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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 결말 해석, 미끼인가 진실인가
· 곡성 줄거리 요약과 관객의 당혹감
· 페미니즘 논란과 종교 코드의 충돌
· 기독교 해석 vs 샤머니즘, 끝나지 않은 논쟁


"고작 이런 결말을 위해서 2시간 30분 동안 반전을 위한 밑밥을 던진건가..."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사실 나홍진 감독의 디테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2016년, “뭐시 중헌디!!”라는 대사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 우리나라만의 개성을 살린 제대로 된 공포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이 떠오른다. 기대감은 오히려 감독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추격자의 나홍진, 아직 황해는 못 봤지만 내 기준 상위에 있는 감독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말이다. 결말을 보고 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반전을 위한 2시간 30분이었나? 영화 내내 던져진 복선은 진짜 결말을 위한 미끼였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등장인물들도 답답하다. 이게 더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적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도 컸다. 귀신들린 딸, 외국인에 대한 공포, 동네 슈퍼 주인의 과한 친절... 모든 게 현실적이되 영화적인 쾌감과 긴장을 허무하게 만드는 순간들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음향과 분위기로 긴장감을 높였다 해도, 그걸 툭 끊어버리는 연출은 쉽게 용납되진 않았다.

며칠 전, 네이버에 평점 5점과 함께 위 문구를 올렸다. 공감 0, 비공감 8이었다. 그렇게 공감받지 못할 리뷰지만, 어쩌겠는가. 2시간 반 동안 느낀 허탈함이 이랬던 걸.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이런 놈도 있구나’ 하고 넘겨주면 좋겠다.

 



그나저나 곡성 줄거리 요약을 하자면, 낯선 외지인의 등장 이후 마을에 벌어진 연쇄 살인과 의심, 무명 여인의 개입, 그리고 주인공 종구의 고뇌와 선택이 교차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채 결말을 맞이한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종교적 상징과 이미지들, 예컨대 예수 초상화, 박쥐, 굿판, 일본인의 정체 등은 곡성 기독교 해석 vs 샤머니즘 해석이라는 논쟁을 여전히 지속시키고 있다.

(『곡성』은 기독교 해석과 샤머니즘 해석이 충돌하는 세계관 속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다.
‘곡성 결말 해석’의 핵심은 이 종교적 세계관의 혼재에 있다. 일본인을 악마(기독교적 관점)로 볼 수도 있고, 요괴(샤머니즘적 관점)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무명은 때로 천사 같고, 때로는 수호신 혹은 유혹자처럼 등장한다.

 

주인공 종구는 이 두 해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 선택의 실패가 곧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기독교 해석 vs 샤머니즘 해석, 그 어느 쪽도 명확한 진실은 아니다. 결국 영화는 ‘믿음’이란 주제 자체를 해체하며, 보는 이의 해석에 모든 판단을 위임한다.)

여기에 곡성 페미니즘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무명이라는 존재가 일종의 신적 개입인지, 아니면 관음적 시선의 대상인지에 따라 해석이 엇갈리는 지점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난 이 영화를 한국에서 블루레이로 구하지 못해 해외 직구로 샀다. 웬만하면 한국영화는 한국에서 사고 싶은데, 이건 DVD만 풀렸더라. 아쉽지만 이 영화는 그만한 가치는 있다.


“곡성은 공포보다 믿음과 불신, 그 경계에서 인간을 시험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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