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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기

[한국 고전영화 회고] 고려장 추천 – 본능과 문명 사이, 가장 잔혹했던 선택

디스크러버 2025. 6. 6. 01:53

· 고려장, 김기영의 가장 불편한 고전.
· 무당과 굶주림이 지배하는 공동체의 현실.
·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물, 구령의 고뇌.
· 복원되었기에 더 선명해진 폭력과 구조의 잔혹함.

 


어디서부터 어떻게 감상을 시작해야 할까.
『고려장』은 김기영 감독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감탄으로만 채워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마주한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시대 배경도 모호하고, 극의 전개는 엉성하다. 인물 간 대립 구도는 극단적으로 치닫고, 구령이라는 인물은 선악의 경계를 애매하게 넘나든다. 이 영화를 칭송하는 글을 쓰기엔, 그 안의 현실이 너무 잔혹하고, 불편하고, 설명되지 않는다. 196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놀랍게도 동시대의 ‘현대적 시점’에서 시작된다. 라디오 대담을 통해 인구 과잉과 기아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 이어지는 과거의 화전민 마을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인상부터 충격적이다. 아이들이 기본 7명 이상, 부모는 서로 다르고, 가난은 기본 설정이다. 감자만 먹고 사는 그들의 생활은 생존 그 자체다. 이 마을의 유일한 규칙은 “70세가 넘으면 선인봉에 버린다”는 것이다. 무당은 법이며, 고목은 신이다. 이 기괴한 설정이 곧 ‘고려장’의 사회적 장치로 작동한다. 주인공 구령은 이렇게 형성된 마을의 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망가지면서도 가족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어머니를 버려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그 선택이 마을의 비를 부른다는 믿음 아래 강요된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지만, 감정은 복잡하다.

 

누구도 완전히 악하지 않고, 누구도 전적으로 선하지 않다. 무당은 권력을 휘두르지만 생존의 방편이고, 10형제는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 또한 이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심지어 구령마저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포기해야 했다. 이 구조는 누가 나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지옥도의 구조다. 이 영화는 “극적”이지 않다. 사건이 각성을 부르지 않고, 감정이 정화를 이끌지 않는다. 구령은 끝까지 침묵하고, 모든 결말은 인간성 회복이 아닌 생존과 복수의 궤도로 수렴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화적 ‘쾌감’ 대신 냉정한 현실만을 목격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 구령이 고목을 베어내고 씨를 뿌리러 가는 장면에서조차 해방의 느낌보단 허망함이 크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다. 김진규, 주증녀는 『하녀』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이들인데, 여기서는 어머니와 아들로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역 연기자들의 감정 표현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특히 곰보딸 역의 아역은 장면마다 절절한 고통을 표현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지탱해낸다. 다만, 복원의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35mm 네거티브 필름 중 일부가 유실돼 화면이 빠진 장면이 두 군데 있다. 음성은 남았지만, 그 구간은 대사와 설명만으로 처리된다. 이건 아쉽지만, 동시에 이 작품이 얼마나 귀한 자료인지, 그리고 복원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긴 여정인지를 다시 느끼게 한다.

 

📍『고려장』은 단순한 고전영화가 아니다. 인간 본성과 윤리, 공동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적 울림을 준다.

특히 고려장 영화 줄거리에 나타난 ‘노인을 버리는 풍습’은 1960년대 당시로선 대단히 민감한 소재였으며, 이혜순 교수는 해당 작품이 “당시 검열 기준에 도전하는 작품이었다”고 분석했다.

(출처: 이혜순, 『영화연구』 제37호, 2008)

또한 김기영 감독의 다른 작품인 『미녀 홍낭자』는 검열로 인해 62장면이 잘려 나간 사례로, 『고려장』 역시 1960년대 검열과 풍속영화의 경계 안에서 사회 금기를 정면으로 다룬 예외적 사례로 평가된다.


본 감상은 직접 소장 중인 『고려장 (1963)』 한국영상자료원 정발 블루레이로 관람한 결과입니다. 해당 물리매체의 패키지 디자인, 구성, 발매 정보 등이 궁금하다면 아래 개봉기 글을 참고해주세요.

→ [국내 정발 블루레이 개봉기] 고려장 – 본능과 문명 사이, 김기영 감독의 금기 서사 보기


“문명을 가장한 폭력은 언제나 가장 정당한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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