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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 감독은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 관객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니키타》, 《제5원소》, 《루시》로 이어져 온 '강인하고 매혹적인 여성 액션'의 계보를 잇는 영화 《안나》는 그가 가장 잘하는 장기를 세련되게 변주한 킬링타임 오락 무비다. 시간을 앞뒤로 쪼개며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전개 방식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 모든 장치를 뚫고 자신의 삶을 쟁취해 내는 주인공의 서사만큼은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 남발의 미학(?)

이 영화의 서사 구조는 꽤나 얄밉다. 어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영화는 어김없이 "사실 3개월 전..." 혹은 "6개월 전..."으로 시간을 되감아 그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속임수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처음 한두 번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지만, 영화 내내 이런 식의 시간 교차 편집이 '반전의 반전의 반전'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중반부 이후부터는 관객도 어느 정도 패턴을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뻔뻔한 반전의 남발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뤽 베송 특유의 경쾌한 리듬감과 맞물려, 팝콘을 씹으며 뇌를 비우고 즐기기엔 아주 훌륭한 오락적 장치로 작동한다.

마침내 새장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다

현란한 액션과 반전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내면, 이 영화의 진짜 알맹이는 '자유를 향한 처절한 갈망'이다. 안나는 모스크바의 비참한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KGB의 손을 잡지만, 결국 그것은 조금 더 화려하고 거대한 '새장'이었을 뿐이다. 체스판의 말처럼 자신을 소모품으로 다루는 국가 기관(KGB, CIA)의 틈바구니에서, 안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판을 뒤집는다. 영화의 결말부, 남성 권력자들을 철저하게 농락하고 스스로 거대한 새장의 문을 열어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안나의 뒷모습은 짜릿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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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와 포크로 완성한 맨몸 액션의 타격감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카테고리에 완벽하게 어울리게, 이 영화는 시각적인 액션 쾌감도 충실하게 채워준다. 특히 초반부 레스토랑에서 안나가 장총의 탄약이 떨어지자 접시, 포크, 심지어 깨진 병을 집어 들고 수십 명의 적을 맨몸으로 박살 내는 롱테이크 액션 씬은 단연 압권이다. 톱모델 출신인 사샤 루스의 길쭉길쭉하고 시원한 피지컬이 우아한 무용 동작과 거친 타격감으로 섞여 들어가며, 뤽 베송 표 액션의 정수를 보여준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 반전의 남발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좋았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찾는 안나는 새장에서 벗어난 것이겠지."

 

수많은 속임수와 얽히고설킨 첩보전의 끝에서, 결국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온전한 자신의 삶을 되찾은 한 인간의 통쾌한 독립 선언문이다. 반전의 피로도를 충분히 잊게 만들 만큼, 시원하고 매력적인 오락 영화다.

 


💿 물리 매체 수집가의 덧붙이는 기록 뤽 베송의 영화는 늘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다. 파리와 모스크바를 오가는 다채로운 로케이션 풍경과 화려한 패션쇼 런웨이, 그리고 쨍한 색감의 액션 씬들은 물리 매체의 높은 비트레이트 환경에서 감상할 때 그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다. 노션(Notion)에 구축해 둔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열어 이 타이틀의 감상란을 채운다. 뻔할 수 있는 전개를 덮어버리는 통쾌한 결말을 상기하며 '기어이 자유를 쟁취한 치명적 스파이'라는 코멘트를 타이핑해 넣었다. 스펙터클한 액션과 반전의 첩보물을 팝콘과 함께 즐기고 싶은 날, 언제든 꺼내 보기 좋은 든든한 컬렉션 중 하나다.

 

[Unboxing] 안나 (Anna, 2019) - 풀슬립 한정판 (Blu-ray Full Slip Limited Edition) :: 4K 개봉기 아카이브\

 

[Unboxing] 안나 (Anna, 2019) - 풀슬립 한정판 (Blu-ray Full Slip Limited Edition)

🔫 Overview: 마트료시카 같은 킬러의 이중생활"성공률 100%의 킬러, 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여자." '니키타', '레옹', '루시'를 잇는 뤽 베송(Luc Besson) 감독의 하드코어 킬링 액션, '안나 (Anna)' 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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