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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영화 <The Monster of the Opera (Il mostro dell'opera, 1964)>의 물리매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정리한 영화 제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이야기입니다. 재미로 올리는 글이니 가볍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The Monster of the Opera (Il mostro dell'opera, 1964)의 초반 장면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모르는 감독이 이탈리아에 있다고?"

 

1988년 <시네마 천국>으로 전 세계를 울린 거장 주세페 토르나토레. 그는 스스로를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 자부하는 양반이다. 그런데 그가 "누구? 레나토 폴셀리? 처음 듣는데?"라며 당황했던 순간이 있었다.

 

오늘은 이탈리아 영화계의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실, 그곳에서 감자 칩을 먹으며 자기네 B급 영화를 돌려보던 '어둠의 동창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Severin Films 블루레이 코멘터리에서 발굴한, 진짜배기 마니아들의 썰이다.


루치오 풀치(Lucio Fulci) 감독

루치오 풀치의 딸, 그리고 감자 칩과 B급 영화

코멘터리를 맡은 영국 배우 마크 톰슨-애쉬워스는 90년대 후반, 로마에서 아주 기묘한 사교 모임에 참석했다. 장소는 이탈리아 고어 영화의 대부 루치오 풀치(Lucio Fulci)의 딸, 안토넬라 풀치의 집.

 

매주 금요일 밤, 이곳엔 이탈리아 B급 영화의 '전설'들이 모여들었다.

  • 레나토 폴셀리 (<오페라의 괴인> 감독)
  • 세르지오 베르곤젤리 (에로틱 호러 감독)
  • 디노 스트라노 (스파게티 웨스턴 배우)
  • 그리고 수많은 잊혀진 배우들.

그들은 모여서 뭘 했을까? 거창한 예술 토론? 아니. 그냥 감자 칩이나 주워 먹으면서, VCR로 자기들이 나온 옛날 싸구려 영화들을 돌려봤다. 디노 스트라노는 자신이 출연했던 <악당들의 도시를 위한 두 개의 38구경 매그넘> 같은 영화를 보며 "내가 저런 걸 찍었어?"라고 놀라기도 했다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의 현장이자, 이탈리아 장르 영화의 가장 인간적인 뒷모습이다.


The Monster of the Opera (Il mostro dell'opera, 1964) 영화 사건의 현장

 

"울워스표 카포디몬테 고딕" (다이소표 명품 도자기)

마크는 폴셀리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아주 기가 막힌 단어로 정의한다. 바로 "Woolworth's Capodimonte Gothic".

  • Woolworth's: 영국의 저가 잡화점 (한국으로 치면 '다이소')
  • Capodimonte: 이탈리아의 화려하고 비싼 '명품 도자기'

즉, "다이소에서 산 싸구려 재료로 흉내 낸 명품 도자기 같은 고딕 호러"라는 뜻이다. 폴셀리의 영화는 우아한 척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세트는 조잡하고, 형사들은 말도 안 되는 셔츠를 입고 있으며, 대사는 셰익스피어 연극 톤인데 내용은 삼류 에로물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부조화가 폴셀리를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매혹적인, 그 '싼티 나는 화려함' 말이다.


<이자벨의 환생 (Black Magic Rites)> 에서 미키 하지테이

 

미키 하지테이의 빨간 레오타드

폴셀리의 광기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 바로 미국 배우 미키 하지테이다. 그가 폴셀리의 후기작 <이자벨의 환생 (Black Magic Rites)>에서 보여준 비주얼은 충격 그 자체다.

 

근육질의 보디빌더가 새빨간 전신 레오타드를 입고, 머리띠를 두른 채 진지하게 흑마술 의식을 치른다. 마크는 이 장면을 자신의 라디오 쇼 홍보물로 썼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펑크 록을 틀고 나서 요들송을 틀어버리는 폴셀리 영화의 종잡을 수 없는 톤(Tone) 전환. 그 혼돈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거장을 이긴 한 방: "토르나토레, 당신 졌어."

마크가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일할 때의 일화다. 토르나토레는 영화 지식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인이다. 그런데 마크가 "레나토 폴셀리 아세요?"라고 물었을 때, 토르나토레는 "누구? 처음 듣는데?"라고 답했다.

 

현장에 있던 스크립터가 경악했다. "주세페 감독님이 모르는 영화인이 있다니!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야!" 마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이겼다."

 

이탈리아 영화의 양지에는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있지만, 그 그림자 속 음지에는 레나토 폴셀리가 있다. 그리고 진짜 영화광들은 양지보다 음지의 곰팡내를 더 사랑하는 법이다.


[총평] 고상한 척하지 마라, 우리에겐 '살집 좋은 뱀파이어'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폴셀리의 초기작이자, 소위 '코러스 걸 3부작' 중 하나다. 해머 영화사의 <드라큘라>가 히트하자, "우린 좀 더 벗기자!"라며 망사 스타킹을 신은 살집 좋은 무용수들을 떼거지로 등장시킨 영화.

 

고상한 예술 영화를 찾는다면 번지수가 틀렸다. 하지만 "다이소표 명품 도자기"가 주는 그 기묘하고 뻔뻔한 매력을 즐길 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폴셀리의 포로다.

 

Severin Films의 블루레이를 사라. 그리고 감자 칩 한 봉지를 뜯어라. 오늘 밤은 당신이 루치오 풀치의 딸이 되는 거다.

 

 

[해당 내용은 아래의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Unboxing]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1964) - Danza Macabra Vol. 1 (Disc 1) :: 4K 개봉기 아카이브

 

[Unboxing]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1964) - Danza Macabra Vol. 1 (Disc 1)

🎭 Overview: 광기가 지배하는 곳 (Insanity Reigns Here)세버린 필름의 'Danza Macabra: Volume One' 박스셋, 그 첫 번째 문을 여는 작품 입니다. 이탈리아 컬트의 거장 레나토 폴셀리(Renato Polselli) 감독의 작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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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문은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 흑백이 주는 치명적인 관능, 《오페라의 괴인(Il mostro dell'opera)》 (1964) :: 4K 개봉기 아카이브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 흑백이 주는 치명적인 관능, 《오페라의 괴인(Il mostro dell'opera)》

1. 이탈리아 호러의 늪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최근 《서스페리아》의 강렬한 색감에 취해 이탈리아 장르 영화에 발을 들였다가, 결국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60년대 흑백 고딕 호러까지 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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