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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영화 <The Monster of the Opera (Il mostro dell'opera, 1964)>의 물리매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정리한 영화 제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이야기입니다. 재미로 올리는 글이니 가볍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는 책이 아닙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쓰레기통행이죠."

 

이탈리아 고딕 호러의 여명기, 1964년. 여기 레나토 폴셀리(Renato Polselli)라는 감독이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부터 호러, 코미디, 심지어 에로틱 스릴러까지 닥치는 대로 찍어댄 이탈리아 B급 영화계의 '잡식성 포식자'.

 

그의 대표작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블루레이(Severin Films 발매) 부가영상에서 발굴해 낸, 영화보다 더 기괴하고 골때리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탈리아 장인의 땀 냄새와 곰팡내가 진동하는 썰들을 즐길 준비가 되었는가?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포스터


"내 이름은 랄프 브라운... 아니, 라이오넬?"

이 감독,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본명은 레나토 폴셀리인데, 크레딧에는 온갖 가명이 난무한다.

  • 라이오넬 A. 프레스턴 (Lionel A. Preston): 자기 이름 철자를 섞어서 만든 애너그램. 스파게티 웨스턴 찍을 때 있어 보이려고 슬쩍 썼다.
  • 랄프 브라운 (Ralph Brown): 이게 압권이다. 제작자 친구(오스카 브라치)랑 기싸움 하다가, "야, 남들이 내가 제작, 각본, 감독 다 해먹는다고 욕하니까, 감독 이름은 가명으로 쓸게. 그럼 내가 다 한 줄 모를 거 아냐?"라는 기적의 논리로 탄생한 이름이다. 주로 후기 에로틱 호러물을 찍을 때 이 이름을 애용했다. (변태성을 숨기기 위함이었을까?)

레나토 폴셀리 감독


코미디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천재' 제작자

1963년, 세상은 이미 '테크니컬러'의 시대였다. 그런데 폴셀리의 호화 캐스팅 코미디 영화 <모텔에서의 모험 (Adventure at the Motel, 1963)>은 굳이 흑백으로 찍혔다. 감독의 의도였냐고? 천만에.

 

"제작자가 지혜가 부족했죠(Lack of wisdom)." 감독은 가볍고 명랑한 코미디니까 당연히 컬러로 찍어야 한다고 했지만, 제작자가 무슨 예술병에 걸렸는지 흑백을 고집했다고 한다. 덕분에 당대 최고의 코미디 듀오 '프랑코 & 치초'가 나온 영화는 시대 착오적인 흑백 화면 속에 갇혀 장렬하게 폭망했다.

모텔에서의 모험 (Adventure at the Motel, 1963) 한 장면


'마약성 라비올리'를 먹은 듯한 후기작들

폴셀리 감독은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에로틱 호러 사이코섹슈얼 스릴러에 심취했다. <사탄의 진실 (The Truth According to Satan, 1972)>, <마니아 (Mania, 1974)>, <성적 도착의 세계...> 같은 제목만 봐도 느낌 오지 않나?

 

이 영화들은 마치 '마약성 라비올리'를 한 접시 비운 것처럼 몽환적이고 퇴폐적이다. 정작 보수적인 이탈리아 본토에선 무시당했지만, 더 자극적인 맛을 원했던 해외 시장에선 꽤 짭짤한 재미를 봤다고 한다. 역시 예술(?)의 세계는 국경을 초월한다.

Riti, magie nere e segrete orge nel Trecento..., 1973의 한 장면


"이탈리아 배우들은 좀 그래..." : 뼈 때리는 디스

폴셀리는 미국 배우 미키 하지테이(Mickey Hargitay)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제인 맨스필드의 남편이자 근육질 보디빌더였던 그는, 스턴트도 직접 하고 준비성도 철저한 '진짜 프로'였다고.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가 압권이다. "미국 배우들은 프로예요. 이탈리아 배우들이 항상 그런 건 아닌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인터뷰어가 "누구 저격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말해 줄 수 없다"며 쿨하게 넘어간다. 누군지 몰라도 찔리는 사람 여럿 있을 거다.


"영화는 명치를 때리는 펀치다"

인터뷰의 마지막, 노감독은 잊혀진 자신의 영화들에 대해 씁쓸하게 회고한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에요. 놔뒀다가 한 달 뒤에 다시 읽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화는 극장에 걸려있는 딱 한 시간 동안 승부를 봐야 해요. 그 타이밍을 놓치면 끝이죠."

 

그의 영화 <미친 세상... 미친 사람들>은 제작사의 문제로 개봉 타이밍을 놓쳤고, 영원히 잊혀졌다. 상업 영화란 '필요할 때 명치를 때리는 펀치(Punch to the stomach)'여야 하는데, 타이밍 지난 펀치는 허공을 가를 뿐이라는 것.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블루레이라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극장에서는 잊혀졌지만, 레나토 폴셀리가 남긴 그 기괴하고, 꼬장꼬장하고, 가끔은 '마약성 라비올리'처럼 취하게 만드는 영화들은 이제 방구석 1열에서 영원히 상영될 것이다.

 

Severin Films의 블루레이를 사라. 그리고 이탈리아 B급 장인들의 고집스러운 손맛을 느껴보라.

 

[해당 내용은 아래의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Unboxing]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1964) - Danza Macabra Vol. 1 (Disc 1) :: 4K 개봉기 아카이브

 

[Unboxing] 오페라의 괴인 (The Monster of the Opera, 1964) - Danza Macabra Vol. 1 (Disc 1)

🎭 Overview: 광기가 지배하는 곳 (Insanity Reigns Here)세버린 필름의 'Danza Macabra: Volume One' 박스셋, 그 첫 번째 문을 여는 작품 입니다. 이탈리아 컬트의 거장 레나토 폴셀리(Renato Polselli) 감독의 작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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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문은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 흑백이 주는 치명적인 관능, 《오페라의 괴인(Il mostro dell'opera)》 (1964) :: 4K 개봉기 아카이브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 흑백이 주는 치명적인 관능, 《오페라의 괴인(Il mostro dell'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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