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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와 미디어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그 혼란의 서막.
· 신체는 수신기, 고통은 전파의 증거다.
· 현실과 환각을 뒤섞은 크로넨버그식 미디어 해부.
· ‘비디오드롬’은 충격보다 더 깊은 감각을 남긴다.

 


정주행을 결심한 영화 감독이 몇 명이나 될까. 내게 있어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그런 감독 중 한 명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전부 보고 난 뒤, 다음 타자로 자연스럽게 자리한 이름이었다. 큐브릭이 『샤이닝』 때문이라면, 크로넨버그는 『네이키드 런치』 때문이다. 그 영화가 남긴 충격은 지금도 뚜렷하다. 영화가 이런 감정을 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의 필모를 하나하나 챙겨보는 중이었다. 『열외 인간』, 『브루드』, 『스캐너스』 모두 내 취향에는 그럭저럭 맞았지만, '네이키드 런치'만큼의 느낌은 없었다. 조금 실망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이 영화 『비디오드롬』에서 다시 그 이상한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이거지. 이건 뭔가 온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소규모 방송국을 운영하는 맥스가 불법 영상 '비디오드롬'을 접하면서 환각과 현실 사이를 떠돌다 결국 자살에 이른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다루는 건 그 너머다. 크로넨버그 특유의 육체 변형과 미디어의 융합, 감각과 뇌파의 분열 같은 이상한 공포가 영화 전반에 흘러넘친다. 선구적인 시선으로 ‘미디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어떤 해악을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충격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작품.

 

 

어릴 적 영화관에 가면 불법 비디오의 폐해에 대한 공익광고가 먼저 나왔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꿔 놓을 수도 있습니다.” 『비디오드롬』은 그 문장을 가장 잔인하고 명확하게 영상으로 구현한 영화다. 지금은 비디오 대신 영상 파일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사람의 욕망은 다크웹 같은 곳에서 또다시 악마를 호출하고 있다. 최근 들려온 몇몇 범죄 뉴스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건 그래서일까.

 

이번에 감상한 타이틀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버전. 역시 명성에 걸맞게 패키지부터 정성이 느껴진다. 다만 아쉬운 건 한국어 자막이 빠졌다는 점. 시장의 규모나 언어의 범주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이 타이틀은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전파가 살을 통과하는 영화. 불쾌하고도 매혹적인 경험.


“비디오드롬은 고통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재생되는 미래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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