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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드윅 보스만이 주연을 맡았으니 뭔가 다르겠지, 하는 기대를 잠시 접어두자. 이 영화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릴러의 흔한 'B급 레시피'를 충실하게 따른다. 남아공에서 온 제이콥 킹이 LA 뒷골목으로 사라진 여동생의 복수를 한다는 플롯? 와, 정말 신선하다. 아마 1990년대 비디오 가게에서도 이보다 더 뻔한 줄거리는 찾기 힘들었을 거다.

 

감독은 제이콥 킹을 '말이 없고, 냉철하며, 갑자기 나타나 모든 악당을 때려눕힐 수 있는 슈퍼 히어로'처럼 묘사한다. 아니, '블랙 팬서' 이전에 그냥 '무표정한 흑인 아저씨'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던 건가 싶다. 보스만은 그가 가진 모든 카리스마를 쏟아붓지만, 각본은 정말이지 게으르다. 제이콥의 복수 과정은 '사건 발생 → 킹이 화남 → 누군가 맞는다' 이 세 단계를 102분 동안 반복한다. 배우의 잠재력 낭비죄로 감독은 영창에 가야 한다. 킹(King)은 왔지만, 왕관 대신 클리셰를 썼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특기는 러닝타임을 세 배로 늘리는 마법이다. 제작진은 분명 이 영화를 '슬로우 번(Slow Burn)' 스릴러라고 불렀을 거다. 하지만 이는 '슬로우 번'이 아니라 '그냥 느려서 관객이 타들어 가는 영화'에 가깝다.

 

긴장감은 마치 흐물거리는 국수처럼 힘이 없고, 미스터리는 이미 팝콘을 뜯는 순간 다 풀리는 수준이다. 주인공은 뭔가 심오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관객은 '도대체 저 양반은 언제쯤 움직일까?'를 생각하며 하품만 한다. 이 영화의 102분은 체감상 군대에서 말년 병장 때 시간을 세는 것만큼 길게 느껴진다. 서스펜스는 모르겠고, 불면증 환자에게는 강력히 추천한다. 수면제보다 확실하다. 어떻게 102분이 180분처럼 느껴질까. 이 영화는 '시간 왜곡'현상을 보여준다.

 

LA를 어둡고 칙칙하게 찍어 놓으면 '우리는 깊이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네온사인 대신 곰팡이 핀 벽만 잔뜩 보여주니 분위기는 음울하다. 좋다. 그런데 그게 다다. 강력한 영상미가 빈약한 스토리를 구원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제이콥 킹이 여동생에게서 받은 '지옥에서 온 전언'이라는 게, 알고 보니 'LA는 돈 많고 권력 있는 놈들이 세상을 주무르는 개판이다'라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면 좀 허탈하지 않나. 복수를 위한 복수, 폭력을 위한 폭력만 남발할 뿐,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심오한 주제는 어디론가 증발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라이브러리의 깊은 바닥,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 목록에서 조용히 썩어갈 운명이다. 남는 건 L.A.의 우중충함뿐이고 메시지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채드윅 보스만의 광팬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과감하게 스킵하는 게 맞다. '지옥에서 온 전언'이라는 제목에 낚여 클릭하는 순간, 당신은 소중한 102분을 '지루함'이라는 지옥에 바치게 될 거다. 킹은 LA의 악당들을 응징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영화는 관객의 시간을 지키는 데 처참하게 실패했다. 복수는 성공했어도, 작품성은 지옥으로 갔다.

 

추천 관객: 체감 런타임 3시간짜리 영화를 보며 인내심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사람.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다.

 


"블랙 팬서가 등장해도 하품을 막을 수 없는,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선보인 '수면 유도제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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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봉인(Det sjunde inseglet, 1957)>: 쩐다, 이 흑백 화면 속에 인생과 죽음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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