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편식을 하지 않는 잡식성 시네필의 삶이란 때론 가혹하다. 수많은 명작과 숨은 수작들을 발굴하는 기쁨 이면에는, 이따금씩 예고편에 속아 귀중한 2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 [산업 폐기물 처리장] 카테고리의 영광스러운(?) 첫 번째 폐기물로 등록될 이 러시아산 SF 영화, 《제미나이: 지구 최후의 날 (2022)》이 바로 그 대참사의 현장이다.

뜬금없는 상황, 그리고 진짜 '눈물 나오는' 연기력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면 할리우드 못지않은 우주 탐사 SF 스릴러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불과 십여 분만 지나면, 관객은 이 영화의 정체가 화려한 CG로 포장된 속 빈 강정임을 깨닫게 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황당한 전개다. 인물들의 행동에는 전혀 개연성이 없고, 위기 상황은 아무런 빌드업 없이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온다. 여기에 더해, 이 엉성한 대본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주선에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돌아다니며 승무원들을 썰고(?) 다니는데, 공포에 질려야 할 배우들의 표정과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 톤은 몰입도를 저 우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화룡점정: 이 모든 난국을 수습하려는 기적의 내레이션 (※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가 단순한 망작을 넘어 전설적인 폐기물로 남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결말부의 내레이션'에 있다.
영화 후반부, 사실 우주선에 나타난 괴물은 외계인이 아니라 승무원 중 한 명(스티븐)이 정체불명의 물질과 결합해 변이한 것이라는 진부한 설정이 밝혀진다. 결국 스티브는 과거 지구에서 사망하고, 에이미는 그의 아이를 낳아 인류를 구원하지만, 모선에 남은 조종사의 결말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
이때 뜬금없이 장엄한 척하는 내레이션이 깔리기 시작한다. 앞선 90분 동안 온갖 개연성 파괴와 엉성한 괴수물로 관객의 인내심을 테스트해 놓고, 마지막 1분 동안 갑자기 "우리는 사랑과 희망으로 인류의 미래를 구했다"는 식의 철학적이고 거창한 메시지를 던지며 영화를 포장하려 드는 것이다. 쓰레기통에 억지로 예쁜 포장지를 씌우려는 듯한 이 뻔뻔한 내레이션이야말로, 이 영화가 선사하는 '황당함'의 진정한 화룡점정이다.

"지구의 최후가 오기 전에 내 인내심의 최후가 먼저 찾아왔다."
가끔은 이런 영화도 봐야 우리가 평소에 수집하는 물리 매체 속 명작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에게 깊은 원한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과감히 패스하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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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 명작 재해석] 블러드 심플 추천 – 모두가 명작이라는데, 난 왜 불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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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 #9 – [고전 공포 회고] 공포의 묘지 – 그 시절에는 공포, 지금은 곤란
· 스티븐 킹 원작, 1980년대 감성의 고전 공포영화.· '묘지'의 잘못된 철자조차 작가적 의도가 엿보인다.· 디스크러버 기준 평: 향수용 ‘중하’. 감정보단 시대성으로 감상 권장.· 4K 타이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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