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니발》은 전작 《양들의 침묵》이 보여주었던 차갑고 건조한 심리전의 공간을 벗어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고풍스러운 예술과 핏빛 고어(Gore)가 뒤섞인 화려한 오페라 무대로 관객을 초대한다. 화면을 수놓는 압도적인 미장센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그 위로 흐르는 잔혹한 폭력성은 뱃속을 뒤틀리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지배하는 감정은 바로 이 '우아함과 찝찝함' 사이에서 오는 극도의 혼란스러움이다.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카리스마, 괴물 '키다리 아저씨'
작중 시간으로는 10년, 실제 영화 개봉 텀으로는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안소니 홉킨스가 뿜어내는 한니발 렉터의 카리스마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피렌체의 도서관 큐레이터로 신분을 위장한 그는 더욱 지적이고, 나이를 잊게 만드는 민첩한 체력과 운동신경까지 과시한다. 섬세한 예술적 취향을 음미하면서도 자신을 위협하는 자의 배를 거침없이 갈라버리는 강인함. 스탈링 요원을 곁에서 지켜보며 위험에서 건져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온갖 형용사로 다 표현하기 벅찬 '잔인한 괴물이자 낭만적인 키다리 아저씨' 그 자체다.

도덕적 판단의 유보, 사이코패스가 선사하는 대리만족
이 영화가 관객에게 찝찝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주는 이유는 한니발의 살인 대상들에 있다. 여느 묻지 마 연쇄살인마들과 달리, 한니발의 칼끝은 주로 사회의 해악이 되는 자들(자신을 팔아넘기려는 부패한 경찰, 아동 성범죄 전력의 탐욕스러운 갑부 메이슨 버저, 얄미운 직장 상사 크렌들러 등)을 향한다. 관객은 잔혹한 식인 살인마를 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가 악인들을 우아하게 도륙할 때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게 되고, 나아가 비틀린 대리만족마저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기분 나쁘고도 치명적인 매력이다.

현실의 한니발과 인간의 끝없는 탐욕
영화 후반부, 살아있는 인간의 두개골을 열어 뇌를 요리하는 그 끔찍하고도 우아한 만찬을 보며 한 가지 서늘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만약 이토록 천재적이고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괴물이 현실 사회에 존재한다면, 세상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
아마도 영화 속 파치 반장이나 메이슨 버저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기보다는 자신의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 들지 모른다. 결국 괴물을 낳고 기르는 것은, 혹은 괴물보다 더 추악한 것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냉소적으로 비웃고 있다.
"이 영화의 느낌은 우아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찝찝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어찌 됐든 《양들의 침묵 (1991)》에서 뿜어냈던 카리스마가 12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지적이며 나이를 잊게 만드는 체력과 운동신경, 섬세하지만 강인하고 잔인스러운 온갖 형용사로 표현될 만한 괴물이자 키다리 아저씨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이 든다. 여느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는 다른 이유로 살인과 고문을 즐기는(그 대상들이 사회의 해악인 자들이라는 점에서는 그나마 살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할 수 있으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천재적인 인간이 현실에서도 존재한다면 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영화에서처럼 단순하게 불리함의 국면 전환용으로나 개인 영달을 위한 도구로밖에 이용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아한 클래식 선율 위로 피가 튀고, 끔찍한 살육의 현장에서도 와인 향기가 날 것만 같은 영화. 리들리 스콧의 탐미주의가 빚어낸 이 기분 나쁘게 아름다운 스릴러는, 괴물의 식탁에 기꺼이 초대받고 싶어지는 우리의 비틀린 욕망을 꿰뚫어 본다.
💿 물리 매체 수집가의 덧붙이는 기록 조나단 데미의 《양들의 침묵》이 건조하고 서늘한 질감이라면, 리들리 스콧의 《한니발》은 끈적하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다. 특히 안개가 낀 피렌체의 광장 분수대 씬이나, 후반부 크렌들러의 은신처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만찬 장면의 섬세한 조명은 비트레이트가 꽉 찬 블루레이로 감상해야 그 질감이 온전히 살아난다. 감상을 마치고 노션(Notion)에 구축해 둔 나만의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열어 이 작품의 감상란을 채운다. 화면 가득 쏟아지던 기분 나쁜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우아한 고어 미학의 정점'이라는 태그를 타이핑해 넣었다. 수집가의 랙 한편에 이토록 매혹적인 식인마의 레시피(?)를 고화질로 소장하고 있다는 건, 꽤나 짜릿한 만족감을 준다.
[블루레이 개봉기] 한니발 (Hannibal, 2001) - 유니버설 일반판 :: 4K 개봉기 아카이브
[블루레이 개봉기] 한니발 (Hannibal, 2001) - 유니버설 일반판
🍽️ 타이틀 개요: 우아하고 잔혹한 식사, 다시 시작되다 '양들의 침묵' 그 10년 후를 그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문제작, '한니발' 블루레이 개봉기입니다. 안소니 홉킨스의 압도적인 연기와 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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