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압도적인 시각적 아름다움과 재미를 선사함에도 불구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묘한 불쾌감을 남기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2016년작 《아가씨》가 딱 그렇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고딕 양식의 저택, 수려한 의상과 치밀한 3부작 구성의 스릴러는 분명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남은 알맹이를 마주했을 때, 어쩐지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델마와 루이스》의 순수함이 거세된 연대
이 영화의 서사(억압받는 두 여성의 연대와 탈주)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것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작 《델마와 루이스》였다. 약자이자 소수자인 델마와 루이스가 보여준 우정은 비극적인 결말 속에서도 묘한 통쾌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하지만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가 보여주는 탈주극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그런 '순수함'을 느끼기가 어렵다. 내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보는 눈이 탁해진 탓일까? 아니면 이 영화가 뿜어내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독기가 너무 강한 탓일까.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미장센,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변화
영화로서의 오락적인 재미나 서스펜스는 훌륭하다. 코우즈키(조진웅)의 서재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미장센이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플롯은 분명 거장의 솜씨다. 하지만 지하실의 기괴한 고문 기구들과 남성들의 뒤틀린 욕망을 전시하는 방식은 카타르시스보다는 축축하고 노골적인 '불쾌함'으로 다가온다. 어느 순간부터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식의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내가 알던 과거의 그 묵직하고 날카롭던 에너지를 뿜어내던 감독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묘한 아쉬움과 거리감이 교차한다.

핵심 줄거리와 결말 (※ 스포일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귀족 아가씨 히데코의 돈을 노린 사기꾼 백작(하정우)은, 소매치기 고아 숙희를 아가씨의 하녀로 잠입시킨다. 1부에서는 숙희가 아가씨를 속이는 듯 보이지만, 2부에서는 오히려 백작과 아가씨가 숙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진정한 반전은 3부에 있다.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긴 히데코와 숙희가 이중 첩자 노릇을 하며 백작과 후견인 코우즈키를 완벽하게 배신한 것이다. 결국 백작은 코우즈키의 기괴한 지하실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 독가스로 함께 자멸하고, 히데코와 숙희는 막대한 재산을 챙겨 상해행 배에 올라타며 탈주극을 완성한다.

"처음에는 <델마와 루이스 (1991)>가 생각이 났다. 버디 무비에서 약자나 소수자일 수도 있는 여자들만의 우정을 그린 델마와 루이스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그리고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그 과정은 한편으로는 통쾌하고 한편으로는 애잔했던 영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그런 순수함을 못 느끼겠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영화로써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불쾌했던 영화. 어느 순간부터 박찬욱 감독 영화가 그렇게만 느껴진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재미와 불쾌함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러닝타임. 기분 나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 미장센의 미로 속에서, 내가 알던 감독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코우즈키 서재의 다다미방 질감이나 수려한 기모노, 양장의 색감은 고화질 물리 매체가 선사하는 시각적 호사 그 자체다. 하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그 압도적인 미장센이 남긴 찝찝한 뒷맛을 씻어내기 위해, 영화 감상을 마친 뒤 곧바로 노션(Notion)을 켠다. 마치 물리 매체를 하나하나 분류하고 랙에 정리하듯 정성스레 세팅해 둔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를 열고 [기분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카테고리에 이 타이틀을 추가한다.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그 서늘한 불쾌감을 기록으로 갈무리하며, 나만의 영화 컬렉션 한 페이지를 또 이렇게 채워 넣는다.
[블루레이 개봉기]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 박찬욱의 매혹적 스릴러, 북미 소니 픽쳐스판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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