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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와 《더 문》을 연출한 던칸 존스 감독의 신작 사이버펑크. 이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수많은 SF 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뮤트》는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 쉰내가 진동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감독 특유의 내공이 묻어나는 미장센은 존재하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은 딱 거기까지다.

 

잃어버린 방향성, 납득 불가한 2시간의 러닝타임

이 영화의 가장 큰 죄악은 관객에 대한 '불친절함'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바텐더 레오(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실종된 연인을 찾아 베를린의 어두운 뒷골목을 헤매는 추적극이지만, 그 과정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늘어진다. 전개는 산만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엔 개연성이 부족하며, 서사의 밀도는 턱없이 헐겁다. 도대체 왜 이 빈약한 이야기를 2시간이 넘도록 질질 끌고 가야만 했는지, 관객 입장에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피로감만 쌓여갈 뿐이다.

 

폭주의 원동력, 그 치명적인 빈약함

주인공 레오는 연인을 찾기 위해 마피아의 본거지에 쳐들어가고 목숨을 건 폭주를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관객은 그의 절박함에 전혀 동화되지 못한다. 영화가 두 사람의 깊은 유대감이나 사랑의 깊이를 제대로 묘사하지 않은 탓에, 레오가 모든 것을 걸고 미쳐 날뛰는 그 원동력이 너무나도 사소하고 얄팍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감정선에 이입하지 못하니, 그가 벌이는 액션과 추적 역시 그저 남의 집 불구경처럼 공허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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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동기로 치닫는 찝찝한 파국 (※ 줄거리 및 결말 스포일러)

어릴 적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바텐더 레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갑자기 실종된 연인 나디라를 찾기 위해 마피아와 엮인 미군 출신 불법 시술업자 '캑터스 빌(폴 러드)'과 그의 파트너 '덕(저스틴 서룩스)'의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2시간 내내 질질 끌던 추적의 끝에 밝혀지는 진실은 불쾌하고 허무하다. 나디라를 죽인 진짜 범인은 다름 아닌 전남편 캑터스 빌이었다. 빌은 딸 조시의 양육권을 뺏기지 않고 독일을 뜨기 위해 전처인 나디라를 납치해 살해했던 것이다.

 

뒤늦게 싸늘한 주검이 된 나디라를 발견한 레오는 폭주하여 빌의 목에 칼을 꽂아 처단한다. 이후 레오는 소아성애자이자 흑막이었던 덕마저 강물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나디라의 딸 조시를 구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문제는 영화가 레오와 나디라의 깊은 유대감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은 탓에, 레오가 모든 것을 걸고 미쳐 날뛰는 그 폭주의 원동력이 시종일관 너무나 사소하고 얄팍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감정선에 이입할 수 없으니, 충격적이어야 할 결말의 핏빛 복수극조차 그저 남의 집 불구경처럼 찝찝하고 허탈하게 다가올 뿐이다.

 

유일한 수확, 폴 러드의 낯선 얼굴

이 끔찍한 산업폐기물 더미 속에서 그나마 건져 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바로 악당 '캑터스 빌'을 연기한 폴 러드의 변신이다. 우리에게는 앤트맨이나 유쾌하고 선한 이웃의 이미지로 익숙한 그가, 콧수염을 기른 채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서늘한 폭력을 행사하는 비열한 악당으로 분한 모습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다. 엉성한 각본 속에서도 홀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의 연기 변신만큼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값을 하는 요소다.


 

"감독이 《소스 코드》 감독이었구나. 어쩐지 내공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쉽게도 그게 다다. 불친절한 영화. 왜 2시간이 넘어가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레오의 폭주 원동력이 너무 사소하게만 보인다. 폴 러드의 연기 변신만큼은 볼만 했음."

 

아무리 훌륭한 세계관과 세트를 지어놓아도, 그 안을 채우는 알맹이가 부실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물이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감독의 전작들에 대한 의리로 억지로 끝까지 버텨낸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시각적 공해이자 아까운 2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 물리 매체 수집가의 덧붙이는 기록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된 덕분에(?)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4K나 블루레이 같은 물리 매체로 정식 발매되지 않았다. 화려한 사이버펑크 도시의 색감 자체는 고해상도 디스크로 볼 만한 시각적 가치가 있었을지 모르나, 이런 알맹이 없는 서사를 위해 내 소중한 지갑을 열고 장식장의 공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물리 매체 수집가에게는 차라리 다행스러운 미발매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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