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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다 기주 감독의 박스셋 완주, '쇼치쿠 누벨바그'의 정점
· ‘에로스+학살’은 극장판과 감독판 두 버전 수록, 총 러닝타임 3시간
· 1960년대 일본 사회운동 영화의 회오리 속, 허무와 반항이 교차한다
· 예술영화 입문자에게는 낯설지만, 흑백영화의 깊이를 알려준 작품

 


드디어 완주했다. 애로우 아카데미에서 발매한 요시다 기주 박스셋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무겁고 어려운 영화 『에로스 + 학살』. 이 작품을 끝으로 '쇼치쿠 누벨바그'라 불리는 거장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범인의 시선으로는 여전히 “도대체 무슨 얘기지?”라는 질문만 남는다.

 

감독판과 극장판, 두 버전이 수록된 블루레이 패키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덜컥 감독판부터 선택했다.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이후 처음 마주한 180분짜리 영화였는데, 이번엔 마법이나 오크도 없다. 오직 몽환적이고 해체적인 이야기, 인물 간 대사보다 중요한 ‘침묵’, 그리고 교차하는 시공간의 퍼즐들.

 

영화가 어려웠던 이유는 단순히 상징이 많아서가 아니다. ‘에로스’와 ‘학살’이라는 두 개의 대극(對極)을 통해 1960년대 일본 사회운동과 무정부주의, 허무주의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실존했던 인물 오스기 사카에의 삶을 토대로 하되, 그 주변 여성들의 심리를 통해 ‘욕망’이란 무엇인지 끈질기게 질문한다.

 

 

이 영화는 ‘일본 누벨바그’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고전적인 영화 문법을 기대한 이에게는 고문 같은 3시간일 수도 있다. 배우의 시선은 종종 카메라를 향하고, 인물의 동선은 뚜렷한 목표 없이 헤맨다. 심지어 대사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관객을 깊은 사고 속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런 불친절함 속에서 새로운 감각이 열렸다. 나는 이 박스셋을 통해 처음으로 흑백영화의 깊이를 느꼈고, 예술영화의 관람 내공을 조금은 쌓은 기분이었다. 대사 없는 오락영화보다도 훨씬 어렵고 지루했지만, 그래서 더 각인되었다. <에로스+학살>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진 않지만,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며 해석의 장이었다.

 

요시다 기주의 영화 특징은 기존 질서의 해체다. 구도, 시간, 감정, 서사를 기존 영화의 틀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 영화는 그 정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영화’라는 장르에 입문하거나 일본 1960년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탐구하고 싶은 이에게는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질문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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