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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혼스》는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해리 포터'의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던지기 위해 선택한 가장 파격적이고 기괴한 다크 판타지 중 하나다. 연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남자에게 자라난 악마의 뿔, 그리고 그 뿔을 마주한 인간들이 내뿜는 숨겨진 욕망의 추악함. 이 영화는 B급 호러의 잔혹함 속에 묘하게 애절한 로맨스를 버무려, 불쾌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독특한 미학을 선사한다.

악마의 뿔, 인간의 가장 추악한 속살을 찢어 발기다

영화의 백미는 이그(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이마에 자라난 뿔의 기괴한 능력이다. 이 뿔을 마주한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자신의 가장 깊숙하고 더러운 비밀과 본능을 가감 없이 털어놓게 된다.

 

독실한 척하던 이웃이 음란한 욕망을 분출하고,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보다 자신의 쾌락을 좇는 장면들은 블랙 코미디적이면서도 지독하게 불쾌하다. 장르물의 거장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은 이 과정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감각적인 영상미로 포장해,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 혐오를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만든다.

결핍된 악마, 찌질하고 약해빠진 복수의 여정

하지만 이 뿔 달린 존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강력한 악마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악마의 뿔'이라는 강력한 치트키를 가지고도 결말까지 시종일관 인간 빌런들에게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고전한다.

 

능력을 이용해 진범을 찾아내는 과정조차 치밀하기보다는 찌질하고 감정에 휩쓸려 위태로워 보인다. 복수의 막바지에 이르러 뱀을 부리고 불타는 날개를 돋아내며 비주얼적으로는 완전한 악마로 각성하지만, 그 힘조차 압도적이라기보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약해빠진 악마'라는 설정은 영화의 호불호를 가르는 지점이자, 동시에 이 복수극을 더욱 처절하고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독특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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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로맨스와 찝찝한 결말의 혼종 (※ 결말 스포일러)

영화는 기괴한 B급 다크 판타지로 시작했지만, 그 근원은 죽은 연인을 향한 지독하고 순수한 사랑에 닿아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범인을 처단하는 과정은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 끝에 죽음으로써 연인과 재회하는 이그의 모습은 묘하게 아름답고 애절하다. 어쨌든 메린을 죽인 진범은 다름 아닌 이그가 가장 믿었던 친구 '리'였다. 메린을 짝사랑했던 리는 소시오패스적인 본성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판타지적 설정을 쏟아부어 해결해 버리는 후반부의 전개와 무언가 찝찝함을 남기는 마무리는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재의 신선함에 비해 이야기의 매듭이 다소 투박하게 묶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말이 좀 별로긴 하다만 그래도 독특한 소재라 재미있게 봤다. 뿔 달린 존재치고(악마인데, 인간보다 못하다니) 너무 약하다."

 

거창한 철학이나 치밀한 서사보다는, '해리 포터'가 악마의 뿔을 달고 사람들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린다는 그 상상 초월의 소재와 비주얼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찌질하고 약해빠진, 그래서 더 처절했던 악마의 마지막 핏빛 로맨스.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그 찰나의 순간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킬링타임 오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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