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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쏟아지는 매끈한 판타지 영화들을 보다 보면, 가끔 입안에 모래가 씹히는 듯한 거칠고 투박한 진짜배기 '검과 마법(Sword & Sorcery)'의 세계가 그리워진다. 그럴 때 장식장에서 주저 없이 꺼내 드는 타이틀이 바로 존 밀리어스 감독의 1982년작, 《코난: 바바리안》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거대한 육체를 세상에 각인시킨 이 전설적인 서사시를 고화질 물리 매체로 다시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옛날 영화를 복습하는 것 이상의 물리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화면을 뚫고 나오는 '야만의 질감'

이 영화를 고화질 블루레이로 재생했을 때 가장 먼저 압도당하는 것은 1980년대 특유의 굵직한 필름 그레인(Film Grain)이다. 화면 전체에 자글자글하게 깔린 이 입자감은 노이즈가 아니라, 코난이 걷는 황량한 사막의 모래바람 그 자체다.

 

지금처럼 그린 스크린 앞에서 매끈하게 합성된 CG 괴물이나 마법이 아니다. 철갑을 부딪치며 튀는 불꽃, 세트장의 투박한 질감, 특수분장으로 빚어낸 기괴한 크리처들, 그리고 주인공의 근육 위로 흐르는 진짜 땀방울까지. 고화질로 복원된 이 아날로그 효과들은 CG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야만적인 생동감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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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덩이와 살덩이가 부딪히는 묵직함

액션의 결도 다르다. 요즘 영화들처럼 화려하고 날렵한 검술 대신,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무식하게 크고 무거운 쇳덩이를 휘두른다. 칼날이 적의 살갗을 파고들 때의 그 둔탁하고 무거운 타격감은, 존 밀리어스 감독 특유의 마초적인 연출과 결합해 화면 밖으로 묵직한 피비린내를 전달한다.

바질 폴두리스의 장엄한 북소리

그리고 이 모든 야만성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바질 폴두리스(Basil Poledouris)의 압도적인 오리지널 스코어다. 메인 테마의 그 비장하고 거대한 북소리와 모루를 내리치는 듯한 쇳소리가 홈시어터를 웅장하게 울릴 때, 방구석은 순식간에 하이보리아 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변한다.


 

"검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크롬 신께서 너를 발할라에서 내쫓으실 것이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그 원초적인 에너지는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책장에 꽂힌 매끈한 스틸북들 사이에서, 이 묵직하고 거친 타이틀은 판타지 영화의 잃어버린 야성을 증명하는 훌륭한 마스터피스로 영원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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