 식도를 맨손으로 뜯어내는 피니시 시퀀스까지. 영화는 서사의 불필요한 무게를 과감히 덜어낸 채, 몬스터버스라는 거대한 장르적 놀이공원 안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킬링타임의 타격감을 성실하게 직조해 낸다.

그러나 이 잘 세공된 오락성을 응시하는 내내 역설적인 결핍이 시야를 짓누른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의 크기다. 프레임 안에서 대지를 뒤흔들며 포효하는 저 압도적인 신체들을 거실 한구석의 작은 모니터나 TV 화면 안으로 가두어둘 때, 영화가 설계해 둔 파괴의 질량감은 필연적으로 축소되고 만다.

사무엘 L. 잭슨의 광기 어린 눈빛과 콩의 주먹이 격돌하는 순간조차,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다른 공간의 풍경이 틈입한다. 조금만 더 큰 화면이었더라면, 아니 용산 IMAX의 그 아득한 은막 위에서 저 거신의 발자국 소리를 직관했더라면 어땠을까. 숏이 진행될수록 만족감과 함께 '더 거대한 스크린, 끝도 없이 더더더 큰 광경'을 갈망하게 만드는 이 기묘한 갈증. 결국 이 영화는 완벽한 킬링타임의 쾌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신의 온전한 위력을 증명하기 위해 극장이라는 물리적 신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멀티플렉스 시대의 가장 정직한 유령이다.

베트남의 붉은 노을을 찢고 솟구친 거신의 주먹과 록 음악의 파열음.
킬링타임의 소임을 다하면서도 더 거대한 스크린을 향한 갈증을 부추기는 웰메이드 괴수 블록버스터.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쿠팡플레이(Coupang Play)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감상했다. OTT 플랫폼의 스트리밍 환경에서도 스컬 아일랜드의 원시림 풍광과 선명한 색감, 거대 괴수들의 묵직한 사운드 효과가 훌륭하게 전달되어 러닝타임 내내 높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다만 괴수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덩치감과 시각적 파괴력을 온전히 체감하기에는 안방의 화면이 작게만 느껴져, 개봉 당시 아이맥스(IMAX) 대형 스크린으로 직관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완벽한 팝콘 무비이기에 수장고의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랙에 즐겁게 입주시킨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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