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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부터 진하게 풍겨오는 VOD 직행 B급 영화의 향기. 평점 테러에 가까운 참혹한 별점들. 남들은 포스터만 보고도 뒤로가기를 누르겠지만, B급 장르물 특유의 호기심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액션 스타의 얼굴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코 재생 버튼을 누르고야 마는 날이 있다. 존 수이츠 감독의 2020년작 《배틀 크랙(원제: Breach)》은 딱 그런 묘한 의무감과 피로감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영화다.

줄거리: 우주선에 탑승한 불청객과 감염의 공포

서사는 SF 크리처물과 좀비물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충실하게, 어쩌면 너무나도 뻔하게 따라간다. 멸망해가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 '뉴 어스'로 향하는 인류의 마지막 우주선 '헤라클레스' 호. 하지만 이 거대한 방주에는 인류만 탑승한 것이 아니었다. 형태를 변형하는 미지의 외계 기생 생명체가 숨어들고, 승무원들을 하나둘씩 감염시켜 끔찍한 괴물(좀비)로 부활시킨다. 우주선이라는 거대한 밀실 속에서, 주인공들은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는 감염자들과 사투를 벌이며 생존을 위한 처절한 탈출을 시도한다.

결말: 허술한 밸런스와 허무한 생존자들 (※ 스포일러 주의)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설정은 통제력을 잃고 폭주한다. 외계 생명체는 물리적 타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천하무적의 존재로 진화하고, 좀비 군단의 묘사는 B급 감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노련한 기술자 클레이(브루스 윌리스)는 우주선과 함께 외계 생명체를 날려버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결국 거대한 폭발을 뒤로하고 구명정으로 탈출해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는 인물은 단 두 명뿐인데, 이 과정의 설득력이 심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도착한 행성마저 이미 거대한 외계 생명체에게 점령당해 있다는 절망적인 반전을 툭 던지며 영화는 B급다운 허무한 막을 내린다.

평점 2점의 굴욕? 그래도 3점은 줄 수 있는 이유

세간의 평가는 혹독하지만, 내용만 떼어놓고 본다면 그렇게까지 바닥을 칠 만한 망작은 아니다. 물론 SF와 좀비물의 장르적 혼종 속에서 전형적인 감염과 탈출 서사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답습하는 클리셰 덩어리인 것은 맞다. 크리처 디자인의 엉성함이나 무적에 가까운 외계 생명체의 설정 붕괴는 실소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폐쇄된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장르적 오락성 자체는 (기대치를 완전히 바닥에 내려놓는다면) 10점 만점에 2점대보다는 3점대 정도의 킬링타임용으로 소비해 줄 여지는 남아 있다.

브루스 윌리스, 전설의 피로하고도 쓸쓸한 말년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씁쓸한 점은 크리처의 디자인도, 엉성한 서사도 아닌 바로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이다. 스크린을 장악하던 예전의 카리스마는 빛을 잃었고, 대사를 뱉는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감이 역력하게 묻어난다. 그의 건강 상태(실어증 등)가 알려지기 전 촬영된 다작 B급 영화 중 하나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 지친 연기가 단순한 태업이 아님을 알게 되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이 엉망진창인 장르물은, 우리가 사랑했던 위대한 액션 스타의 말년과 그의 마지막 흔적들을 기억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재생해 볼 일말의 가치를 지닌다.


"내용만 보면 그렇게까지 낮은 평점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물론 SF+좀비물이라는 장르적 혼종, 전형적인 감염과 탈출 서사, 그리고 클리셰 덩어리긴 하다. 그래도 10점 만점에 2점대보다는 3점대가 어울린다. 다만 외계 생명체가 지나치게 천하무적이고, 좀비 설정도 너무 오버스러우며, 크리처 디자인도 뭔가 엉성하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인물이 오로지 두 명이라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브루스 윌리스의 연기도 예전 같지 않고, 목소리에서도 피로함이 묻어난다. 그래도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의 말년작 중 하나로서, 그의 마지막 흔적을 기억하는 데는 의미가 있다."

 

엉성한 크리처와 뻔한 전개보다 더 깊은 잔상을 남기는 건, 지친 목소리로 스크린을 지키던 늙은 영웅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 물리 매체 수집가의 다행스러운 기록 천만다행이다. 만약 이 타이틀을 스틸북이나 블루레이로 덜컥 구매했다가 이 엉성한 크리처 디자인과 허탈한 결말을 마주했다면, 수집가로서 귀한 랙 공간을 낭비했다는 자괴감에 꽤나 시달렸을 것이다. OTT 스트리밍을 통해 정신적, 물질적 타격을 최소화하며 가볍게 감상한 내 선택을 스스로 칭찬해 본다.

 

디스크를 꽂는 수고 대신, 익숙하게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켠다. 평점이 바닥을 기는 타이틀이지만, [이걸 왜 봐요? (근데 난 봄)] 카테고리를 당당하게 지정하고 《배틀 크랙》을 욱여넣는다. 비고란에는 'B급 클리셰의 향연, 그리고 피로한 브루스 윌리스의 쓸쓸한 말년 흔적. OTT로 봐서 다행이지 영사기 뚜껑은 열지 말 것'이라고 짧고 굵게 타이핑한다. 전설적인 배우의 씁쓸한 궤적 하나를 수집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며 시청 로그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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