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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매체 박스셋의 서플먼트와 단편 폴더를 디깅하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숨은 원석을 발견할 때 온다. 동일한 해인 1973년에 제작된 조르제 카디예비치(Đorđe Kadijević) 감독의 대표작 《렙티리카(Leptirica)》가 거친 시골 방앗간을 배경으로 한 토착 호러였다면, 44분짜리 TV 중단편 영화로 기획된 《슈티체니크(Štićenik)》는 그 투박한 전작이 같은 감독의 연출작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압도적인 고딕 미장센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배경이나 시각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며, 전작 《렙티리카》보다 훨씬 뛰어난 시각적 성취를 보여준다. 비록 서사가 극도로 불친절하고 모호해 표면적인 흐름 이상을 명확히 붙잡기는 어렵지만, 화면이 뿜어내는 기이한 시각적 아우라만큼은 단편 호러 중 단연 압도적이다.

줄거리: 정신병원이라는 방어기제와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야기는 한 젊은 남자가 무언가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 채 숲과 들판을 가로질러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장면으로 막을 연다. 남자가 목숨을 걸고 당도한 곳은 외딴곳에 위치한 정신병원. 남자는 병원 의사에게 '검은 코트를 입은 정체불명의 사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쫓아오고 있다며 자신을 이곳에 숨겨달라고 간절히 애원한다. 의사는 남자가 심각한 피해망상과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판단하고, 환자가 관객에게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에 맞춰 병원 방 한 칸에 그를 입원시킨다. 영화의 제목인 '슈티체니크'는 우리말로 '피보호자' 혹은 '수용자'라는 의미로, 시스템의 보호 아래 들어간 남자의 처지를 대변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병원 주변에는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환자가 말했던 그 검은 코트의 남자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며 의사의 이성적인 판단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결말: "내가 달라고 했을 때 줬으면..." 오만이 불러온 개인적 파국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결말은 거창한 재앙 대신 아주 개인적이고 날카로운 심리적 파국으로 치닫는다. 의사는 여전히 자신의 의학적 판단과 병원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이 남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켜 가며 통제하고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대적인 공포를 깨달은 남자는 결국 병원 창문 너머로 투신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의 시체를 가져가기 위해 마침내 의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사내(죽음)가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서늘한 유화와 같다. 그는 의사를 향해 "의사, 당신 때문에 죽었다. 내가 달라고 했을 때 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원망 섞인 한마디를 남긴 채 유유히 사라진다. 의사가 치료와 보호라는 명목으로 억지로 환자를 붙잡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남자는 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거창한 잠식 대신, [의사-환자-죽음]의 밀실 심리극이 주는 텐션

흔히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병원 전체가 초자연적인 죽음의 그림자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공포'라고 거창하게 요약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스크린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면 그런 거창한 뜬구름 잡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스케일을 키워 거대한 재앙을 만끽하는 영화가 아니라, [의사 - 환자 - 검은 사내]라는 좁은 삼각관계 안에서 '인간의 이성(의사)'이 '거부할 수 없는 종말(죽음)' 앞에 어떻게 무력하게 무너지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주는 밀실 심리극에 가깝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은 그저 의사의 오만과 한계가 작동하는 무대였을 뿐이며, 장르 영화 특유의 서사적 인과관계보다는 검은 코트가 주는 죽음의 압박감과 시각적 카타르시스 자체를 즐기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인간의 오만한 이성이 빚어낸 안타까운 파멸, 《렙티리카》의 거친 뼈대를 넘어 정교한 고딕 미장센으로 완성한 44분간의 압도적인 아카이브.

💿 물리 매체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조르제 카디예비치가 빚어낸 고딕 미장센의 완벽한 레이어와 마지막 검은 사내의 서늘한 대사를 복기하며 디스크를 케이스에 안전하게 비축한다. 오늘 밤 이 경이로운 희귀 서플먼트를 선사한 매체는 미국 하드코어 장르 전문 레이블인 세버린 필름(Severin Films)의 역대급 포크 호러 총서, 《올 더 하운츠 비 아워스: 포크 호러 컴펜디움 (All the Haunts Be Ours: A Compendium of Folk Horror)》 15-Disc 박스셋의 세 번째 디스크다. 전 세계 장르 영화의 숨은 헤리티지를 이토록 완벽한 텍스처로 디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컬렉터로서 다시 한번 깊은 포만감을 느낀다.

[Unboxing] 렙티리카 (Leptirica, 1973) - 포크 호러 박스셋 Disc 3 개봉기 :: 4K 개봉기 아카이브

 

[Unboxing] 렙티리카 (Leptirica, 1973) - 포크 호러 박스셋 Disc 3 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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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가시기 전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켠다. 44분이라는 독특한 중단편 규격을 존중하여, 망설임 없이 [찰나의 극장(단편 전용)] 카테고리의 문을 열고 《How Do You Like My Hair?》의 옆자리인 두 번째 주자로 《슈티체니크》를 당당히 입주시킨다. 비고란에는 '세버린 필름 박스셋 디스크 3번 수록작. 전작 레프티리차와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배경과 미장센의 성취. 불친절한 서사 뒤로 의사의 오만과 죽음의 필연성을 잔인하게 꼬집는 44분간의 날카로운 밀실 심리극'이라고 가치 있는 정밀 싱크에 맞춰 타이핑을 완료한다. 나만의 디지털 아카이브 랙에 상업적 규격을 탈피한 위대한 장르적 파편을 또 하나 정성껏 박제하는 만족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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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의 유령들 #40] 서사보다 장사가 먼저였던 소니의 무리수, 빌런 낭비와 관계성 공백이

켈리 마르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톰 하디가 다시 한번 에디 브록과 베놈의 콤비로 분한 《베놈: 라스트 댄스》는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 실사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SF 히어로 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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