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장르 영화계의 악동이자 풍자의 거장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Álex de la Iglesia) 감독이 연출한 2017년작 폐쇄 공간 밀실 스릴러 《더 바(El bar)》. 마드리드 중심가의 평범한 바에 갇힌 8명의 평범한 남녀가 정체불명의 저격과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의 공포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내던지고 추악한 짐승으로 전락해 가는지를 가차 없이 해부한 수작이다. 문명이 벗겨진 자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처절한 인간 본성의 민낯과 '과연 나라면 저들과 다를 수 있는가'라는 서늘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밀실은 언제나 사회학적 실험실이다.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더 바(El bar)〉는 마드리드의 평범한 카페테리아라는 일상적 공간의 문을 걸어 잠그는 순간, 근대 문명이 수백 년간 직조해 온 사회적 계약과 도덕의 규범이 얼마나 손쉽게 증발해 버리는가를 극단적인 에너지로 폭로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활기차게 부딪치던 커피잔과 잡담의 껍데기는, 정체불명의 저격과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재앙 앞에서 삽시간에 찢겨 나간다.

이 영화가 도달하는 가장 잔혹한 풍경은 인물들의 물리적 추락과 윤리적 퇴행이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지상의 바에서 지하 창고로,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배설물이 흘러가는 어두운 하수도로 무대가 내려앉을수록, 인물들의 외양 역시 문명인의 옷을 벗고 식용유와 오물로 뒤범벅된 원초적 신체로 전락한다.
신앙을 읊조리던 부랑자는 살육의 사제가 되고, 현대적 교양으로 무장했던 인텔리는 백신을 독점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짐승으로 퇴행한다. 토머스 홉스가 말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추상적인 철학 명제가 아니라, 주사기 하나를 쥐기 위해 오물통 속에서 서로의 목을 조르는 저열하고 구체적인 지옥도로 육화된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을 단순한 관음증적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도덕적 혐오를 느끼는 순간, 카메라는 그 야만의 거울을 객석으로 돌려세운다. 생존의 절대적 위기 앞에서 '인간성'이라는 사치는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나 역시 저 악취 나는 하수도 바닥에 내던져졌을 때 저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마침내 홀로 살아남아 맨홀을 뚫고 지상으로 기어 나온 엘레나의 헐벗은 육체는, 국가 시스템의 비정한 은폐와 대중의 무심한 일상 속에서 유령처럼 부유한다. 살아남았으나 모든 존엄을 상실한 채 오물을 뒤집어쓰고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은, 문명이라는 안락한 감옥 속에서 망각하고 있던 인간 본성의 섬뜩한 심연을 집요하게 되묻게 만든다.

문명의 바닥을 뚫고 떨어진 하수도의 지옥도.
생존의 벼랑 끝에서 인간성을 시험당한 우리 모두를 향한 서늘한 자문.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쿠팡플레이(Coupang Play)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감상했다. 좁은 바 내부의 폐소공포증적 공기와 후반부 지하 하수도의 끈적끈적한 오물, 기름에 젖은 피부의 질감이 스크린 너머로 악취를 풍기듯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지닌 존엄의 한계와 위선을 가장 처절하고도 신랄한 블랙 코미디로 조롱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수장고의 [크레딧이 올라가도] 랙에 영구 보관한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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