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영화 <The Seventh Grave (La settima tomba, 1965)>의 물리매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정리한 영화 제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이야기입니다. 재미로 올리는 글이니 가볍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역사에서 <일곱 개의 무덤 (The Seventh Grave)>은 기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안개 낀 영국의 고성을 배경으로 한 정통 고딕 호러(Gothic Horror)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이탈리아 특유의 잔혹한 범죄 스릴러인 '지알로(Giallo)'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딕 문학 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나이틀리(Rachel Knightly)의 비디오 에세이를 통해, 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영화가 가진 기묘한 매력을 파헤쳐 봅니다.
문법은 모른 채 억양만 흉내 내다

레이첼 나이틀리는 이 영화를 "언어의 문법(Grammar)은 모른 채 억양(Accent)만 배운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다"고 평합니다.
하얀 잠옷을 입고 촛불을 든 여인, 삐걱거리는 문, 해골, 유산 상속을 위해 모인 친척들... 영화는 영국식 고딕 호러의 시각적 클리셰들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야 할 심리적 공포나 개연성 대신, 이탈리아 지알로 특유의 광기와 폭력성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두 장르의 결합은 어설프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발생합니다.
'판타지 스코틀랜드'와 발소라노 성

영화의 배경은 스코틀랜드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 B급 영화의 성지인 '발소라노 성(Castle of Balsorano)'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감독은 이곳을 '옛 스코틀랜드(Old Scotland)'라는 가상의 시공간으로 설정했습니다.
이곳은 지리적, 역사적 고증이 무시된 '판타지 배후지'입니다. 진짜 영국도 아니고, 진짜 이탈리아도 아닌 이 모호한 공간 설정은 영화의 몽환적이고 기이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킵니다.
3. 1960년대의 '팬픽션(Fan Fiction)'

평론가는 이 영화를 "팬픽션(Fan fiction)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팬픽션"이라고 정의합니다.
1927년 고전 무성 영화 <고양이와 카나리아>를 너무 많이 본 감독과 제작자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의 요소들(미친 과학자, 해적의 보물, 강령술, 가면 살인마)을 덕질하듯 모아서 만든 '2차 창작물' 같다는 것입니다. 비록 완성도는 떨어질지라도, 장르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180도 법칙의 무시와 기술적 결함

영화는 기술적으로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연출 규칙인 '180도 법칙(인물 간의 시선 방향 유지)'조차 지키지 않아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고, 날씨와 조명은 씬마다 제멋대로 바뀝니다.
거기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배경음악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이런 투박함과 엉성함(Non-deliberate comedy)이 오히려 이 영화를 '컬트 영화'의 반열에 올리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그 얼굴, 안토니오 카살레

출연진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집사 '젠킨스' 역의 안토니오 카살레(Antonio Casale)입니다. 그는 이듬해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 '빌 카슨' 역으로 출연해 강렬한 죽음 씬을 남긴 배우입니다.
웨스턴 팬들이라면 이 기괴한 호러 영화에서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입니다.
포토 노벨로서의 성공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영화보다 '포토 노벨(Fotoromanzo)' 형식으로 먼저 출간되어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만화적인 캐릭터와 과장된 설정은 스크린보다는 정지된 사진과 말풍선이 있는 지면 위에서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태생부터 '움직이는 만화책'에 가까웠는지도 모릅니다.
[해당 내용은 아래의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Unboxing] 일곱 번째 무덤 (The Seventh Grave, 1965) - Danza Macabra Vol. 1 (Disc 2) :: 4K 개봉기 아카이브
[Unboxing] 일곱 번째 무덤 (The Seventh Grave, 1965) - Danza Macabra Vol. 1 (Dis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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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화에 대한 감상문은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2] 일곱 번째 무덤 (The Seventh Grave, 1965) - 똥맛 된장인가, 된장맛 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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