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그 유명한 짤방이 있다. 험악하게 생긴 동네 건달이 주차 시비 끝에 수상한 이웃 남자를 무자비하게 두드려 패는 장면. 놀랍게도 맞고 있는 남자의 정체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였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웃사람》은 스릴러 장르의 클리셰를 시원하게 박살 내는 이 짜릿한 '물리 치료' 사이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수작이다. 드디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정주행하며, 그 통쾌한 짤방 이면에 숨겨진 진짜 서사를 마주했다.

삼천포로 빠지지 않는 촘촘한 군상극의 묘미
이 영화에는 피자 배달원, 가방 가게 주인, 경비원, 새엄마, 조폭 등 맨션에 거주하거나 얽혀 있는 수많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보통 이렇게 캐릭터가 많으면 서사가 지저분해지고 이야기의 초점이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웃사람》은 그 많은 인물들의 의심과 사연을 하나의 굵직한 사건(살인마의 다음 타깃)으로 모아내는 솜씨가 꽤나 훌륭하다. 얽히고설킨 톱니바퀴들이 붕 뜨는 캐릭터 하나 없이 제 역할을 다하며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출은 칭찬할 만하다.

살인마를 압도하는 일상 속 괴물들의 타격감
무엇보다 이 영화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은 배우들의 살벌한 연기력과 캐릭터성이다. 서늘한 눈빛으로 이웃들을 관찰하는 살인마 류승혁(김성균)의 연기는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조장하지만, 정작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웃집 사채업자 안혁모(마동석)다. 귀신이나 살인마보다 '말 안 통하는 동네 미친개'가 더 무섭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이들의 엇박자 티키타카는 스릴러의 숨통을 트여주는 완벽한 오락적 쾌감을 선사한다.

다 좋았는데... 작위적인 결말의 헛발질 (※ 스포일러)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를 넘나들며 쫄깃하게 달려오던 영화는 안타깝게도 결말부에 이르러 치명적인 헛발질을 한다. 과거의 죄책감과 불안감(공소시효 만료)에 시달리던 야간 경비원 표종록(천호진)이 갑자기 폭주하여 살인마를 처단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다분히 억지스럽다. 소시민들의 연대라는 메시지를 억지로 완성하기 위해 캐릭터의 감정선을 너무 작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끝까지 세련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웰메이드 스릴러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드디어 매번 궁금했던 그 짤방의 영화를 보게 됐다. 이런 내용이었구나. 다른 영화에 비해 많은 캐릭터들로 얽히고설켜서 너무 정신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붕 뜨는 거 없어 좋았다. 결말 표종록의 폭주만 빼고 말야."
결말의 아쉬움을 감안하더라도, 뻔한 할리우드식 스릴러와는 궤를 달리하는 한국형 '생활 밀착 서스펜스'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훌륭한 선택지다. 살인마조차 벌벌 떨게 만드는 통쾌한 짤방의 진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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