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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학 감독의 《튜브》는 서울의 지하철 시스템을 통제 불능의 인질로 잡은 테러범과 이를 막으려는 형사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2000년대 초반 한국형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 시네마다. 당시 한국 영화계를 감싸고 있던 대작 주의 열풍과 거대 자본이 결합하여 탄생한 이 타이틀은 화려한 볼거리와 대중적인 오락 영화의 외피를 철저히 지향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이라는 제작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과도한 비장미와 정제되지 못한 연출은 주류 상업 영화의 매끄러운 규격 대신 기묘한 불협화음을 자아낸다.

줄거리: 허술한 보안을 뚫고 시작된 지하철 점거, 그리고 폭주의 서막

정부에게 버림받은 복수를 꿈꾸는 냉혹한 테러범 강기택(박상민)은 무기를 은닉한 채 너무나 손쉽게 서울의 지하철 열차를 장악해 버린다. 그동안 저지른 테러로 인해 이미 얼굴이 널리 알려진 거물급 수배자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문제 없이 공공시설인 열차를 탈취했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의 거대한 개연성 틈새를 드러낸다. 열차 내부에 강력한 폭탄 장치를 장착하고 승객들을 인질로 삼아 정부를 협박하며 시속 100km로 폭주하는 기택. 이 황당하고 위태로운 폭주를 멈추기 위해, 과거 기택에게 연인을 잃고 복수심을 불태우던 강력반 형사 장도준(김석훈)이 달리는 열차 내부로 몸을 던진다. 여기에 도준을 짝사랑하던 소매치기 송인경(배두나)까지 의도치 않게 이 피비린내 나는 테러 현장에 얽히게 되면서, 열차 안은 거대 자본이 무색해지는 대치의 전장으로 변모한다.

결말: 당인리 발전소 돌진을 막기 위한 희생, 폭발 속의 피날레 (※ 스포일러 주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강기택의 유일한 부하와 기택 본인까지 모두 제거되지만, 사건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열차의 제어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져 그 어떤 방법으로도 멈출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과 함께, 이대로 폭주하면 당인리 발전소와 충돌해 서울 전체가 대파국을 맞이하게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밝혀진다. 발전소 돌진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막기 위해, 형사 장도준은 부상을 입은 송인경을 포함한 모든 승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뒤 홀로 조종석에 남는다. 도준이 온몸을 던져 수동으로 열차를 극적으로 멈춰 세우는 순간, 열차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사건은 종결된다. 도시를 구하고 불꽃 속으로 사라진 도준의 영웅적인 희생과 남겨진 송인경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특유의 무겁고 비장한 호흡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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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투자 뒤에 숨겨진 기묘한 비하인드, 영화가 이상해진 진짜 이유

이 영화를 완주하고 나면 "대체 이 영화에는 무슨 엄청난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제작 연도가 2003년이라는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톤앤매너가 간만에 볼 정도로 지나치게 비장하고 유치하며 촌스럽기 짝이 없다. 당시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였던 김석훈, 배두나, 박상민이라는 초호화 캐스팅을 완성하고, 실제 서울 지하철 공사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아 대규모 세트와 장소 섭외,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7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제작비를 쏟아부었음에도 영화가 이토록 이상해진 데는 지독한 사연이 숨어 있다.

 

사실 《튜브》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를 강타했던 '할리우드 따라잡기'식 대작 강박증이 낳은 대표적인 비운의 결과물이다. 기획 단계에서는 《스피드》나 《다이하드》 같은 세련된 도시형 액션 스릴러를 표방했으나, 촬영 과정에서 제작비 조달 문제와 투자사와의 갈등, 그리고 시나리오의 잦은 수정으로 인해 현장은 그야말로 난항의 연속이었다. 특히 헐리우드식 비주얼을 구현하려다 보니 정작 중요한 캐릭터들의 감정선과 개연성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고, 그 빈자리를 세기말 감성의 과도한 신파와 홍콩 누아르식의 오글거리는 비장미로 무리하게 채워 넣다 보니 연출의 완급 조절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자본의 기술력과 장소의 스케일은 확보했으되, 정작 이를 이끌어갈 세련된 연출적 센스가 결여되었을 때 블록버스터가 얼마나 공허하고 기괴해질 수 있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씁쓸한 타이틀이다.

 

할리우드의 외피를 갈망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거대하고 유치한 과도기적 잔상. 실제 지하철을 무대로 한 막대한 자본의 스펙터클을 확보하고도, 시대착오적인 과잉 신파와 무너진 개연성 탓에 끝내 세련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비운의 폭주 시네마.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멀티플렉스의 메인 스크린을 정조준하며 기획된 대형 상업 무비 특유의 화려한 스케일은 아카이브의 한 자리를 채우기에 나쁘지 않은 외형을 지녔지만, 연출의 과장된 무게감과 촌스러운 질감은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 이면에 존재했던 대작 주의의 기만적인 민낯을 여실히 증명한다. 세련된 장르 장치 대신 억지 비장미를 선택한 대가가 어떤 불협화음을 낳는지 명확히 확인한 시간이다.

 

거대 자본의 투입과 대중적 오락 영화의 규격을 충족시키려 애썼다는 관점에서, 이 타이틀은 일단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카테고리에 입주시킨다. 비록 완성도 면에서는 유치함과 실소를 자아내는 아쉬운 파편일지라도, 2000년대 초반 충무로가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고스란히 박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카이브 랙 한구석에 묘한 기록물로 보존될 것이다.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웠던 한국형 대작의 영사를 다소 복잡한 감정으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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