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 없이, 눈이 멀 것 같이 새하얀 햇살 아래서 관객을 미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2019년작 《미드소마》는 밤이라는 장르적 안전장치를 완전히 걷어내고, 알록달록한 꽃밭과 환한 미소라는 가장 이질적인 옷을 입힌 채 관객을 서서히 도살장으로 이끄는 백야(白夜)의 잔혹극이다. 포크 호러라는 장르가 가진 유구한 전통을 21세기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줄거리: 화사한 꽃 왕관 뒤에 숨은 기괴한 인습의 축제
가족의 충격적인 동반 자살이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대학생 대니(플로렌스 퓨)는 정서적으로 이미 멀어진 남자친구 크리스티안과 그의 인류학과 친구들을 따라 스웨덴의 외딴 마을 '호르가(Hårga)'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90년마다 한 번씩, 9일 동안 열리는 특별한 한여름(미드소마) 축제가 한창이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마냥 친절한 미소로 이방인들을 환대하는 마을 사람들. 하지만 축제의 일수가 더해질수록 노인들이 절벽에서 투신하는 '에테스투파' 의식을 시작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하고 잔혹한 토착 의식들이 백주대낮에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결말: 불타오르는 제단, 마침내 피어난 광기의 미소 (※ 스포일러 주의)
축제의 기괴한 공포 속에서 대니의 친구들은 호르가의 인습에 의해 하나둘씩 잔인하게 희생당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춤 경연에서 우승해 '메이 퀸'이 된 대니는, 그 와중에 마을의 씨받이 의식에 동원되며 자신을 철저히 배신한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을 목격한다. 마지막 인신공양 의식에서 제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 대니는 망설임 없이 크리스티안을 마지막 아홉 번째 제물로 선택한다. 곰 가죽에 갇힌 채 산 채로 노란 삼각 제단 속에서 불타 들어가는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대니는 처절한 통곡을 거쳐 마침내 기괴하리만큼 환하고 해방감에 찬 미소를 짓는다. 마침내 가짜 연인 대신 호르가라는 거대한 의사(擬似) 가족의 품에 완벽히 동화되는 소름 끼치는 종막이다.

원조 《위커맨》의 정수를 잇는, 도망칠 곳 없는 무력감의 공포
이 영화는 포크 호러의 위대한 원조격 마스터피스인 《위커맨(1973)》만큼이나 장르적 장치와 서스펜스의 재미를 꽉 채워낸 수작이다. 사실 이러한 폐쇄적 공동체 호러를 볼 때마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강한 거부감을 느끼며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
하지만 《위커맨》의 닐 하위 경사나, 《미드소마》의 대니와 친구들이나 막상 그 기묘하고 끈적한 호의의 늪에 발을 들이면 도망갈 방법이 전혀 없다. 탈출하고 싶어도 사방이 탁 트인 대낮의 평원이고, 나를 에워싼 이들은 한없이 온화한 얼굴로 탈출구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본능적인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과 문화라는 올가미에 걸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이 절대적인 무력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가장 생생하고 본질적인 공포다.

"원조격인 위커맨 만큼 재미있었다. 본능적으로 뭔가 아닌 거 같으면 도망가는 게 최고인데 위커맨이나 여기나 방법이 없네. 그게 더 무서운 듯. 어쨌든 감독판은 코멘터리와 함께 봐야지"
환한 미소의 포위망 속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축제의 늪, 대낮의 햇살이 밤보다 잔혹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완벽한 징후.
💿 물리 매체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호르가의 노란 제단이 불타오르며 대니가 짓던 마지막 그 미묘한 미소의 잔상을 품고, 디스크 트레이에서 《미드소마》 감독판(Director's Cut) 디스크를 꺼낸다. 일반 극장판보다 무려 40여 분이 더 추가되어 크리스티안의 위선적인 면모와 호르가 마을의 세부적인 복선들이 훨씬 촘촘하게 박혀 있는 이 3시간짜리 묵직한 에디션은 포크 호러 매니아라면 무조건 소장해야 할 아카이브다. 극장판으로 뼈대를 맛봤으니, 조만간 아리 에스터 감독의 치밀한 연출 의도와 숨겨진 이스터 에그들을 완벽하게 파헤치기 위해 오디오 코멘터리(Commentary) 트랙을 켜고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이 지독한 축제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봐야겠다.
[Unboxing] 미드소마 (Midsommar, 2019) - 아츠크래프츠 블루레이 일반판 (2-Disc) 개봉기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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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의 여운을 갈무리하며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연다. 21세기 포크 호러의 신경지를 연 이 화사한 지옥도를 기리며, 새로 단 문패인 [포크 호러(Folk Horror)의 심연] 카테고리에 첫 주자로 《미드소마》를 당당히 입주시킨다. 비고란에는 '원조 위커맨의 계보를 잇는 대낮의 포크 호러 마스터피스. 본능이 도망치라 외쳐도 나갈 방법이 없는 원천 봉쇄의 무력감과 공포. 숨 막히는 디테일의 감독판은 반드시 코멘터리와 함께 정주행할 것'이라고 만족스럽게 타이핑한다. 나만의 컬렉션 랙과 데이터베이스에 장르의 정수를 또 하나 정성껏 박제하는 뿌듯한 밤이다.
★이전 감상문 보기: [기분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23] 미스터리를 지운 자리에 피어난 보티첼리의 화폭과 앰비언트의 선율: 《행잉록에서의 소풍 (1975)》 No. 107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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