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만 알던 영화, 본 뒤 며칠을 괴롭힌 여운
· 인간승리 공식을 비껴간 사실적 현실 서사
· 출생 미신고·조혼·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
· 자인–라힐–요나스: 돌봄과 책임의 윤리
· ‘빈곤 포르노’ 논쟁에 대한 나의 생각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는 이름만 많이 들어왔기에 낯설지 않았다. 문제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막연히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인간승리를 이루는 아이의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을 괴롭히는 여운이 남았다.
처음엔 흔히 볼 수 있는 서사의 틀을 떠올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천재적 재능을 지닌 소년, 그리고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키다리아저씨 같은 인물이 나타나 소년을 세계적인 인물로 키워내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가버나움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영화는 인간승리 대신, 가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담아냈고 그 사실이 더 큰 충격과 울림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 주인공 자인은 부모를 고발한다. 이유는 “자신을 태어나게 했기 때문.” 처음엔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무책임하게 낳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아 자식을 그림자 같은 존재로 살아가게 만드는 부모. 자인은 그런 현실 속에서 가장 아끼던 여동생 사하르의 죽음을 계기로 집을 뛰쳐나오고, 불법 이민자인 라힐과 그녀의 아기 요나스를 만나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라힐이 체류증 문제로 구금되며 자인은 요나스를 홀로 돌보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끝에 브로커에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인의 책임감과 애정은 오히려 어른들의 무책임함을 더 적나라하게 비춘다.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자인의 나이를 확인하기 위해 치아 검사를 하는 장면—출생신고가 없어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아이, 그 몰골은 난민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처음으로 밝게 웃는 눈빛은 잊기 힘든 이미지로 남는다. 나 역시 아기를 키우는 부모라서 그런지, 자인이 요나스를 돌보는 장면들에서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이 작품을 두고 일부에서는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을 한다. 관객이 상대적 우월감에 안도하며 동정심을 소비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르게 느꼈다. 오히려 영화는 레바논 사회에 만연한 조혼, 대책 없는 출산, 난민 문제 같은 구조적 문제들을 환기시키고, 잔혹한 현실을 강제로라도 마주보게 한다. 실화는 아니지만 실제와 다를 바 없는 현실을 예술로 끌어올린, 사회적 고발 영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버나움은 결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그리고 부모라면, 반드시 한 번은 봐야 할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가난한 소년의 고통을 그린 작품을 넘어, 실제 레바논 사회와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 영화다. 감독 나딘 라바키는 촬영 전 수년간 레바논 빈민가를 취재하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냈고, 영화 속 대부분의 배우들도 실제 난민이나 비전문 배우들이다. 덕분에 다큐멘터리 같은 리얼리티와 강렬한 현실감이 살아난다.
특히 주인공 자인을 연기한 소년도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영화 제목 ‘가버나움(Capernaum)’ 은 성경에 등장하는 도시 이름이자, 혼돈과 무질서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제목을 통해 부모와 사회의 무책임 속에 방치된 아이들의 세계가 곧 ‘혼돈의 땅’임을 비유적으로 드러냈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레바논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아동인권과 난민 문제를 환기시킨 상징적인 작품이 된 것이다.
또한 영화 이후 현실에서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자인을 연기한 소년 배우와 가족이 실제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노르웨이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영화가 허구를 넘어 현실을 바꾸는 작은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결국 <가버나움>은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동권리와 난민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단순히 가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과 부모가 되는 것은 다르다”는 명제를 던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무겁지만 반드시 직시해야 할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동정이 아니라 직면. 단정이 아니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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