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영화 제작자가 속편을 만들 때마다 바이블처럼 모셔야 할 영화가 있다면, 그건 단연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1991)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전편보다 예산을 많이 쏟아붓고 폭발 규모를 키운 '덩치만 큰 후속작'이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전편에서 관객들을 오줌 지리게 만들었던 최악의 공포,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을 주인공의 수호자로 탈바꿈시키는 미친 수준의 캐릭터 전복을 통해 속편이 가야 할 가장 완벽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전편의 공포를 무기로 삼는 대담함
1편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말 그대로 '벽을 뚫고 들어오는 재앙'이었다. 감정도 없고 자비도 없는 그 무기질의 살인 병기는 스릴러와 호러의 경계에 있었다. 그런데 2편의 오프닝에서 다시 나타난 그가 존 코너를 향해 총을 겨누는 대신 "엎드려!"라고 외치는 순간, 극장 안의 공기는 완전히 뒤바뀐다.
카메론은 관객이 가진 '기존의 정보'를 역이용했다. 관객은 아놀드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지만, 그 위협이 가장 든든한 방패로 변하는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이건 단순히 착한 놈이 이긴다는 유치한 서사가 아니다. 가장 강력한 '악(Evil)'이 시스템적으로 재프로그래밍되어 가장 강력한 '선(Good)'이 되었을 때 발생하는 기능적 쾌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기계가 가르쳐주는 '인간성'의 역설
이 영화가 진짜 대단한 점은 T-800을 단순한 보디가드로 쓰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감정이 거세된 기계가 하이파이브를 배우고, 욕설을 배우고, 종국에는 "인간이 왜 우는지 이제 알 것 같다"며 희생을 선택하는 과정은 그 어떤 신파 영화보다 강력한 감정적 울림을 준다.
여기서 뼈를 때리는 비평적 포인트는 이거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괴물로 변해버린 사라 코너와, 인간이 되려 노력하는 무쇠 덩어리 T-800 사이의 묘한 대비. 카메론은 질문한다. "살을 가진 인간이 기계처럼 변해갈 때, 칩 하나로 움직이는 기계가 인간을 이해하려고 애쓴다면 누가 더 인간에 가까운가?" 이 철학적 전복이야말로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 영화의 늪에서 건져 올린 핵심 동력이다.

T-1000: 공포의 세대교체와 완벽한 균형
전작의 빌런을 선역으로 돌렸다면,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악은 압도적이어야 했다. 액체 금속 T-1000은 T-800이 가진 '물리적 육중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연하고 날카로운 '세련된 공포'를 선보인다.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구시대의 유물(T-800)과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신세대(T-1000)의 대결은 기술적 진보라는 테마와도 맞닿아 있다. 구형 모델이 신형 모델을 막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약자(기계지만!)'의 편에 서게 만드는 기묘한 동질감을 유발한다. 이쯤 되면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감독이 아니라 관객의 뇌를 해킹하는 해커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론적으로 <터미네이터 2>는 전작의 설정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그 설정을 가장 창조적으로 뒤틀어버린 '시퀄의 정석'이다. 1편을 보지 않은 관객은 액션에 감탄하고, 1편을 본 관객은 그 반전과 성장에 경악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계승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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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트라우마였던 살인 병기를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삼촌'으로 리프로그래밍해버린 제임스 카메론의 미친 배신, 그리고 그 배신이 낳은 인류 영화사상 가장 완벽하고 압도적인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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