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더 바티칸> (The Pope's Exorcist, 2023)은 실존했던 바티칸의 수석 구마사제 가브리엘레 아모르트 신부의 회고록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그러나 줄리어스 에이버리 감독이 그려낸 영화 속의 구마 세계는 심리적 고뇌를 중심으로 했던 전통 오컬트 호러의 문법을 과감히 탈피한다. 이 영화는 러셀 크로우가 연기하는 아모르트 신부를 신앙의 딜레마와 악마의 물리적 위협을 특유의 유머와 카리스마로 제압하는 '퇴마 액션 히어로'로 구축하는 데 모든 서사를 집중시킨다.

전통적인 구마 영화, 예를 들어 <엑소시스트>(1973)의 메린 신부나 <컨저링> 시리즈의 워렌 부부 등은 언제나 깊은 신앙적 회의나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고뇌하는 성직자/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공포는 외부의 악마뿐 아니라 내면의 죄책감과 불완전한 신앙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의 아모르트 신부는 이 전형성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러셀 크로우의 아모르트는 스쿠터를 타고 로마를 누비고, 구마 의식 중 악마에게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며, 의식 직전에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는 '규범 밖의 사제'이다. 그의 대사는 유머와 단호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교황청 최고위층을 상대로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이러한 캐릭터 설계는 영화의 장르적 목적을 명확히 한다. 즉, 관객에게 공포와 불안을 주입하는 대신, 강력한 주인공이 모든 위협을 해결할 것이라는 '장르적 안정감'과 '대리 만족적 쾌감'을 선사하겠다는 의도이다. 아모르트 신부는 신앙적 고뇌의 상징이 아닌, 악의 세력을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적인 능력자의 면모를 부각시키며 구마 영화의 주인공을 '액션 히어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단순한 구마 과정을 넘어, 역사적 미스터리 스릴러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스페인의 산 세바스티안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구마 의식은, 표면적인 악마 빙의를 넘어 바티칸이 수세기 동안 숨겨온 '죄의 근원'과 연관된 비밀을 파헤치는 탐색 과정과 결합된다.



악마 '아스모데우스'가 단순한 빙의가 아닌, 과거의 종교적 트라우마와 바티칸의 역사적 오점을 이용하여 사제들을 유혹하고 공격하는 방식은 이야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구마 대결은 기도나 영적인 힘보다는 지하 봉인을 탐색하고 물리적인 방해물을 헤쳐나가는 일련의 액션 시퀀스로 전개된다. 빙의된 소년의 신체 변형이나 악마의 공격 묘사 역시 <컨저링> 이후 유행한 CG 기반의 역동적인 시각 효과를 활용하며, 고전적인 심리적 공포 대신 물리적 대결의 긴장감을 주입한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오컬트 호러가 관객층을 확장하기 위한 상업적 시도로 평가된다. 전통적인 구마극이 주는 무겁고 심각한 주제 의식이 부담스러운 대중에게, 러셀 크로우라는 스타 파워와 히어로 서사의 안정감을 결합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명확한 비평적 한계를 야기한다. 영화가 '퇴마 히어로물'로서의 오락성을 확보하는 대가로, 구마 의식이 본래 다루어야 할 윤리적 딜레마, 악마의 존재론적 의미, 그리고 신앙의 진정한 가치 등 심도 있는 주제들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영화는 결국 아모르트 신부와 동료 신부의 '버디 무비' 형태를 취하며, 속편에서 더 많은 '미해결 사건'을 해결할 것을 예고하는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이 영화가 한 편의 완결된 예술 작품이기보다는, 흥행성 높은 오컬트 액션 프랜차이즈의 시작점으로서 기획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신앙의 고뇌 대신 스쿠터를 탄 액션 히어로 신부를 내세워, 전통 오컬트 호러를 역사 미스터리와 결합한 상업적 프랜차이즈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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