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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순수한 오락적 쾌감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의무감'으로 보게 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전성기 시절 개봉했던 《블랙 팬서》가 누군가에게는 바로 그런 작품일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문화적 현상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호평을 받았지만, 순수하게 팝콘 무비로서의 재미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아쉬운 킬링타임 영화로 남기도 했다.

재미보다는 세계관 유지를 위한 '징검다리'

아프리카의 숨겨진 초강대국 와칸다의 화려한 기술력과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기반의 비주얼은 분명 새롭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템포는 히어로물 특유의 경쾌함보다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소 무거운 정치 드라마에 가깝게 흘러간다. 후반부 대규모 전투 씬마저 투박한 CG로 마무리되면서 오락 영화로서의 카타르시스는 현저히 떨어진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했던, 여러모로 '숙제'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자갈치 아줌마의 외계어, 최대의 미스터리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화제(이자 실소의 원인)는 단연 부산 광안리와 자갈치 시장을 배경으로 한 로케이션 씬이다. 여기서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촌극이 벌어지는데, 바로 할리우드 배우인 나키아(루피타 뇽오)의 한국어 발음이 실제 한국인 엑스트라인 자갈치 아줌마의 발음보다 훨씬 듣기 편하다는 사실이다. "고마워요"를 또박또박 발음하는 나키아와 달리, 한국인 설정의 아줌마가 내뱉는 대사는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최대로 높여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미스터리한 언어의 장벽을 형성하며 묘한 실소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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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빌런, 아쉬운 히어로

오히려 주인공 티찰라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라는 매력적인 빌런이다. 상처받은 흑인들의 역사를 대변하며 혁명을 부르짖는 그의 서사는 주인공의 다소 평면적인 선함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빌런의 매력이 높아질수록 액션 활극으로서의 '재미'가 반감되는 딜레마에 빠지며, 끝내 속 시원한 멀티플렉스 팝콘 무비의 쾌감을 채워주진 못한다.


 

"솔직히 재미있다는 생각은 못 하겠다. 사실 MCU 시리즈의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 영화 중 하나. 여담으로 어째 나키아가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 같다. 이어폰으로 들어도 한국말이라는 것을 하는 것 같은 자갈치 아줌마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

 

마블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억지로 몸을 싣기 위해 관람료를 지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완성도나 메시지를 떠나, 적어도 부산 씬에서만큼은 자막 제작자의 타임코드 싱크 조절 능력보다 '통역 능력'이 더 시급하게 필요했던 영화다.

 


💿 물리 매체 수집가의 덧붙이는 기록 솔직히 내용물만 보면 두 번 재생할 일이 있을까 싶은 타이틀이지만, 노션(Notion)에 넘버링을 매겨가며 MCU 인피니티 사가 풀 컬렉션을 맞추기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책장에 꽂아두어야 하는 계륵 같은 존재다. 그나마 물리 매체로서의 가치를 억지로 찾아보자면, 칠흑 같은 피부색과 어두운 배경의 대비, 그리고 부산 광안대교의 화려한 네온사인 추격 씬을 감상할 때 4K UHD 디스크 특유의 쨍한 HDR 효과가 빛을 발한다는 점 정도다. 한정판 스틸북의 영롱함이 영화 본편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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