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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느와르의 영원한 바이블이자 전설, 《영웅본색》을 한국에서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보냈다. 하지만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는 바바리코트와 성냥개비가 남긴 그 거대한 아우라를 감당하지 못한 채, 아주 기형적이고 당혹스러운 결과물로 세상에 나왔다. 주윤발과 적룡의 피 끓는 의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팬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쓰디쓴 실망감과 짙은 의문만을 안겨줄 뿐이다. 도대체 완벽했던 오리지널을 두고 왜 이런 사달이 벌어진 걸까?

팩트 체크: '미친 투자자'의 횡포? 혹은 감독의 무리수?

영화를 보고 참담함을 느낀 팬들 사이에서는 "원래 탈북자 영화를 만들려 했는데, 영웅본색에 미친 투자자가 제작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억지 리메이크를 강요해서 이 모양이 되었다"는 루머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와전된 이야기다.

 

애초에 이 작품은 제작사 측에서 《영웅본색》 판권을 공식적으로 사 온 '정식 리메이크 프로젝트'였으며, 심지어 오우삼 감독 본인이 제작 총괄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진짜 문제는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감성적인 드라마에 특화된 송해성 감독의 성향이었다. 사제총기를 들고 쏘아대는 조폭 이야기에 한국적인 '개연성'과 '정서적 깊이'를 부여하겠다며 감독 본인이 무리하게 '탈북자'라는 신파적 설정을 뼈대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즉, 영웅본색에 억지로 꿰맞춰진 것이 아니라,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감독이 억지로 탈북자 신파를 끼워 넣은 대참사였다.

 

탈북자 설정이 쏘아 올린 신파의 늪

오우삼식 간지 폭발 액션을 기대했던 제작진 및 팬들과, 눅눅한 형제애의 눈물샘을 쥐어짜려던 감독의 엇박자는 영화 내내 불협화음을 낸다. 원작이 가진 특유의 '멋'과 쿨한 하드보일드 감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시종일관 질척거리는 신파다. 부산 부두를 배경으로 북한 사투리와 표준어가 섞여 들리며 억지로 감정을 강요하는 전개는 통쾌한 쌍권총 액션을 기대한 관객의 몰입도를 차갑게 식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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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든 실망스러운 결말 (※ 줄거리 및 결말 스포일러)

가장 큰 의문표를 남기는 지점은 바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와 결말이다. 원작의 상징적인 명장면들(위조지폐에 불을 붙이는 씬, 화분 속에 총을 숨겨두는 복수 씬 등)을 억지로 흉내 내면서도 동선은 엉성하고 타격감은 밋밋하다. 무엇보다 태민(조한선)을 처단하고 형제간의 앙금을 털어내는 마지막 순간조차, 어떻게든 원작과 다른 여운을 남기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허무한 비극으로 마무리해 버린다. 아무리 원작의 그림자를 피하고 싶었다 한들, 왜 굳이 이런 감정 과잉의 돌연변이 결말을 선택했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오리지널을 못 따라가네. 영웅본색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살짝 볼만할 수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망이 클 영화. 아무리 본작 시리즈처럼 안 하겠다는 의미일지라도 왜 그런 결말로 마무리 짓는지 실망스럽고 궁금하다."

 

명작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 《무적자》는 원작의 '멋'을 버리고 감독의 고집으로 한국형 '한(恨)'을 주입하려다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혼종을 만들어버렸다. 도대체 명작을 어떻게 망쳐놨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묘한 호기심이 아니라면, 굳이 이 엇박자 신파극을 끝까지 견뎌낼 이유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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