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은 조르제 카디예비치(Đorđe Kadijević) 감독의 탐미적인 고딕 호러 미학이 정점을 찍은 해였다. 전작 《렙프리카》의 토착적 거침과 《슈티체니크》의 정교한 밀실 심리극을 관통한 이 장인은, 또 다른 TV 중단편 걸작 《데비찬스카 스비르카(처녀의 연주)》에 이르러 시각적 기괴함과 탐미주의의 정수를 선보인다. 약 50분이라는 압축된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소박한 호기심이 어떻게 영혼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영원한 저주로 돌변하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서늘한 미장센으로 증명해 낸다.

줄거리: 성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그리고 꼬마의 비극
젊고 매력적인 청년 이반은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목적지를 채 가지도 못하고 어느 낯선 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하지만 마부는 더 이상은 갈 수 없다며 완강하게 동행을 거부하고, 결국 이반은 목적지는 알 수 없으나 황량한 벌판을 홀로 걷기 시작한다.
하염없이 걷던 이반은 우연히 성 한 채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성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고 기묘한 음악 소리에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마침 성 근처 길가에서 한 꼬마아이를 마주친 이반이 아이에게 그 성에 대해 물어보자, 아이는 잘 모른다며 그저 절대 가지 말라는 충고의 소리를 한다. 그러고는 겁에 질려 도망치다가 달려오는 마차에 치여 참혹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잔인하게도 그 마차의 주인은 바로 성의 아름다운 미망인 '시빌라'. 어찌 보면 이 비극은 이반의 발을 묶고 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연을 가장해 던진 미망인의 거대한 낚시질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성 안으로 들어가 시빌라을 만나고 그곳에 머물게 된 이반은, 계속해서 성 내부를 맴도는 그 신비로운 음악 소리에 깊은 의문을 품는다. 소리가 날 때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시빌라에게 정체를 묻지만, 시빌라는 끝에 가서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며 매번 대답을 얼버릴 뿐이다.


결말: 성꼭대기 방의 잔혹한 비밀, 그리고 빼앗긴 세월 (※ 스포일러 주의)
마침내 시빌라는 이반에게 성 내부를 울리던 음악 소리의 잔혹한 비밀을 공개한다. 소리가 흘러나오던 곳은 성꼭대기의 비밀의 방이었다. 그 방 안에는 전 남편을 포함해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곁에 남았던 남자들의 차가운 시체들이 기둥에 줄줄이 묶여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기둥에 매달린 시체들이 흔들리며 아래에 놓인 악기들을 건드렸고, 이반의 호기심을 지독하게 자극했던 그 음악 소리는 사실 죽은 자들의 몸이 바람을 타고 연주하던 파멸의 교향곡이었다. 이 영화에는 흔한 흡혈귀적 표현이나 설정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잔혹한 집착만이 도사릴 뿐이다.

모든 진실을 마주한 시빌라는 이반에게 죽고 싶지 않다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지만, 이반은 아무런 도구도 들지 못한 채 그녀를 끝내 죽이지 못한다. 결국 시빌라는 자신의 충직한 하인 바르톨메오에게 자신을 죽일 것을 명령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기괴하고 참혹한 상황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이반은 성을 뛰쳐나와 황량한 들판을 향해 광기 어린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허겁지겁 달아나던 그는 들판의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 같은 곳에 걸려 거꾸러지며 정신을 잃고 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이반이 깨어나는데, 놀랍게도 그의 몸은 이미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와 주름으로 가득한 노인의 상태였다. 젊고 찬란했던 청년의 시간은 성의 기괴한 아우라 속에 통째로 저당 잡혀버린 것이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된 이반이 허망하고 슬픈 몸을 이끌고 정처 없이 또다시 어디론가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서늘한 마침표를 찍는다.

《슈티체니크》의 옆자리, 카디예비치 고딕 미학의 정점
《데비찬스카 스비르카》는 흔한 호러 영화들이 선택하는 점프 스케어나 괴물의 등장 없이도 관객의 신경을 완벽하게 마비시킨다. 성꼭대기 방에서 바람을 타고 울려 퍼지던 시체들의 연주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시각적·청각적 메타포이며, 청년의 순결한 생명력과 세월을 순식간에 박탈해 버리는 마지막 엔딩의 시각적 타격감은 단편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서늘하고 잔혹한 탐미주의의 극치다. 억지스러운 장르적 작위성 대신,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서서히 파국으로 침잠시키는 조르제 카디예비치의 연출력은 같은 해에 나온 《슈티체니크》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독보적인 텐션을 자랑한다.


호기심의 대가로 찬란한 청춘의 세월을 통째로 저택의 공기 속에 박제당해 버린 이반의 비극. 1973년 유고슬라비아 고딕 호러가 도달한 가장 잔혹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 물리 매체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백발 노인의 몸으로 황량한 대지를 향해 정처 없이 걸어가던 이반의 쓸쓸한 뒷모습을 끝으로 세버린 필름(Severin Films)의 포크 호러 박스셋 디스크 3번의 재생을 멈췄다. 《렙티리카》와 《슈티체니크》를 지나 마주한 이 50분짜리 단편은, 카디예비치 감독이 왜 그 시절 전 세계 호러 매니아들의 숨은 우상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다. 흡혈귀 같은 흔한 클리셰 없이도 성꼭대기 방의 시체 연주라는 기괴한 미장센 하나만으로 방 안의 공기를 완벽하게 얼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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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흥이 가시기 전 익숙하게 노션(Notion)의 '본 영화 관리' 데이터베이스 창을 연다. 상업적 규격을 탈피한 완벽한 중단편 고딕 시네마이기에 망설임 없이 [기분나쁘게 아름다운 것들] 카테고리를 열어 이 타이틀을 입주시킨다. 비고란에는 '세버린 필름 박스셋 디스크 3번 수록작. 흡혈귀 설정 없이 성꼭대기 비밀의 방에 매달린 시체들이 바람을 타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설정의 미장센이 압도적이다. 미망인의 낚시질에 걸려 호기심의 대가로 청춘을 저당 잡힌 채 도망치다 결국 백발 노인이 되어 깨어나 또다시 어디론가 걸어가는 엔딩의 타격감이 일품인 50분간의 고딕 잔혹사'라고 정밀하게 단상을 타이핑해 넣는다. 나만의 디지털 아카이브 랙에 1973년 유고슬라비아 호러의 위대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정성껏 박제하는 만족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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