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특정 지역의 기괴한 풍습, 토착 신앙, 그리고 고립된 공동체의 무속적 의식이 자아내는 원초적인 공포를 탐구하는 전용 아카이브 랙을 연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대한민국 전라남도의 은밀하고 폐쇄적인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문명 뒤에 숨은 잔혹한 원시성과 오컬트적 광기를 가장 한국적인 색채로 뿜어낸 독보적인 타이틀이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축축한 안개와 피비린내 나는 무속의 에너지는 장르 팬들을 완벽하게 매료시켰지만, 거장이 정교하게 설계한 서사의 이면에는 관객을 끝없는 의심의 늪으로 밀어 넣는 잔인한 낚시질이 숨어있다.

줄거리: 외지인의 등장, 온 마을을 뒤덮은 의문의 연쇄 파국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흘러들어온 이후, 평화롭던 시골 마을 곡성에는 기괴한 두드러기와 함께 가족을 몰살하는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마을 전반에 흉흉한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가운데, 사건을 수사하던 평범한 시골 순경 종구(곽도원)는 자신의 어린 딸 효진(김환희)마저 피해자들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미쳐가자 걷잡을 수 없는 패닉에 빠진다. 딸을 구하기 위해 종구는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여 마당 한복판에서 핏빛 가득한 살풀이 굿판을 벌이고, 그 와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묘령의 여인 무명(천우희)이 나타나며 종구와 마을은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결말: 닭이 세 번 울리기 전, 미끼를 삼켜버린 자들의 파멸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종착지는 숨 막히는 교차 편집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무명은 종구에게 외지인이 진짜 악마이며, 그가 파놓은 덫에 일광마저 미끼를 물었다고 경고하며 닭이 세 번 울릴 때까지 집으로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하지만 일광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혼란에 빠진 종구는 결국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집으로 달려가고, 그 순간 무명이 쳐놓은 방어막은 무너져 내린다. 결국 효진은 광기에 사로잡혀 가족 모두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완전히 악마의 형상으로 각성한 외지인의 기괴한 동굴 시퀀스와 함께 일광이 파멸한 종구의 집을 찾아 담담하게 카메라로 시체들을 촬영하는 섬뜩한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거장의 이름값과 한국형 공포의 성취, 그러나 반전만을 위해 설계된 서사의 허탈함

2016년 개봉 당시 극장가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에 "뭐시 중헌디!!"라는 대사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이 있었다. 할리우드식 오컬트 문법을 교묘하게 배반하면서, 한국 무속 신앙 고유의 날것 그대로의 개성과 시각적 타격감을 완벽하게 살려낸 제대로 된 공포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에 시네필들은 열광했다. 이 영화를 대하는 가장 큰 기대감은 장르의 신선함보다 도리어 '나홍진'이라는 감독의 무게감 있는 이름 석 자에서 비롯되었다. 데뷔작 《추격자》에서 보여준 숨 막히는 스릴러의 문법과 연출의 밀도는 지독할 정도로 훌륭했으며, 비록 아직 《황해》를 스크린으로 마주하진 못했으나 내 개인적인 기준에서 나홍진은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최상위 궤적에 존재하는 감독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기대를 품고 암전된 스크린의 결말부까지 완주하고 나면,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허탈함이 왈칵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영화가 끝난 뒤 밀려오는 이 씁쓸한 질문은 명확하다. 과연 이 영화는 오직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 하나만을 완성하기 위해 관객의 2시간 30분을 이토록 소모적으로 끌고 온 것인가?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 가득 정교하게 던져진 무수한 복선들과 맥거핀들은, 영화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위한 장치라기보다 오직 최종 결말의 트릭을 매끄럽게 성립시키기 위해 관객을 낚아 올린 진짜 '미끼'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형 포크 호러의 기념비적인 성취라는 외피 뒤에, 오직 관객과의 두뇌 싸움과 반전의 쾌감만을 위해 서사를 도구적으로 소비해 버린 연출의 실책이 지독한 아쉬움이자 허탈한 파편으로 남는다.


"2016년, “뭐시 중헌디!!”라는 대사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 우리나라만의 개성을 살린 제대로 된 공포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이 떠오른다. 기대감은 오히려 감독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추격자의 나홍진, 아직 황해는 못 봤지만 내 기준 상위에 있는 감독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말이다. 결말을 보고 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반전을 위한 2시간 30분이었나? 영화 내내 던져진 복선은 진짜 결말을 위한 미끼였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토착 신앙의 기괴한 미장센으로 한국형 공포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나홍진의 야심작. 그러나 2시간 30분의 정교한 빌드업 끝에 마주한 허탈한 반전과, 오직 낚시질만을 위해 남발된 미끼들의 서사적 한계.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종구의 가정이 피칠갑 지옥으로 변하고 일광의 플래시가 비정하게 터지는 마지막 프레임을 끝으로 플랫폼의 스트리밍 재생을 마감했다. 나홍진이라는 거장의 이름값을 신뢰하며 방구석 상영관에 올렸던 이 타이틀은, 확실히 시각적인 아우라와 살풀이 시퀀스의 폭발적인 에너지 만큼은 포크 호러 장르의 심연을 정교하게 헤집어놓는 타격감을 보장한다. 하지만 장르적 쾌감의 이면에 숨겨진 지나친 맥거핀과 반전 중심의 서사 구조는, 러닝타임이 끝난 뒤 시네필의 마음에 깊은 철학적 여운을 남기기보다 정교한 사기극에 당한 듯한 묘한 허탈함의 장벽을 먼저 세우고 만다.

 

씁쓸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연다. 고립된 마을의 기괴한 풍습과 무속적 의식, 이교도적 광기가 서사의 중심축을 완벽하게 장악한 한국형 오컬트의 정수임을 인정하여, 망설임 없이 [포크 호러(Folk Horror)의 심연] 카테고리에 이 굵직한 타이틀을 입주시킨다. 비고란에는 '2016년 극장가를 뒤흔든 독보적인 한국형 포크 호러.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다운 압도적인 연출력과 토착 신앙의 기괴한 미장센은 훌륭하나, 2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 전반에 깔린 정교한 복선들이 결국 관객을 낚기 위한 일차원적인 미끼와 반전만을 위한 장치로 소비된 듯하여 결말 이후의 허탈함과 서사적 아쉬움이 짙게 남는 타이틀'이라고 솔직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단상을 타이핑해 넣는다. 나만의 아카이브 랙에 명성과 아쉬움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거대한 파편 하나를 단단히 박제하는 밤이다.


이전 감상기 보기:[할리우드 전쟁영화 회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추천 – 역사도 타란티노 손에선 불타버린다

다음 감상기 보기: https://4klog.tistory.com/69

 

[스릴러 회고]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추천 – 질서와 정의 사이, 총구는 누구를 향했는가

· 드니 빌뇌브 감독의 진가를 입증한 리얼한 마약 전쟁 스릴러· 정의와 질서 사이에서 길을 잃은 여성 수사관의 분투· 알레한드로의 복수, 그리고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의 민낯· 시카리오 줄

4klog.tistory.com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공감과 댓글로 응원 부탁드립니다!
4K 개봉기 아카이브는 수집가 디스크러버의 영화 감상과 물리매체 리뷰를 기록하는 블로그입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