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관객의 '관람 이력'이 특정 영화의 감상과 평가를 완전히 지배해 버리기도 한다. 하정우, 박희순, 장혁 주연의 2011년작 《의뢰인》은 시체 없는 살인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한국형 배심원제 법정 공방을 쫄깃하게 엮어낸 훌륭한 스릴러다. 하지만 이 팽팽한 두뇌 싸움을 온전히 즐기기에 앞서, 만약 당신의 머릿속에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프라이멀 피어 (1996)》가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다면 이 영화의 결말이 주는 타격감은 다소 슴슴하고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프라이멀 피어》의 짙은 그림자, 그리고 아쉬운 결말
변호사와 속내를 알 수 없는 의뢰인,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재판을 뒤집는 서늘한 반전까지. 《의뢰인》이 밟아가는 법정 스릴러의 문법은 할리우드의 걸작 《프라이멀 피어》의 궤도와 상당히 맞닿아 있다. 에드워드 노튼이 보여준 그 전무후무한 이중성의 충격을 이미 경험한 관객이라면, 장혁이 연기한 한철민의 서늘한 민낯이 드러나는 결말부에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보다는 묘한 기시감과 아쉬움을 먼저 느끼게 된다. "아, 프라이멀 피어를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먼저 봤더라면 정말 소름 돋게 재미있었을 텐데!"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빛나는 충무로 3인방의 쫄깃한 연기 앙상블
결말의 아쉬움을 논외로 둔다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오락 영화로서의 텐션은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카테고리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능구렁이 같지만 승부사 기질을 가진 하정우(강 변호사), 집요하게 유죄를 입증하려는 묵직한 박희순(안 검사), 그리고 영화 내내 어떤 감정도 쉽게 읽어낼 수 없는 무표정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혁(한철민)의 연기 대결은 123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할 틈 없이 꽉 채운다.

핵심 줄거리와 결정적 3초의 반전 (※ 스포일러)
출장 후 돌아온 집, 침대는 피로 물들어 있고 아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체도 물증도 없는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한철민이 체포된다. 정황상 그가 범인이라 확신하는 안 검사에 맞서, 강 변호사는 철민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한 법정 심리전을 펼친다.
영화의 백미이자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강 변호사의 최후 변론에서 등장한다. 그는 배심원들과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3초 뒤 저 문을 열고 죽은 줄 알았던 피해자가 걸어 들어올 것입니다"라고 외친다. 모두가 일제히 문을 쳐다보는 그 순간, 오직 단 한 사람, 남편 한철민만이 문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아내를 죽였기에 그녀가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진범이었음이 밝혀지는 이 서늘한 시선 처리 씬은 한국 법정 스릴러의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프라이멀 피어를 보지 않았다면 참 재미있게 봤을 텐데. 결말이 조금 아쉬웠던 영화였다."
선행 학습(?)이 스포일러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케이스. 하지만 범인의 마음을 꿰뚫는 결정적 3초의 트릭과 세 배우가 빚어내는 법정 안의 서스펜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탄탄한 팝콘 스릴러.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치밀하게 짜인 법정 안의 공기, 변호사와 검사의 날 선 대사가 교차하는 오디오 텐션은 꽤나 인상적이다. 감상을 마친 뒤, 노션(Notion)에 구축해 둔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를 연다. 비록 실물 물리 매체를 소장하지 않았더라도, 마치 영화 랙을 꼼꼼히 정리하듯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장르 탭을 설정하고 리스트에 《의뢰인》의 타이틀을 채워 넣는다. 비고란에는 '에드워드 노튼의 그림자만 없었어도 완벽했을 3초의 반전'이라고 타이핑하며, 오늘도 나만의 디지털 아카이빙을 든든하게 한 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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