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인가, 재연인가, 아니면 감독의 자위인가?
이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실화 바탕의 영화를 찍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를 표방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영화인지 다큐인지 모를" 애매한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다 끝난다.
감독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대신, 오디션에 참가한 이름 모를 배우들의 입을 통해 사건에 대한 온갖 억측과 개인적인 감상을 늘어놓게 만든다. 80분 내내 이어지는 이 "어수선한 시도"는 관객의 집중력을 산산조각 낸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뒷전이고,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빌려 감독의 예술적 허영심을 채우는 데 급급해 보인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입문자에게는 독(毒)이 되는 불친절함
이 작품의 가장 치명적인 죄악은 정보의 불균형이다. 존베넷 램지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 중 하나라 관련 다큐가 이미 널려 있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관객이 이미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영화를 전개한다.
"관련 사건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사건의 타임라인이나 핵심 쟁점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보다,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하며 내뱉는 뜬구름 잡는 소리들만 나열한다. 입문자에게는 불친절한 미로이고, 사건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난잡하게 꼬아놓은 짜증 유발물일 뿐이다.

'새로운 시도'라는 함정에 빠진 허무한 기록
사건 자체가 논란이 많고 자극적이다 보니, 감독은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시도'는 결국 집중하기 힘든 산만함만 낳았다.
결말부에 이르러 수많은 배우가 동시에 연기를 펼치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기괴할 뿐, 어떤 정서적 울림이나 사건에 대한 통찰도 주지 못한다. 미제 사건의 비극을 이용해 세련된 척 폼만 잡은 '시네마틱 겉멋'의 결정체다. 사건의 진실이 궁금하다면 차라리 유튜브 요약 영상을 보는 게 훨씬 유익하다.
최종 결론: 감독의 실험 정신은 높이 사겠으나, 관객의 이해와 재미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큐의 기본인 '전달력'마저 상실한 어수선한 예술 놀이.
추천 관객: "나는 남들이 이해 못 하는 난해한 다큐를 보는 지적인 사람이다"라는 착각에 빠지고 싶은 예술 지망생들.
'새로운 시도'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미제 사건의 비극을 어수선한 오디션장으로 전락시킨, 불친절하고 산만한 예술적 자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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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현대 일본 영화가 잃어버린 '진짜' 칼맛 (宮本武蔵,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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