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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마 되지 않은 방문자들 중에서 이상한 것들을 좋아하실 분들께. 또 이상한 거 들고 왔다고 말씀드립니다. 지난번 <오페라의 괴인 (1964)> 리뷰 기억나실까요? 그건 진짜 서사라고는 밥 말아 먹은, 감독 뇌내 망상을 필름에 싸질러 놓은 수준이었습니다.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 흑백이 주는 치명적인 관능, 《오페라의 괴인(Il mostro dell'opera)》 (1964) :: 4K 개봉기 아카이브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1] 흑백이 주는 치명적인 관능, 《오페라의 괴인(Il mostro dell'opera)》

1. 이탈리아 호러의 늪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최근 《서스페리아》의 강렬한 색감에 취해 이탈리아 장르 영화에 발을 들였다가, 결국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60년대 흑백 고딕 호러까지 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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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번엔 좀 다릅니다. 바로 1965년작 이탈리아 고딕 호러, <일곱 번째 무덤 (The Seventh Grave / La settima tomba)>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영화'입니다. <오페라의 괴인>이 그냥 움직이는 그림자놀이였다면, 이건 적어도 기승전결이 있고, 떡밥 회수도 하고, 엔딩에선 "사실 범인은 이 새끼였고, 이유는 이거였음. 짠!" 하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줍니다.

사건이 해결된 후 조찬을 먹으며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만행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장면

 

물론, B급 쌈마이 냄새가 진동하는 건 매한가지지만요.

<일곱 번째 무덤 이탈리아 영화 포스터>

영화인가, 연극인가, 스쿠비 두인가?

내용은 뻔합니다. 유산 상속받으러 오래된 성(또 그놈의 발소라노 성입니다.)에 모인 사람들, 갑자기 시작되는 살인, 그리고 강령회... 고딕 호러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때려 박았습니다.

 

근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참 낯설다"는 겁니다. 요즘 영화들에 길들여진 제 눈엔 이 영화의 문법이 너무 투박해 보여요.

  • 조악하다: 특수효과? 기대하지 마십쇼. 복도 지나가는 쥐새끼가 햄스터인 거 보고 뿜었습니다.
  • 어설프다: 배우들 연기가 무슨 국어책 읽는 것 같습니다.
  • 서툴다: 편집점이 뚝뚝 끊깁니다.

근데 웃긴 건, 이게 싫지가 않습니다. 마지막에 유령 소동의 전말이 밝혀질 때는 코멘터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만화 <스쿠비 두>에서 "범인은 바로 너!" 하고 가면 벗기는 느낌이라니까요? 황당하면서도 묘하게 속 시원한 그 느낌. 똥 싸다 끊긴 느낌이었던 전작보단 백배 낫습니다.

쥐도 아니고 햄스터라니...하나도 안 무섭고 귀엽잖아. 그리고 고성에 무슨 도끼다시 바닥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실험실 치고 상당히 소박하다.

코멘터리 까보니까 더 골 때리는 뒷이야기

자,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제가 이 영화 코멘터리 번역하면서 알아낸 '트리비아'들을 풀어 보겠습니다. 이거 알고 보면 영화가 2배는 더 재밌어집니다. (아니, 웃깁니다.)

 

① 감독의 정체는 '농담' 따먹기? 감독 이름이 크레딧엔 '피니 클리프(Finney Cliff)'라고 나오는데, 본명은 '가리발디 세라 카라치올로'입니다. 이름 겁나 길죠? 이 양반, 영화 연출은 이게 유일합니다. 원래 연극 배우 출신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가 더럽게 정적입니다. 카메라 워킹보다 배우들 말따먹기가 더 많습니다.

② 제작비가 없어서 '제작 부장'이 배우로 뜀 영화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퍼시벌 경'이라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근데 연기가 좀 어색해요. 왜냐? 전문 배우가 아니라 이 영화 '제작 부장(Production Manager)'인 '움베르토 보르사토 (Umberto Borsato)' 를 데려다 썼거든요. 돈 아끼려고 스태프한테 양복 입혀서 카메라 앞에 세운 겁니다. ㅋㅋㅋㅋ 이게 B급의 리얼 야생 아니겠습니까.

③ 정부한테 "예술성 없다"고 까임 당시 이탈리아엔 자국 영화에 보조금 주는 법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신청했다가 '빠꾸' 먹었습니다. 이유?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전무함." 오죽하면 공무원들이 보기에도 "이건 좀..." 싶었겠습니까. 덕분에 개봉도 거의 못 하고 묻혀버렸다가 80년대에 해적판 비디오로 겨우 살아남은 영화입니다.

④ 의외의 거물급(?) 출연진

  • 잔니 데이 (Gianni Dei): 나중에 이탈리아 컬트 영화계의 아이콘이 되는 양반입니다. 여기선 풋풋한 신인으로 나오는데, 훗날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한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선 좀 찌질하게 나오지만.)
  • 게르마나 도미니치: 여관 주인 딸로 나오는데, 이분 아버지가 그 유명한 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가면>에 나온 마법사라고 합니다. 본인도 나중에 성우로 대성해서 킴 노박, 카트린 드뇌브 목소리 전담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전문 연기자가 아닌 스텝 중 한 분이었다.

총평: 시간 낭비인가? 아니, 이건 '발굴'이다.

솔직히 말해서, 웰메이드 호러를 기대하고 보면 시간 낭비 맞습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를 탐구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꽤 흥미로운 물건입니다.

 

누군가는 이걸 쓰레기라 부르겠지만, 저는 이런 어설픈 영화들이 묘하게 정겹습니다. 완벽하게 세팅된 요즘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어떻게든 영화 한 편 만들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그 땀 냄새가 난다고할까요?

 

고딕 호러가 처음이라면 굳이 추천하진 않겠습니다. (<사탄의 가면> 같은 명작 먼저 보십시오.) 하지만 저처럼 B급 감성에 절여지고 싶은 변태들이라면, 혹은 이탈리아 영화의 쌈마이한 매력을 알고 싶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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