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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위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크리스찬 베일이 차가운 처단자로 분한 《이퀼리브리엄》은 인간의 감정이 통제된 미래의 전체주의 독재 국가를 배경으로 한 SF 디스토피아 액션 시네마다. 대형 스튜디오 자본과 매끄러운 할리우드 장르 문법이 결합하여 극장가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대중적으로 가장 친숙하고 가볍게 소비되는 주류 오락 영화의 완벽한 규격을 수행한다. 개봉 당시의 자극적인 마케팅과 세월의 장벽 탓에 시네필의 라이브러리 안에서 오랫동안 외면받기도 했으나, 오랜 시간의 여과를 거쳐 재평가받는 독창적인 액션 시퀀스와 배우의 묵직한 마스크가 매력적인 합을 이루는 타이틀이다.

줄거리: 감정이 거세된 세계, 그리고 서서히 깨어나는 성직자의 영혼

제3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인류는 전쟁의 근원이 인간의 '감정'에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거세하는 약물 '프로지움'의 상시 투약을 의무화한 독재 사회 '리브리아'를 건설한다. 최고 권력자 '파더'의 지휘 아래, 감정을 느끼는 변절자들과 그들이 소장한 시, 그림, 음악 등 모든 예술적 파편을 가차 없이 태워버리는 특수 요원 '그라마톤 클레릭'. 그중에서도 가장 냉혹하고 완벽한 처단자였던 존 프레스톤(크리스찬 베일)은 어느 날 실수로 프로지움 앰플을 깨뜨리며 투약을 거르는 사건을 겪는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슬픔, 베토벤의 교향곡이 주는 경외감,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된 프랭크는, 자신이 수호하던 체제의 거대한 위선과 잔혹함을 깨닫고 저항군과의 은밀한 접촉을 시작한다.

결말: 체제의 중심을 통타하는 건카타, 독재자의 심장을 쏘다 (※ 스포일러 주의)

감정을 숨긴 채 위장 근무를 이어가던 프레스톤은 신임 파트너와 의장 브랜트의 치밀한 덫에 걸려 결국 체제 전복자라는 사실이 탄로 난다. 하지만 이는 반란군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정부 수뇌부가 설계한 거대한 음모였으며, 프레스톤은 마지막 관문인 의장실로 압송된다. 그 순간, 프레스톤은 억눌렀던 감정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소총과 권총을 신체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가공할 만한 무술 '건카타(Gun Kata)'의 극치를 선보인다. 의장실을 지키던 수십 명의 경비대를 홀로 초토화하고, 자신을 배신했던 브랜트와 가짜 '파더'의 역할을 대행하던 의장 듀퐁까지 완벽한 건카타의 궤적으로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 리브리아의 심장부인 프로지움 생산 공장과 방송탑이 저항군의 폭파로 무너지며 통제의 벽이 깨어지고, 해방된 군중들의 함성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프레스톤의 얼굴을 끝으로 혁명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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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팬심을 건드린 오판의 마케팅, 세월의 여과를 거쳐 발견한 액션의 멋

과거 이 영화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그리 좋지 못한 편견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던 타이틀이다. 개봉 당시에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던 시기라 어떠한 배우 버프도 작용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주 어렸을 적 이 필름의 전체는 아니지만 부분 부분을 잠깐 단편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화려해 보이기는 하나 현실성이 전무하고 겉멋만 잔뜩 든,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액션 정서가 당시의 시선에는 생소하고 유치해 보이기만 했다. 사방에 탄환이 빗발치는데 피 한 방울 제대로 튀지 않는 무결점의 총격신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싶었던 탓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아카이브 랙에서 가장 철저하게 밀어내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팬심을 역방향으로 자극했던 극장 홍보 문구였다. "열광은 시작됐다. 매트릭스는 잊어라!"라는 무모한 카피가 화근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최애 영화인 《매트릭스》의 거대한 아우라를 감히 어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영화가 걸고넘어지며 비교를 한단 말인가 하는 거부감과 오기가 발동했다. 그 뒤로는 인생의 여정에서 기회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이 영화만큼은 두 번 다시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이 파편을 모든 사소한 감정과 편견의 앙금들이 완전히 증발하고 난 지금의 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온전히 감상하게 되었다.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의 경이로운 연기 스펙트럼과 필모그래피를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고, 마침 《매트릭스》 시리즈의 재개봉 소식까지 들려오는 현재,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겪어보았을 좁은 시야와 특정 작품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심이 걷힌 상태에서 마주한 것이다.

