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키어-라 재니스 (Kier-La Janisse)
- 출연: 로버트 에거스, 앨리스 크리지, 피어스 해거드 등
- 개봉 연도: 2021년

"우리가 흙 아래 묻어버렸다고 믿는 것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저 기억에서 잊혔을 뿐이다."
제1장. 전 세계의 음산한 흙냄새를 긁어모은 거대한 마법진 이 방대한 아카이브는 단 하나의 숲이나 고립된 마을만을 비추지 않습니다. 영국의 짙은 안개부터 미국의 척박한 개척지, 토속 신앙이 깃든 아시아의 산야,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미지의 영토까지 지구상의 모든 불길한 흙냄새를 화면 가득 끌어모읍니다. 거친 필름 노이즈와 함께 파편적으로 제시되는 수백 편의 기괴한 미장센들은, 시청자를 안락한 거실에서 끌어내어 축축하고 폐쇄적인 제의의 현장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습니다.

제2장. 잊힌 교리를 따라가는 3시간의 매혹적인 강령술 머릿속에 막연한 심상으로만 맴돌던 '포크 호러'라는 장르의 기원과 맥락을 이토록 집요하고 세밀하게 해체한 기록물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영국의 '불경한 삼위일체(The Unholy Trinity)'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 3시간 남짓한 학술적 탐구는, 모호했던 지식의 안개를 걷어내고 장르의 뼈대를 선명하게 세워줍니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연대기를 묵묵히 따라가다 보면 시청자는 필연적인 저주에 시달리게 됩니다. 다큐멘터리에 인용된 수백 편의 낯선 영화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영사기에 걸어보고 싶어지는, 걷잡을 수 없는 지적 갈증과 맹목적인 탐구욕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죠.

제3장. 필름의 제단에 일생을 바친 파수꾼들의 증언 작품을 이끄는 수많은 장르 감독과 민속학자, 비평가들은 단순한 인터뷰이가 아닙니다. 화면 위로 교차하는 이들은 잊힌 토착 신앙과 금기의 텍스트를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평생을 낡은 필름의 제단에 바친 사제들입니다. 이들의 현학적인 증언은, 과거의 낡은 유물이 어떻게 현대의 불안과 공포로 기민하게 치환되는지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학술적 표본이 됩니다.


제4장. 저주의 텍스트를 고스란히 복원하는 수집가의 밤 이 묵직한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방대한 물리 매체 컬렉션의 한가운데에 놓여야 할 핵심적인 유물입니다. 특히 세버린 박스셋에 동봉된 두툼한 소책자를 펼쳐 들고, 행여나 그 불길한 뉘앙스와 분위기가 흩어질까 원문의 형식을 최대한 변경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개인 소장용 번역을 이어가다 보면 그 오컬트적인 감상은 극대화됩니다. 훌륭하고도 불길한 길잡이를 손에 쥐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이들이 지목한 수많은 제물(영화)들을 발굴해 내는 끝없는 십자군 원정뿐입니다.

[The Verdict]
- 학술 지수: ★★★★★ (막연했던 흙냄새의 근원을 파헤친 가장 완벽한 영상 논문)
- 탐구 지수: ★★★★★ (수백 편의 불경한 텍스트를 찾아 헤매게 만드는 지적인 저주)
- 한 줄 평: 흩어진 공포의 파편을 꿰맞춘 대가로, 끝도 없는 영화 사냥을 떠나야 하는 황홀한 저주에 걸리다.
물리 매체 수집가의 덧붙이는 기록 본 다큐멘터리가 수록된 묵직한 세버린(Severin) 박스셋의 패키지 아트워크와 상세한 언박싱 기록은 블로그 내 물리 매체 카테고리에서 별도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장용 디스크가 뿜어내는 서늘한 물성을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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