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선입견 없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훌륭한 관람 습관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무지(無知)'가 관객을 상상조차 못한 기상천외한 세계로 멱살 잡고 끌고 가기도 한다.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한 채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초반부터 "도대체 뭔 영화가 이래?"라며 동공 지진을 일으키게 만드는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 《번 애프터 리딩》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를 향한 기대, 철저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부서지다
우리가 아는 브래드 피트는 고뇌하는 영웅이거나 치명적인 매력의 섹시 가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헬스 트레이너 '채드'는 뇌가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해맑고 매력적인(?) 바보다. 국가 기밀(이라 착각한 찌질한 회고록)을 주워 들고 자전거를 타며 씰룩거리는 빵형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코엔 형제가 작정하고 톱스타들의 이미지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귓가에 맴도는 마성의 이름, "오즈번 콕스!!"
이 대환장극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은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분노조절장애 CIA 전직 요원, '오즈번 콕스'다. 헬스장 직원 린다(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채드가 그를 협박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대뜸 "오즈번 콕스? 당신의 정보가 우리에게 있소!"라고 외치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이 어찌나 '오즈번 콕스'를 찰지고 다급하게 불러대는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스토리는 휘발되지만 그 이름 석 자만큼은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져 귓가를 맴도는 부작용(?)을 겪게 된다.

오랜만에 맛보는 타격감 좋은 순도 100%의 코미디
등장인물 중 단 한 명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 바보들의 멍청한 오해와 헛발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결국엔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와 야반도주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코미디의 정점이다. 거창한 메시지나 감동을 찾으려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이 밑도 끝도 없는 바보들의 행진을 지켜보며 낄낄거리다 보면 어느새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 한 편 잘 봤다"는 시원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영화인지 정보를 찾다가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를 알아보려 노력했고 금세 잊어버렸다) 코엔 형제의 영화라는 것,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다는 정도만 알았다. 막상 볼 때는 브래드 피트 출연작이라는 것만 기억났고, 초반에는 '뭔 영화가 이래?' 하며 적지 않게 당황했다. 특히 오즈번 콕스!! 얼마나 불러댔으면 아직도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
때로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마주한 뒤통수치기가 가장 짜릿한 법. 톱스타들의 얼굴 낭비가 이토록 훌륭한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헛웃음 나오게 완벽한 블랙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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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2] "엄마...?" 기괴하고도 짠한 우주 고아의 최후: 《에이리언 4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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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감상문 보기: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4] 뿔 달린 존재치고 인간보다 못하다니, 찌질한 악마의 처절한 복수극: 《혼스 (2013)》 No. 59 :: 4K 개봉기 아카이브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4] 뿔 달린 존재치고 인간보다 못하다니, 찌질한 악마의 처절한 복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혼스》는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해리 포터'의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던지기 위해 선택한 가장 파격적이고 기괴한 다크 판타지 중 하나다. 연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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