 

과연 모든 편견의 과정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영화가 역사적인 엄청난 걸작까지는 아닐지언정 상업 시네마의 장르적 규격 안에서 정말 괜찮은 수작이라는 것을 이번 상영을 통해 확연히 깨달았다. 당시에는 그저 유치한 아동용 활극처럼 보였던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모든 액션 신, 특히 '건카타(Gunkata)' 기술의 유려한 동선이 지금의 눈으로 보니 생각보다 대단히 매력적이고 멋있기까지 했다. 물론, 피 한 방울 없이 정장 제복의 깃을 세우며 칼날 같은 각을 유지하는 연출 특유의 유치하고 만화적인 느낌은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지가 않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베일이 맡아왔던 수많은 명캐릭터들 사이에서 혹시나 이 '존 프레스톤'이라는 인물이 그의 위대한 필모그래피에 오점을 남긴 헐거운 구멍이지 않을까 염려했던 오랜 생각은 이번 재생을 통해 완전히 말끔히 사라졌다.

최애작을 건드린 무모한 카피와 소년 시절의 좁은 시야가 만들어낸 오랜 오해를 깨뜨리고, 세월의 여과를 통해 비로소 준수한 장르적 가치를 인정하게 된 SF 디스토피아 시네마. 만화적인 겉멋과 특유의 유치함은 옅은 잔상으로 남아있을지언정, 크리스찬 베일의 정제된 연기력과 독창적인 건카타 액션의 세련된 타격감만큼은 컬렉션의 규격을 충실히 만족시키는 웰메이드 상업 파편.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사방을 압도하던 마지막 권총 카타의 소음이 멎고 독재자의 제국이 무너지는 혁명의 불길을 보며 디스크 플레이어를 정지했다. 이번 상영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류 마케팅의 오판과 소년기 특유의 맹목적인 추종심이 쌓아 올린 견고한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고,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비로소 웰메이드 소장 타이틀로서의 본질을 담백하게 마주한 뜻깊은 여정이다. 국내 발매사인 아라미디어에서 정식 발매한 풀슬립 한정판 블루레이 패키지는 블랙톤의 사이버 감성을 강조한 슬립케이스 전면에 크리스찬 베일의 역동적인 총기 액션 실루엣을 새겨 넣어 컬렉터의 소유욕을 정조준한다. 본편 디스크(BD-50 1장)가 전해주는 DTS-HD MA 5.1 사운드는 거실 스피커를 뚫고 나올 듯 묵직한 타격감을 선사하며, 스페셜 피쳐에 포함된 '건카타 인덱스(GUN-KATA INDEX)'를 통해 이 영화의 핵심 미학을 복기하는 유희도 쏠쏠하다. 다만 피지컬 미디어 수집가의 시선에서 비디오 스펙이 원본 화면비(2.39:1)를 온전히 사수하지 못하고 1.78:1 영상 비율로 변형되어 수록된 지점은 스크린 위에서 못내 짙은 시각적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동봉된 북클릿의 촬영 콘셉트 기록과 상징적인 장면들이 실린 엽서를 손에 쥐었을 때의 포만감은, 이 파편이 지닌 컬트적 가치와 한정판 패키지로서의 존재감을 충분히 대변해 준다.

[국내 정발 블루레이] 이퀼리브리엄 (2002) – 크리스찬 베일의 건카타 액션, 감정 통제 사회를 그리다 :: 4K 개봉기 아카이브

 

[국내 정발 블루레이] 이퀼리브리엄 (2002) – 크리스찬 베일의 건카타 액션, 감정 통제 사회를 그

· 감정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사회, 단 한 사람의 반란· 크리스찬 베일의 ‘건카타’ 액션으로 기억되는 SF 액션 스릴러· DTS-HD MA 5.1 포함, 원본 비율과 다른 아쉬운 영상 비율· 북클릿,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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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조악한 복제물이자 배우의 필모그래피 속 숨기고 싶은 구멍이라 치부했던 과거의 오해를 완전히 털어내고, 상업 엔터테인먼트 시네마로서의 확실한 매력과 독창적인 액션 미학을 기분 좋게 접수하며 이 타이틀은 예정대로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카테고리 랙에 아주 매끄럽게 안착시킨다. 라이브러리 안에서 철없던 시절의 좁은 시야를 환기하는 기분 좋은 추억의 파편이자, 언제든 가볍게 플레이어에 밀어 넣어 크리스찬 베일의 차가운 눈빛과 건카타의 정교한 궤적을 감상할 수 있는 확실한 오락적 표준 규격으로 단단히 보존해 둘 것이다. 굴절됐던 시선이 걷힌 자리에 피어난 기분 좋은 장르적 만족감, 그리고 묵직한 패키지의 질감을 음미하며 오늘 밤의 긴 영사를 유쾌하게 마감한다.


★이전 감상문 보기: [어쩌다 피칠갑 #12] 복수의 잔혹함마저 희석시킨 불협화음, 넷플릭스 퍼니셔의 그늘에 가려진 아쉬운 파편: 《퍼니셔 (2004)》 No. 133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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