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매체의 부가영상(서플먼트) 더미를 디깅하다 보면, 간혹 상업 영화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규명할 수 없는 기묘한 원석들을 만나게 된다.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의 2013년 단편 《How Do You Like My Hair?》가 딱 그런 작품이다. 11분 남짓한 이 짧은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관객에게 세련된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창작자 본인의 가장 내밀하고 찌질하며 지극히 사적인 콤플렉스의 아카이브를 셀프카메라 형식으로 툭 던져놓는다. 솔직히 '이게 영화라고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먼저 고개를 들지만, 그 거친 날것의 공기가 주는 묘한 해방감이 스크린을 채운다.

줄거리: 아멜리에가 쏘아 올린 코 페티쉬, 그리고 호텔 방의 고백
영화의 뼈대는 특별할 것 없이 단순하다. 감독 본인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셀프카메라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에밀리는 자신의 외모(특히 몸에 털이 많다는 사실)에 지독한 콤플렉스를 느끼던 과거를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연장의 백스테이지에서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키도 작은 한 남자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객관적인 조건은 별 볼 일 없을지 몰라도, 그의 얼굴에 붙은 ‘엄청나게 거대한 코’가 에밀리의 시선을 강탈한다. 자신도 모르게 그 기묘한 코에 완벽하게 매료되어 일종의 페티쉬에 빠져든 것. 에밀리는 이 엉뚱한 심리 현상이 영화 《아멜리에》의 강박적인 환상 때문에 생긴 것 같다고 담담히 토로한다.
그렇게 코가 큰 남자와 친해진 에밀리는 이성적인 확신은 없지만, 마치 연애의 정석처럼 흘러가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궤도에 등 떠밀리듯 그의 호텔 방까지 따라 들어가게 된다. 침대 위에서 에밀리는 잔뜩 긴장한 채 남자에게 묻는다. 제모를 중단해 거칠거칠해진 자신의 몸과 털들이 어떤지. 긴장감이 감도는 방 안, 남자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맙다"고 답하며 "당신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지독한 콤플렉스가 단 한마디로 쉽게 치유될 리 만무하다. 다음 날 아침, 오직 에밀리 본인만이 온몸으로 느끼는 특유의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얼른 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남자와 서둘러 헤어지고, 영화는 그대로 막을 내린다.

이게 영화인가? 80%의 셀프카메라가 주는 날것의 당혹감
솔직히 말해 서사적인 완성도를 따지는 관객에게 이 작품은 영화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러닝타임의 80% 이상이 카메라를 들고 자기 자신을 찍는 개인사 셀프카메라 형식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그 코 큰 남자와 주변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아주 짧은 순간 정도만 별도의 촬영자가 개입한 듯한 무빙을 보여줄 뿐이다. 정교한 연출이나 미장센을 기대했다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홈비디오 수준의 결과물이지만, 이 거칠고 투박한 카메라의 시선이야말로 이 단편이 가진 날것의 무기이기도 하다.
'내 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치학, 페미니즘의 단상
영화의 거친 형식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안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신체 콤플렉스를 통해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에 조용한 균열을 내는 묵직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털을 밀고, 몸매를 가꾸며 끊임없이 검열하던 콤플렉스의 역사. 하지만 감독은 제모를 멈춘 자신의 거친 털을 직시하고, 정작 자신 또한 남자의 기묘한 '코'에 집착하는 모순적인 페티쉬를 가감 없이 고백한다.
결국 이 엉성한 단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몸에 난 털, 그리고 남들의 시선과 유리된 나만의 은밀한 취향 등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는 점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현대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남자의 달콤한 용인("사랑스럽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아침의 묘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버스를 타러 가는 에밀리의 마지막 뒷모습은, 외부의 구원이나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내 육체의 주권을 온전히 나 스스로 마주해야 하는 개인의 지독한 숙제를 보여주는 듯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상업 시네마의 경계를 허무는 11분간의 거친 고백록, 내 몸의 주권을 찾아가는 지극히 사적이고 당돌한 홈비디오.
💿 물리 매체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에밀리 블리치펠트의 이 가공되지 않은 11분짜리 홈비디오 스타일 단편이 남긴 기묘한 당혹감과 털에 대한 사적인 고백을 곱씹으며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켠다. 일반적인 극장 개봉작이었다면 절대 만나보지 못했을, 오직 물리 매체의 풍성한 부가영상 더미 속을 성실하게 탐험한 컬렉터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디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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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문패를 달아둔 [찰나의 극장] 카테고리의 영광스러운 첫 번째 주자로 《How Do You Like My Hair?》의 이름을 기분 좋게 등록한다. 비고란에는 '영화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80%의 거친 셀프카메라. 아멜리에 콤플렉스가 낳은 코 페티쉬와 제모를 멈춘 털의 고백을 통해, 내 몸과 콤플렉스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임을 역설하는 사적이고 전위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타이핑한다. 나만의 데이터베이스에 상업적 도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창적인 틈새 명작을 아카이빙해 두며, 새로운 카테고리의 든든한 출발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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