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하드》, 《프레데터》의 액션 거장 존 맥티어넌이 메가폰을 잡고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은 1999년작 《13번째 전사(The 13th Warrior)》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Eaters of the Dead》과 북유럽의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를 모티브로 한 역사 액션 활극이다. 곰의 가죽을 뒤집어쓴 식인 부족과의 무자비한 도륙전과 빗발치는 칼날 아래 쏟아지는 날것의 혈흔이 가득하기에 [어쩌다 피칠갑] 랙에 입주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줄거리: 12인의 바이킹 전사와 운명처럼 합류한 13번째 이방인
10세기 바그다드의 귀족이자 시인인 아흐메드 이븐 파드란(안토니오 반데라스)은 궁정 여인과의 부적절한 밀애로 인해 북방의 볼가 강 유역으로 사실상 추방에 가까운 외교 사절단으로 파견된다. 그곳에서 거칠고 야만적인 노르드인(바이킹) 무리를 만난 아흐메드는, 북쪽 고향 마을이 안개와 함께 나타나 사람을 찢어 죽이고 시체를 먹는 정체불명의 괴물 부족 '웬돌(Wendol)'의 습격을 받아 파멸 직전에 놓였다는 전갈을 듣게 된다. 부족의 예언자는 "13명의 전사가 원정을 떠나야 악마를 물리칠 수 있으며, 그중 마지막 13번째 전사는 반드시 노르드인이 아닌 '이방인'이어야 한다"는 신탁을 내린다. 그렇게 칼 한 자루 쥐어보지 못했던 문관 아흐메드는 용맹한 지도자 불리바이(블라디미르 쿨리히)가 이끄는 12명의 거구 바이킹 전사들과 함께 죽음의 북방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결말: 안개 속 용의 정체, 피로 물든 마지막 바이킹의 기도 (※ 스포일러 주의)
원정대는 불타는 횃불 행렬로 '불의 용' 행세를 하며 안개 속에서 덮쳐오는 웬돌족의 잔혹한 학살에 맞서 사투를 벌인다. 그들의 소굴인 깊은 해저 동굴로 잠입한 아흐메드와 불리바이는 다산의 상징인 뚱뚱한 비너스 토우를 숭배하는 웬돌족의 여족장을 처단하지만, 불리바이는 독이 묻은 발톱에 긁히며 치명상을 입는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펼쳐진 마지막 방어전, 웬돌의 대추장이 침략해 오자 죽음을 앞둔 불리바이는 바이킹의 마지막 맹세를 읊조리며 적장을 베어 넘긴 뒤 장렬하게 전사한다. 우두머리를 잃은 웬돌족이 안개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긴 피바다는 마침내 멎는다. 아흐메드는 자신을 진정한 전사로 인정해 준 북방의 형제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바그다드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그들의 용맹한 역사를 양피지에 기록한다.

생략된 웬돌의 실체와 역사적 공포: 이유 없는 죽음이 증명하는 잔혹한 현실
영화는 다산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뚱뚱한 여성 토우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원시적 식인 집단 '웬돌족'에 대해 어떠한 인류학적 배경이나 추가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채, 오로지 살점을 뜯고 목을 베어가는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으로만 부각한다. 네안데르탈인의 후예처럼 묘사되는 이들의 기원이나 동기를 명확히 짚어주지 않는 점은 서사적으로 다소의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면 이러한 불친절함이야말로 오히려 현실의 비정함을 가장 날카롭게 투영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무수히 벌어졌던 침략과 문명의 몰락을 돌아보면, 상대방의 정체나 습격의 이유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영문도 모르고 학살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비극들이 셀 수 없이 많지 않았던가. 웬돌족에 대한 설명의 생략은 안개 너머에서 다가오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극대화하며, 진흙과 핏물로 범벅이 된 전장의 생존 투쟁을 더욱 처절하게 체감하게 만든다.

칼날과 도끼가 뼈를 가르는 진흙탕의 혈투.
안개 속 정체불명의 식인 괴물과 피로 써 내려간 13번째 전사의 북유럽 대서사시.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국내 VOD 플랫폼 씨네폭스(Cinefox)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로 감상했다. 90년대 말 특유의 묵직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비바람 속에서 펼쳐지는 처절한 백병전의 타격감이 거친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록 소장용 실물 디스크 개봉기는 아니지만, 원초적인 공포와 피비린내 나는 액션 쾌감을 증명한 중세 다크 활극으로서 수장고의 [어쩌다 피칠갑] 랙 한편에 묵직하게 안착시킨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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