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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감각을 먼저 마비시킨다. '쇼치쿠 누벨바그'의 기수 요시다 기주 감독의 1970년작 《연옥 에로이카》는 친절한 서사 대신, 시공간을 무참히 파괴한 영상의 파편들을 관객의 뇌리에 꽂아 넣는다. 이 기괴하고도 압도적인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두 가지였다. "도대체 이 당시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마치 고 최인훈 작가의 소설 한 편을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읽어내려가는 것 같다"는 묵직한 감각이었다.

"이 당시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시대의 허무를 찢다

영화는 1950년대의 좌절된 학생 운동(공산주의 혁명)과 1970년대의 현재를 경계 없이 넘나든다. 영화를 보며 경악하게 되는 것은 단지 요시다 기주 감독 개인의 극단적인 아방가르드적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일본은 전공투(학생운동)의 과격화, 적군파의 테러리즘,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붕괴로 인해 온 사회가 극심한 혼란과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감독은 과거의 동지들이 배신하고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그 참담한 시대의 공기를, 인물들을 프레임 구석으로 처박거나 거울을 통해 얼굴을 분열시키는 특유의 압도적인 미장센으로 박제해 버렸다.

고 최인훈 작가의 소설이 겹쳐 보이는 시공간의 미궁

가장 놀라운 감각은 이 난해한 전위 영화가 우리에게 묘하게 기시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환멸을 느끼고 밀실로 숨어드는 개인의 고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의식의 흐름. 이는 한국 현대 문학의 거목, 고(故) 최인훈 작가가 《광장》이나 《회색인》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묵직한 이데올로기적 사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활자로 묘사되던 실존적 혼란과 시대의 억압이, 요시다 기주의 극단적인 흑백 프레임을 통해 시각화되는 듯한 기묘하고도 지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스토리를 포기할 때 비로소 열리는 '연옥'의 문

이 영화에서 논리적인 기승전결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구의 기억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끊임없이 길을 잃게 만드는 전개는 관객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연옥(Purgatory)'에 가두기 위한 감독의 치밀한 설계다. 스토리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영상 미학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엄청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영화 매체의 한계를 시험한 위대한 예술적 성취다.


 

"이 당시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엄청나다는 말밖에... 단순히 이 영화감독의 특징인 것인가. 아무튼 마치 고 최인훈 님의 소설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봤다."

 

이념의 유령들이 떠도는 시공간의 미궁. 《연옥 에로이카》는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아니라, 시대의 우울과 개인의 파편화된 의식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무서운 걸작이다.


 

💿 물리 매체 수집가의 덧붙이는 기록 부티크 레이블의 존재 가치는 바로 이런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애로우 비디오(Arrow Video) 같은 프리미엄 레이블에서 발매한 요시다 기주의 박스셋 타이틀은 수집가들에게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일반적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절대 마주칠 일 없는 이 1970년대의 난해한 흑백 아방가르드 필름을 고화질 디스크로 감상하는 경험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감상을 마치고 노션(Notion)에 구축해 둔 나만의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연다. 스크린샷만 봐도 기가 빨리는 이 영화의 평점 란에 '최인훈의 소설을 닮은 일본 누벨바그의 정점'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이 귀한 컬렉션이 내 랙에 꽂혀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미소를 지어본다.

 

[블루레이 개봉기] 요시다 기주: 사랑 + 아나키즘 (Arrow Academy) - 일본 뉴웨이브의 정점, 한정판 박스세트 :: 4K 개봉기 아카이브

 

[블루레이 개봉기] 요시다 기주: 사랑 + 아나키즘 (Arrow Academy) - 일본 뉴웨이브의 정점, 한정판 박

✝️ 타이틀 개요: 전위적인 영상미,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박스세트일본 뉴웨이브(Shochiku New Wave)의 거장이자 시각적 스타일리스트인 '요시다 기주(Kiju Yoshida)'의 대표작 3편을 모은 한정판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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