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은 유독 깊고 어두운 동굴을 탐험하는 자들의 비극이 극장가를 덮친 해였다. 명작 《디센트》가 숨 막히는 심리적 공포로 찬사를 받았다면, 브루스 헌트 감독의 《케이브》는 심연의 공포보다는 괴물들과 치고받고 구르는 B급 크리처 액션 오락물로서의 본분에 더 충실한 작품이다. 조금은 뻔한 전개와 어이없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동굴이라는 특수한 공간감과 두 형제의 끈끈한 유대감만큼은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심해와 암벽을 넘나드는 동굴 탐험기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산맥 깊은 곳, 13세기 수도원 터 아래에 거대한 지하 수중 동굴 생태계가 발견된다. 세계 최고의 동굴 탐험가인 잭(콜 하우저)과 그의 동생 타일러(에디 시브리언)가 이끄는 탐험대는 과학자들과 함께 깊은 심연으로 하강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출구가 막혀버리고, 설상가상으로 어둠 속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기괴한 생명체들(알고 보니 기생 생물에 감염된 과거의 탐험가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산소와 빛이 고갈되어 가는 밀폐된 동굴 안에서, 대원들은 수중 스쿠터와 암벽 등반 장비 등 전문적인 탐험 장비를 총동원하여 살아서 빛을 보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동굴의 어둠을 밝히는 형제애의 빛
이 영화가 다른 흔한 크리처물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잭과 타일러, 두 형제의 서사다. 영화 중반부, 대장인 잭은 정체불명의 기생 생물에 감염되어 점점 크리처처럼 감각이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해간다. 대원들 모두가 그를 괴물이라 의심하며 두려워할 때, 오직 동생 타일러만큼은 끝까지 형을 신뢰하고 따른다. 시각을 잃어가는 대신 발달한 후각과 청각으로 출구를 찾아내는 잭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타일러의 모습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피 끓는 전우애를 선사한다.

B급의 정수, 헛웃음이 터지는 찝찝한 결말 (※ 결말 스포일러)
결국 형 잭은 동료들과 동생을 살리기 위해 동굴에 남아 크리처들을 막아내는 숭고한 희생을 택한다. 그의 덕분에 타일러를 포함한 세 명만이 간신히 지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B급 오락물 특유의 노골적인 무리수를 던진다. 생존자 캐스린(레나 헤디)이 일상으로 돌아와 거리를 걷다가 선글라스를 벗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기생충이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충격적인 엔딩을 들이민 것이다. 동굴의 저주가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이 뻔하고 촌스러운 속편 암시 결말은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심각성을 내려놓고 즐기는 팝콘 무비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유쾌한 마침표이기도 하다.
"우스운 결말이지만 동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형제애 가득한 영화다. '형이 정신 나간 거 같아도 난 형만 믿었다구!'"
엄청난 철학이나 완벽한 개연성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좁은 수중 동굴을 유영하는 탐험의 디테일과,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는 끈끈한 형제애에 온전히 몰입한다면 주말 밤 [멀티플렉스의 유령들] 카테고리에서 꽤나 만족스럽게 소비할 수 있는 훌륭한 크리처 액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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