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영화 <The Monster of the Opera (Il mostro dell'opera, 1964)>의 물리매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정리한 영화 제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이야기입니다. 재미로 올리는 글이니 가볍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가 예술이라고? 배고파 봐라, 그딴 소리 나오나."
여기, 이탈리아 장르 영화(지알로, 스파게티 웨스턴)의 살아있는 전설, 각본가 에르네스토 가스탈디가 있다. 그가 Severin Films 블루레이 부가영상에서 털어놓은 60년대 영화판의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던 '낭만적인 시네마 천국'이 아니다. 그건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에서의 생존 투쟁이었고, 벼룩이 들끓는 극장에서의 푼돈 벌이였다.
거장이 말하는 <오페라의 유령> 뒤에 숨겨진, 땀 냄새와 돈 냄새 진동하는 진짜 비하인드 스토리다.

1959년 8월, 아스팔트는 녹고 우리는 썼다
가스탈디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1959년 12월, 나는 비로소 '먹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굶었다는 소리다.
그해 8월, 로마의 더위는 살인적이었다. 에어컨? 선풍기?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는 레나토 폴셀리 감독과 함께 인디펜덴자 광장의 아케이드, 뜨겁게 달궈져서 발을 디디면 신발이 쩍쩍 달라붙는 녹은 아스팔트 위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 단돈 5,000리라. 지금 가치로 따지면 몇만 원 쥐여주고 "자, 이제 명작을 써봐"라고 한 셈이다. 위대한 이탈리아 장르 영화의 시작은, 고상한 서재가 아니라 신발 밑창이 녹아내리는 거리 위였다.
감독의 인성 수준: "네 약혼녀? 나랑 자면 데뷔시켜 줄게"
폴셀리 감독, 영화는 그럭저럭 찍었을지 몰라도 인간성은 '폐급'이었던 모양이다. 가스탈디가 자신의 약혼녀이자 무명 배우였던 마라 메릴(Mara Maryl)을 영화 속 발레리나 역에 추천하자, 폴셀리는 대뜸 이렇게 내뱉었다.
"좋아. 대신 걔가 나랑 자면."
와, 진짜 클래식한 쓰레기 멘트 아닌가? 가스탈디는 당연히 거절했고, 그 길로 폴셀리와 손절했다. 나중에 폴셀리가 "운 좋게 딴 데서 데뷔했네?"라며 능글맞게 굴었을 때, 가스탈디가 주먹을 날리지 않은 건 그가 보살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먹고사는 게 더 급해서"였을 거다.
'이(Lice)'가 나오는 극장과 50리라의 행복
이 영화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현대의 블록버스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가스탈디는 이를 "팝송 같은 영화"라고 불렀다.
개봉관? 어림도 없다. 이 영화들은 재개봉관을 거쳐, 성당 부속 극장을 지나, 마침내 '이(Lice)'라고 불리는 극장까지 흘러들어갔다. 너무 낡고 더러워서 진짜로 이나 벼룩이 나올 것 같은, 입장료 30~50리라짜리 극장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가 나오는 극장에 미어터지게 몰려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든 말든 들어가서, 자리가 날 때까지 1시간이고 서 있었고, 50리라를 주면 자리를 맡아주는 암표상 같은 알바까지 성행했다. 평론가들은 쓰레기 취급했지만, 이탈리아의 제작자들은 그 벼룩 같은 푼돈을 긁어모아 떼돈을 벌었다. 이것이 바로 B급의 경제학이다.
페라리와 자전거 사이: 故 발터 브란디를 기리며
이번 부가영상에서 가장 가슴 찡한 순간은 친구 발터 브란디를 회상할 때다. 그는 배우이자 스턴트맨, 제작자였고, 가스탈디의 절친이었다.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돈이 넘칠 땐 페라리를 탔고, 망했을 땐 자전거를 탔다. 가스탈디는 말한다. "페라리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그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똑같은 진짜 친구였다."
하지만 말년은 비극적이었다. 가족 문제와 파산으로 자살하려던 그를 가스탈디가 영화 제작으로 겨우 뜯어말렸지만, 결국 그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사는 그의 피를 보고 "피가 아니라 물 같다"고 했을 정도였다.
[총평] "우린 다 죽었고, 영화만 남았다."
노년의 가스탈디는 덤덤하게 말한다. "그 시절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친구들이 죽기 시작하면, 그건 당신이 늙었다는 증거죠."
<오페라의 괴인>은 겉보기에 조잡한 뱀파이어 영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5천 리라에 영혼을 갈아 넣던 작가, 페라리와 자전거를 오갔던 배우, 그리고 벼룩이 끓는 극장에서 열광하던 관객들의 삶이 녹아 있다.
이 블루레이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치열하게, 때로는 비굴하게, 하지만 뜨겁게 살다 간 이탈리아 영화 장인들의 비석이다.
그리고 화면 속 촌스러운 특수효과를 비웃지 마라. 그건 그들의 피와 땀, 그리고 녹아내린 아스팔트다.
[해당 내용은 아래의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Unboxing]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1964) - Danza Macabra Vol. 1 (Disc 1)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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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문은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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