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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제 카디예비치(Đorđe Kadijević) 감독이 연출한 《렙티리카》는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영화 역사상 최초의 호러 무비이자, 동유럽 특유의 기괴하고 음산한 설화를 스크린에 구현해 낸 전설적인 타이틀이다. 밀가루 방앗간이라는 지극히 토착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서구권의 정형화된 드라큘라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민담 속 흡혈귀의 공포를 아주 독특한 질감으로 담아냈다. 고립된 시골 마을의 풍습과 문명 뒤에 숨은 잔혹한 원시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카이브의 가장 깊숙한 전용 랙에 수집될 만한 명확한 장르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줄거리: 방앗간을 덮친 괴물, 그리고 저주받은 마을의 설화

유고슬라비아의 어느 외딴 시골 마을,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 뒤에는 밤마다 밀가루 방앗간을 지키던 사람이 목이 꺾여 죽어 나간다는 무시무시한 흡혈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마을의 가난한 청년 '스트라힌야'는 부유한 주민의 딸인 '라도이카'와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저주받은 방앗간의 야간 경비직을 자처한다. 모두의 우려 속에 방앗간에서 밤을 지새우던 스트라힌야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나비의 형상을 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습격을 당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을 원로들은 오랜 세월 무덤에 잠들어 있던 전설적인 토착 흡혈귀 '사바 사바노비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그의 묘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결말: 나비의 형상으로 깨어난 흡혈귀, 뒤틀린 종장의 잔상 (※ 스포일러 주의)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사바 사바노비치의 무덤을 찾아내 말뚝을 박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흡혈귀의 입을 통해 영혼이 나방(Leptirica)의 형상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놓치고 만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하게 되는 스트라힌야는 고대하던 결혼식 날 밤, 신부 라도이카의 가슴에 난 거대한 말뚝 자국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사실 라도이카야말로 사바 사바노비치에게 육체를 지배당한 진짜 흡혈귀였던 것이다. 라도이카는 흉측한 괴물의 몰골로 변해 스트라힌야를 덮치고, 도망치던 스트라힌야가 방앗간에서 가져온 말뚝을 그녀의 가슴에 박아 넣으며 저주는 종결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무덤에서 빠져나갔던 나방이 스트라힌야의 이마 위에 내려앉고, 그 역시 완전히 영혼을 잠식당해 황량한 풀숲에 쓰러져 눈을 뜨는 파국의 피날레를 맞이한다.

기대가 컸던 첫 유고 호러, 낯설음과 엉성함 사이의 기묘한 이질감

처음으로 접하는 유고슬라비아 영화였기에 상영기를 돌리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꽤 컸던 타이틀이다. 더군다나 컬렉터로서 가장 흥미롭게 수집하는 장르 중 하나인 '포크 호러' 계열의 숨겨진 고전이라고 하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조금은 어색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이나 연출의 완급 조절이 정교하게 맞물리기보다는, 군데군데 툭툭 끊기며 그냥 엉성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이러한 어색함이 난생처음 마주하는 동유럽 70년대 영화 특유의 극단적인 '낯설음'에서 오는 주관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장르 영화로서 완성도가 다소 아쉬운 건지 도통 분간하기 힘든 기묘한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문명과 단절된 밀가루 방앗간의 음산함이나, 서구권 뱀파이어와 차별화되는 거칠고 원시적인 흡혈귀의 거친 질감 자체는 포크 호러의 정수를 보여주지만, 이를 엮어내는 투박한 호흡 탓에 100% 몰입하기엔 일말의 헐거움이 남는 파편이다.

동유럽 설화 속 원시적 공포를 나방이라는 기괴한 상징으로 풀어낸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호러. 밀가루 방앗간의 음산한 배경과 토착 흡혈귀의 설정은 흥미로우나, 70년대 동유럽 TV 영화 특유의 투박한 호흡과 엉성한 캐릭터 빌딩 탓에 낯설고 아쉬운 이질감을 남기는 포크 호러.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음산한 나방의 날갯짓 소리가 멎고 암전된 스크린 위로 스펙터클한 잔상이 흩어질 때, 디스크 트레이를 열고 오늘 밤의 고된 영사를 마감했다. 이번 상영은 북미의 호러 명가 세버린 필름(Severin Films)이 야심 차게 기획한 포크 호러의 집대성 박스세트, 'All the Haunts Be Ours'의 세 번째 디스크를 플레이어에 물리며 시작되었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보다 20년이나 앞선 밀로반 글리시치의 세르비아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역사적 타이틀은, 세르비아 라디오 TV 방송국의 아카이브를 거쳐 복원된 HD 마스터(1.33:1 화면비)의 거친 그레인을 통해 70년대 동유럽 호러 특유의 기괴한 질감을 안방극장에 날것 그대로 투사한다.

[Unboxing] 렙티리카 (Leptirica, 1973) - 포크 호러 박스셋 Disc 3 개봉기 :: 4K 개봉기 아카이브

 

[Unboxing] 렙티리카 (Leptirica, 1973) - 포크 호러 박스셋 Disc 3 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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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정교한 각본에 익숙한 현대 시네필의 눈에 캐릭터들의 움직임이나 연출의 호흡이 다소 엉성하고 어색한 아쉬움으로 다가올지라도, 6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벼려진 목가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다크 에로틱 공포의 손맛은 피지컬 미디어 컬렉터의 소장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특정 지역의 고립된 풍습과 토착 흡혈귀 설화라는 원초적 공포를 온전한 물리 매체 스펙으로 라이브러리에 추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한정판 박스세트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제작 국가의 낯설음이 남긴 미묘한 이질감을 뒤로하고, 이 귀한 동유럽의 파편은 본연의 정체성에 따라 [포크 호러(Folk Horror)의 심연] 랙에 단단히 박제한다. 아카이브 랙 한구석에서 90년대 서구권 뱀파이어 문법의 원형이 된 토착 오컬트의 서늘함을 증명하는 가장 상징적이고 희귀한 피지컬 아카이브로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묵직한 하드케이스 패키지의 만족스러운 손맛을 음미하며, 깊은 밤의 재생을 경건하게 마감한다.


★이전 감상문 보기: [크레딧이 올라가도 #18] 모든 것을 비워낸 야생의 끝에서 마주한 진짜 행복,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혼의 순례: 《인투 더 와일드 (2007)》 No. 129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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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감상문 보기: [이걸 왜 봐요? (근데 난 봄) #10] 대책 없는 똘기와 황당무계함으로 무장한, 소장 가치 충분한 B급 감성의 정수: 《스텝 브라더스 (2008)》 No. 132 :: 4K 개봉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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