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뇌의 100%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매력적인 상상력을 스크린에 구현한 작품을 떠올릴 때, 아마 많은 시네필들의 머릿속에는 닐 버거 감독의 《리미트리스 (2011)》가 먼저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훌륭한 선행 학습(?)을 마친 관객들에게 뤽 베송 감독의 《루시 (2014)》는 그저 겉멋만 잔뜩 든 진부하고 황당한 오답 노트처럼 느껴질 확률이 높다.

《리미트리스》의 세련됨을 기대했다면 덮쳐오는 진부함
영화의 초반부는 나쁘지 않다. 평범한 여성 루시가 우연히 마약 조직에 얽히고, 신종 약물(CPH4)이 체내에 흡수되면서 점차 뇌의 한계를 돌파한다는 설정은 장르적 흥미를 한껏 돋운다.
하지만 루시의 뇌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영화는 《리미트리스》가 보여주었던 영리하고 지적인 쾌감 대신 뤽 베송 특유의 무대포 액션과 뻔한 클리셰들로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뇌를 100% 쓰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음에도 타이베이와 파리를 오가며 조폭들과 물리적인 총격전을 벌이는 전개는 묘하게 촌스럽고, 시각적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서사의 빈약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선을 넘어도 너무 넘어버린 철학적 '뇌절'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통제 불능의 상태로 폭주한다는 점이다. 액션 스릴러로 잘 굴러가던 영화는 뇌 사용량이 50%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갑자기 유사과학과 만물 창조설을 섞어 놓은 듯한 기괴한 철학 강의로 변모한다.
루시가 타인의 전파를 맨눈으로 읽고, 중력을 거스르며, 급기야 시공간을 초월해 최초의 인류(유인원)와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마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에 이르면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영화 역사상 가장 황당한 결말 중 하나로 꼽히는 "루시의 USB 플래시 드라이브 화(化)"에 도달하면, 관객은 뤽 베송의 거침없는 '뇌절' 앞에 팝콘을 씹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나는 모든 곳에 있다 (I am everywhere) ...아니, 그냥 USB 안에 있잖아."
《루시》는 눈과 귀를 자극하는 멀티플렉스용 킬링타임 무비로는 나름의 역할을 다하지만, 영화가 품은 거창한 철학적 메시지는 그저 허세에 불과하다. 인간 뇌의 한계를 돌파하는 통쾌한 상상력을 원한다면, 차라리 《리미트리스》를 한 번 더 재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뇌 사용법일 것이다.
※ 본 감상은 직접 소장 중인 『[국내 정발 블루레이] 루시 (2014) – 스틸북 한정판 개봉기』 블루레이로 관람한 결과입니다. 해당 물리매체의 패키지 디자인, 구성, 실물 이미지 및 발매 정보가 궁금하다면 아래 개봉기 글을 참고해주세요.
[국내 정발 블루레이] 루시 (2014) – 스틸북 한정판 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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