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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늘 무겁고 셰익스피어의 고전 비극 같았던 천둥의 신이 마침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토르: 라그나로크 (2017)》는 자칫 지루해질 뻔했던 시리즈에 화려한 네온사인과 유쾌한 농담을 들이부으며 완벽한 심폐소생술을 해낸 블록버스터다.

 

긴 머리를 자르고 가벼워진 천둥의 신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변화는 바로 토르의 외모다. 1편부터 고수해 오던 트레이드마크인 치렁치렁한 금발을 과감하게 잘라버렸는데, 낯설기는커녕 짧은 머리의 토르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잘 어울린다. 가벼워진 머리칼만큼이나 캐릭터의 성격도 한결 유쾌해졌고, 망치(묠니르)라는 상징적인 무기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천둥의 신'으로 각성하는 과정은 팝콘 무비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오락적 쾌감을 선사한다.

 

눈과 귀를 때리는 원초적인 카타르시스

우주 쓰레기장 같은 사카아르 행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주얼은 시종일관 컬러풀하고 경쾌하다. 특히 헐크와의 투기장 검투사 매치부터, 메인 빌런 헬라(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인 카리스마, 그리고 발키리의 등장까지 버릴 캐릭터가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명곡 'Immigrant Song'이 터져 나오는 하이라이트 시퀀스다. 번개를 두른 토르가 적진을 향해 몸을 던지는 순간, 극장의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의 존재 이유는 그것으로 완벽하게 증명된다. 멀티플렉스 생태계에서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긁어주는 짜릿한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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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파국을 예고하는 서늘한 그림자 (※ 쿠키 영상)

'라그나로크(세계의 멸망)'라는 무시무시한 부제답게, 영화는 유쾌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고향 아스가르드가 파괴되는 묵직한 결말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의 호기심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하는 것은 엔딩 크레딧 직전에 등장하는 첫 번째 쿠키 영상이다. 우주를 떠도는 토르와 로키의 피난선 위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전함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장면. 시종일관 이어지던 유쾌한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키는 이 서늘하고 압도적인 떡밥은, 다가올 거대한 위협(타노스)을 예고하며 다음 편을 도저히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 가장 성공적인 오락 영화의 가장 완벽한 절단마공인 셈이다.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들이다."

 

진지함은 덜어내고 오락성은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짧아진 머리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게 몰아치는 액션과 유머. MCU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이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기에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팝콘 무비의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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