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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회고] 살로, 소돔의 120일 추천 – 파시즘과 사디즘 사이, 예술인가 악몽인가

디스크러버 2025. 6. 13. 10:44

· 가장 불편한 영화 중 하나, 그러나 잊히지 않는 체험
· 파솔리니가 남긴 마지막 선언 같은 작품
· 해석과 오해 사이, ‘소돔’은 보는 사람의 정신을 드러낸다
·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더러움의 본질

 


한 때 영화 이야기를 자주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두고 “본 것 중 가장 더럽고 쓰레기 같았다”고 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런 소리를 들을까 싶었고, 그 말이 귓가에 남은 채 긴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보게 됐다.


『살로, 소돔의 120일』. 이름만큼이나 악명 높은 영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 충격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무뎌진 면도 있다. 더 잔혹하고 더 자극적인 영상물들이 인터넷 어딘가에 널린 지금, 이 영화가 여전히 금기의 언어로 회자되는 건 단지 묘사의 수위 때문만은 아니다. “이걸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던지는 불편함, 그 자체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파솔리니가 던진 마지막 돌, 그 해석의 틀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뭐 가장 흔히 회자되는 해석은 이렇다. 영화에 등장하는 4명의 파시스트(주교, 판사, 공작, 의장)는 권력 그 자체를, 이야기꾼 역할의 매춘부들은 그 권력에 빌붙은 지식인들을, 그리고 강제로 끌려온 남녀들은 아무 힘 없는 민중을 상징한다는 해석. 파시즘 체제 하에서 인간성이 어떤 식으로 짓밟히는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정치적 비유극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틀을 머리에 넣고 보더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결코 덜 고통스럽지 않다. 똥을 먹이고, 사람을 개처럼 기고, 서로를 고발하게 만드는 이 잔혹한 놀이판에서, 관객이 느끼는 불쾌함은 단지 설정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불편한 진실의 해부”는, 사실 인간이 권력 아래서 어떤 짓까지 가능해지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파솔리니, 예술가인가 금진주의자인가?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공산주의자였으며, 동성애자였고, 로마 빈민가의 삶에 천착한 작가였다. 그는 성경을 영화화했고, 정치적 이유로 수차례 법정에 섰으며, ‘이탈리아의 죄악’을 고발하는 시적 리얼리즘의 창시자였다.

 

『살로』는 그의 유작이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그는 살해당했고, 아직까지도 그 죽음의 경위는 불분명하다. 이 마지막 작품에 담긴 분노와 냉소, 권력에 대한 조소는 그런 그의 인생 궤적을 반영하는 듯하다.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끝까지 예술로서 권력을 고발하겠다”는 그의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의 결말은 명확하다. 희생자들은 죽고, 파시스트들은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권력자들 역시 무표정하고, 무감각해진다. 잔혹함에 마비된 채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가는 그들의 얼굴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다. 그저 더러운 영상을 본 기분이라기보다는, 그 더러움을 통해 현실의 권력과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본 듯한 묘한 피로감이 남는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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