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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대한 프랜차이즈 영화를 감상할 때, 가끔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최고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쌓아 올린 전설적인 오리지널 3부작의 무게를 전혀 모른 채, 오직 '조니 뎁이 해적으로 나온다'는 얄팍한 정보 하나만 들고 탑승한 이 네 번째 해적선,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2011)》는 그래서 더없이 유쾌하고 통쾌했다.

 

시리즈 뉴비에게 내린 축복, 백지상태에서 즐기는 해양 어드벤처

시리즈의 골수팬들에게 이 작품은 앞선 3부작의 웅장한 해전이나 윌 터너, 엘리자베스 스완의 부재로 인해 종종 아쉬운 평가를 받곤 한다. 하지만 전작들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이나 잣대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독립적인 한 편의 팝콘 무비'로 마주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복잡한 전사(前史)를 꿰고 있을 필요 없이, 불로의 샘을 찾아 떠나는 직관적인 모험, 이리저리 통수를 치는 유쾌한 사기극, 그리고 조니 뎁이 완성한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의 독보적인 매력만으로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히려 복잡하게 얽혀있던 전작들의 서사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킬링타임 어드벤처의 정석이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시각적 스펙터클 (feat. 인어 사냥)

블록버스터의 본분에 충실한 화려한 시각 효과 역시 이 영화를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카테고리에 올리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화이트캡 베이에서 벌어지는 칠흑 같은 밤바다의 '인어 사냥'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인어들이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포식자로 돌변하여 뱃사람들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은, 홈시어터의 화면과 오디오를 꽉 채우는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낯선 조류로 합류한 페넬로페 크루즈(안젤리카 역)의 매력적인 활약과, 검은 수염의 주술적인 카리스마까지 더해져 화면은 시종일관 지루할 틈 없이 화려하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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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의 샘'을 향한 유쾌한 사기극과 결말 (※ 스포일러 주의)

이야기는 런던에서 가짜 잭 스패로우가 선원들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으로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옛 연인 안젤리카와 악명 높은 해적 검은 수염(이안 맥셰인)의 배 '앤 여왕의 복수'호에 강제로 승선하게 된 잭. 이들의 목적지는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불로의 샘'이다. 샘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폰세 데 레온의 은잔 두 개와 인어의 눈물이 필요하다. 여기에 영국 해군의 사략선장이 된 숙적 바르보사(제프리 러쉬)와 이단 심문을 위해 샘을 파괴하려는 스페인 함대까지 가세하며 치열한 레이스가 벌어진다.

 

마침내 샘에 도달한 세력들. 스페인 함대가 샘을 부수고, 바르보사는 독이 묻은 검으로 검은 수염을 찌른 뒤 그의 배를 차지해 떠난다. 혼전 속에서 안젤리카마저 독에 베여 죽어가는 위기 상황. 잭 스패로우는 기지를 발휘해 두 개의 잔에 남은 물을 담고 한쪽에만 인어의 눈물을 넣는다. 그리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검은 수염을 속여, 아버지가 딸의 수명을 빼앗는 대신 자신의 수명을 딸에게 바치게 만들어 안젤리카를 살려낸다.

 

결국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안젤리카를 무인도에 쿨하게 버려둔 채, 잭 스패로우는 유리병 속에 갇혀버린 자신의 애마 '블랙 펄'을 되찾기 위해 조샤미 깁스와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며 유쾌하게 막을 내린다.


 

"가장 완벽한 항해는,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기대감을 비운 채 돛을 올릴 때 시작된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전작들과 굳이 무게를 잴 필요는 없다. 팝콘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럼주 냄새 진동하는 잭 스패로우의 능청스러운 발걸음을 따라가며 실컷 웃고 즐겼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정보도 선입견도 없이 마주했기에 오히려 100%의 순수한 오락성으로 보답받았던, 참으로 기분 좋은 항해였다.


★이전 감상문 보기: [크레딧이 올라가도 #3] 끔찍한 야만의 시대, 어둠을 견뎌낸 행동하는 어른들에게 바치는 묵념: 《남영동1985 (2012)》 No. 17 :: 4K 개봉기 아카이브

 

[크레딧이 올라가도 #3] 끔찍한 야만의 시대, 어둠을 견뎌낸 행동하는 어른들에게 바치는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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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감상문 보기: [포크 호러의 심연 #2] 흙무덤 속에서 발굴해 낸 매혹적이고 불길한 장르의 핏빛 지도: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2021)》 No. 20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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