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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로렌스 캐스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드림캐쳐 (2003)》는 B급 크리처물 마니아들 사이에서 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문제작이다. 인간의 하반신을 뚫고 나오는 기괴한 외계 생명체의 비주얼과 눈보라 치는 산속 오두막의 고립감은 꽤나 훌륭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감정은 개운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요리를 먹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지독한 찝찝함과 혼란스러움이다.

손님이 직접 밥상을 차려야 하는 불친절한 오락 영화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마치 호스트가 조리되지 않은 식재료만 잔뜩 던져주고, 손님인 나보고 알아서 밥상을 차려 먹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불쾌함이다. 명확하고 시원시원한 타격감을 줘야 할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에서 이런 식의 전개는 치명적인 패착이다. 호스트가 내놓은 재료들은 산더미 같은데, 정작 손님은 무엇이 이 만찬의 '메인 요리'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도대체 메인이 무엇인가? 길을 잃은 서사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존시를 비롯한 4인방이 가진 특별한 텔레파시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지구를 집어삼키려는 사악한 외계인과 그것을 막으려는 선한 외계인의 대결이 메인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스티븐 킹 특유의 '역경을 이겨내는 소년 시절의 끈끈한 우정'을 강조하기엔, 성인이 된 4인방 중 두 명은 너무나 허무하고 끔찍하게 죽어버린다. 여러 장르적 매력을 한 그릇에 담으려다 이도 저도 아닌 잡탕찌개가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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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남은 앙상한 줄거리와 결말 (※ 스포일러)

결국 복잡한 잔가지를 다 쳐내고 표면적으로 남는 줄거리는 이렇다. 과거 괴롭힘을 당하던 지적장애 아동 더디츠를 존시와 친구들이 구해주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사실 더디츠는 지구인으로 위장한 '선한 외계인'이었고, 훗날 있을 적대적인 외계인의 침공을 예상하여 친구들에게 미리 텔레파시라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해 두었던 것이다. 결말부에 이르러, 병든 더디츠는 사악한 외계인(미스터 그레이)과 동귀어진하며 세상을 구하고, 살아남은 친구들이 그 희생을 기리며 영화는 싱겁게 끝이 난다. 그 화려했던 설정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탈한 마무리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내가 손수 밥상을 차려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식재료들이 있으니 네가 알아서 차려 먹으라는 느낌? 적어도 이런 오락 영화에서 그건 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스트가 내놓은 재료들은 여러 가진데 메인이 무엇인지 초대받은 손님은 알 길이 없다. 존시 일행 4인방의 능력이 메인인지, 지구를 삼키려는 외계인을 물리치는 것이 메인인지, 4인방의 역경을 이겨내는 우정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과거 구해준 더디츠라는 외계인이 훗날의 침공을 예상해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해주고 외계인을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훌륭한 특수효과와 매력적인 설정들을 잔뜩 늘어놓고도, 감독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B급 블록버스터. 어떤 식재료든 하나만 확실하게 요리했다면 훨씬 훌륭한 오락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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