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키주 감독이 연출한 《에로스 + 학살》은 1960년대 일본 전위 영화와 쇼치쿠 누벨바그의 정점을 상징하는 불멸의 아방가르드 걸작 시네마다. 일본의 무정부주의자 오스기 사카에의 자유연애 사상과 비극적인 삶을 1920년대의 과거와 1960년대 현대 대학생들의 시선을 교차시키는 파격적인 실험 정신으로 엮어냈다. 인물들의 관계와 뒤틀린 에로티시즘, 아나키즘을 둘러싼 심리적 균열은 보는 내내 기분이 묘하게 불쾌하고 어지러운 공기를 뿜어내지만, 화면을 지배하는 요시다 키주 특유의 극단적인 오프센터 구도와 시리도록 아름다운 백색 미학은 감탄을 자아내며 탐미주의적 예술 영화의 극치를 증명하는 타이틀이다.

줄거리: 시공간을 초월하는 아나키즘과 자유연애의 파격적 교차
1920년대 대정 시대 일본,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호소카와 토시유키)는 가부장적 일부일처제 체제를 거부하며 세 명의 여성—아내인 야스코, 동지인 이츠코,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마사코(오카다 마리코)—와 동시에 관계를 맺는 파격적인 자유연애를 실천한다. 그의 사상은 기득권 체제와 부딪치는 동시에 연인들 사이의 지독한 질투와 도덕적 균열을 낳고, 결국 마사코가 찻집에서 오스기를 칼로 찌르는 비극적인 '아마카스 사건'의 전조로 치닫는다. 한편, 1960년대 현대의 대학생인 에이코와 와다 이츠오는 과거 오스기 사카에의 텍스처를 연구하며 그들의 정치적·성적 자유를 모방하려 하고, 영화는 이 두 개의 시공간을 전위적인 연출로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인간의 에로스와 권력의 본질을 탐구한다.

결말: 신화가 된 학살, 죽음으로 완성되는 에로스의 미학 (※ 스포일러 주의)
과거와 현대의 시공간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며, 1960년대의 에이코는 1920년대의 오스기 사카에를 직접 마주하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한다. 오스기 사카에는 마사코의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의 자유연애와 무정부주의적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그는 군부 권력의 화신인 아마카스 마사히코 대위에 의해 무참하게 교살당하고 우물 속에 버려지는 비극적인 학살을 맞이한다. 오스기의 죽음 이후 현대의 와다 이츠오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을 감행하고, 에이코는 카메라의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영화를 촬영하는 스태프들의 실루엣과 겹쳐진다. 모든 서사가 파편화된 백색 스크린 위로 흩어지며, 뒤틀린 에로티시즘과 권력에 의한 학살이 기묘한 예술적 잔상만을 남긴 채 종장을 고한다.
쇼치쿠 누벨바그라 불리는 명확한 증거, 그러나 범인에게는 너무나도 난해한 장벽
영사가 진행되는 내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극단적인 앵글과 정제된 미장센을 목도하면서, 이 영화를 연출한 요시다 기주 감독이 왜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의 거두이자 정점으로 일컬어지는지 그 명확한 이유만큼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있었던 타이틀이다. 인물을 화면 가장자리로 몰아넣는 기괴한 구도와 시각적 아우라는 그 자체로 거대한 충격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예술적 텍스처의 대단함과는 별개로 평범한 범인(凡人)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필름은 그저 한없이 어렵고 난해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서사의 친절한 인과관계를 과감히 파괴하고 시공간을 난잡하게 뒤섞는 전위적인 플롯 탓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온전히 흡수하기보다는 감독이 구축한 극단적인 시각적 미학에 일방적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이 앞선다. 대중적인 상업 영화의 규격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기에, 누벨바그의 역사적 가치를 머리로는 인정할지언정 가슴으로 완벽하게 몰입하고 즐기기엔 장벽이 너무나도 높고 단단한 파편이다.

요시다 키주 특유의 오프센터 구도와 극단적인 백색 미학이 자아내는 시각적 완성도로 쇼치쿠 누벨바그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아방가르드 걸작. 다만 서사의 인과를 파괴하는 전위적이고 파편화된 플롯 탓에, 평범한 관객에게는 매혹적인 미장센의 이면에 숨은 난해함과 깊은 피로감만을 남기는 어렵고 뒤틀린 탐미주의 시네마.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시리도록 눈부시던 백색의 프레임이 닫히고 어두운 거실에 적막이 찾아왔을 때, 다소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며 플레이어를 정지했다. 이번 상영은 영국 부티크 레이블인 애로우 아카데미(Arrow Academy)의 한정판 박스세트 'Love + Anarchism(사랑 + 아나키즘)' 랙에서 꺼내든 고전 누벨바그의 기록물이다. 코드 프리 플레이어의 구동을 요구하는 영국판(Region B) 디스크이자 한글 자막 미지원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1080p 고화질 소스와 압축되지 않은 오리지널 PCM 모노 1.0 사운드는 요시다 키주가 구축한 전위적인 미장센과 날카로운 오디오 이펙트를 완벽한 피지컬 스펙으로 재현해 낸다. 169분의 극장판을 넘어 무려 216분에 달하는 무삭제 감독판(Director's Cut)의 팽팽한 호흡을 온전히 담아낸 7-Disc 세트의 위용은, 내용의 난해함과 별개로 소장용 미디어 아카이브로서 최고의 시각적 포만감을 안겨준다. 영화가 자아내는 음산하고 뒤틀린 에로티시즘의 공기는 보는 내내 기분을 묘하게 불쾌하게 만들지만, 강렬한 핑크와 보라색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하드박스 패키지와 80페이지 분량의 하드커버 소책자(Booklet)를 손에 쥐었을 때의 만족감은 컬터로서의 소유욕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블루레이 개봉기] 요시다 기주: 사랑 + 아나키즘 (Arrow Academy) - 일본 뉴웨이브의 정점, 한정판 박스세트 :: 4K 개봉기 아카이브
[블루레이 개봉기] 요시다 기주: 사랑 + 아나키즘 (Arrow Academy) - 일본 뉴웨이브의 정점, 한정판 박
✝️ 타이틀 개요: 전위적인 영상미,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박스세트일본 뉴웨이브(Shochiku New Wave)의 거장이자 시각적 스타일리스트인 '요시다 기주(Kiju Yoshida)'의 대표작 3편을 모은 한정판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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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범인의 직관적인 이해를 거부하는 불친절한 서사 구조 탓에 감상하는 내내 짙은 피로감이 스쳤을지라도,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독창적인 탐미주의적 가치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이 타이틀은 예정대로 [기분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카테고리 랙에 아주 무겁게 안착시킨다. 라이브러리 안에서 스토리의 유기성 대신 오직 카메라의 앵글과 미학적 배치, 그리고 전위적 파격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상징적이고 희귀한 피지컬 아카이브로 영원히 보존해 둘 것이다. 거장의 위엄과 전위적 난해함이 남긴 기묘한 잔상을 곱씹으며, 묵직한 패키지의 손맛과 함께 깊은 밤의 재생을 엄숙하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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