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자이트린 감독의 《비스트》는 기후 변화와 문명의 경계 바깥, 남부 늪지대의 고립된 섬 '욕조(Bathtub)'를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거대한 관계를 독창적인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영화가 내뿜는 날것 그대로의 시각적 텍스처와 신화적 서사는 화면이 암전되고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간 뒤에도 관객에게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서정시의 이면에는 위대한 우주의 순리보다 더 차갑고 서늘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한 아이의 슬프고도 단단한 현실이 숨어있다.

줄거리: 물에 잠겨가는 섬, 그리고 세상의 끝에 선 6세 소녀
남부 늪지대의 외딴섬 '욕조'에서 여섯 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는 야생의 자연을 닮은 거친 아버지 윙크(드와이트 헨리)와 단둘이 살아간다. 아버지는 딸이 험난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일부러 엄하고 거칠게 기르지만, 그의 몸은 이미 심각한 병으로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던 중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엄청난 폭풍우와 함께 섬이 통째로 물에 잠기기 시작하고, 고대의 거대한 야수들인 '오로크(Aurochs)'마저 빙하 속에서 깨어나 깨어진 세상의 균형을 증명하듯 섬을 향해 돌진해 온다. 허쉬파피는 범람하는 물과 다가오는 야수들, 그리고 죽어가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파국 앞에서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위태로운 사투를 시작한다.

결말: 야수와 마주한 눈빛, 그리고 남겨진 자의 단단한 발걸음 (※ 스포일러 주의)
허쉬파피는 환상 속에서 마주하던 고대의 야수 오로크들이 마침내 눈앞에 당도했을 때, 도망치는 대신 그들의 거대한 눈을 똑바로 응원하며 당당히 맞선다. 소녀의 단단한 무릎과 외침 앞에 거대한 야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허쉬파피는 마침내 내면의 공포를 극복해 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다. 허쉬파피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마지막 심장 소리를 들은 뒤, 남부의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시신을 보트에 태워 불을 붙여 물 위로 떠나보낸다. 소중한 모든 이들이 떠나가고 폐허가 된 섬 위에서, 허쉬파피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물에 잠긴 길을 단단하게 걸어 나가는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묵직한 막을 내린다.

우주의 조각이라는 거창함을 배반하는, 외로움이라는 무거운 현실적 타격감
평단은 이 영화를 두고 흔히 '거창하게 우주를 이루고 있는 한 조각으로서 험난한 세상에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작고 소중한 한 꼬마의 위대한 성장담'이라 부르며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스크린 너머의 서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정작 시네필의 마음은 그러한 거시적인 찬사보다 도리어 험난하고 잔인한 세상에 겨우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홀로 던져진다는 비정한 현실에 먼저 닿게 된다. 자신의 몸과도 같았던 소중한 존재들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곁을 떠나버린다는 그 근원적인 상실의 사실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는 것이다.
영화가 스토리를 전개할 때 자아내는 먹먹함과 가슴 아픈 정서는 스크린을 뚫고 관객의 숨통을 조여온다. 완전한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허쉬파피' 역을 신들린 듯 소화해 낸 쿠벤자네 왈리스의 압도적인 연기력은 이러한 정서적 타격감에 결정적인 방점을 찍는다. 그녀의 눈망울과 서툰 몸짓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기획한 '성장'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은, 혼자 남겨진 자의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날것의 현실을 더 아프게 목도하도록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가슴 위에 무거운 돌 하나가 얹어진 것처럼 먹먹한 불감증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우주의 순리라는 화려한 스펙터클로도 결코 가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외롭고도 차가운 현실을 뼈저리게 박제해 낸 마스터피스다.

"어찌됐든 나는 거창하게 성장과 우주를 이루고 있는 한 조각으로써 험난한 세상에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작고 소중한 한 꼬마의 모습보다는 험난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다는 것과 자기 몸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들이 떠나버린다는 사실에만 집중이 될까. 또 그런 상황들이 왜 그렇게 먹먹하고 가슴아프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아마도 완전 애기지만 허쉬파피 역을 연기한 쿠벤자네 왈리스의 연기가 단연 한 몫을 한 것일 수도) 성장이라는 거창함 보다는 외로움이라는 현실이 더 와 닿았고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가 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외피 속에 감추어진, 세상의 끝에 홀로 던져진 유년기의 가장 비정하고 서글픈 풍경. 위대한 대자연의 대서사시를 관통해 시네필의 가슴속에 끝내 무거운 돌 하나로 가라앉는, 쿠벤자네 왈리스의 압도적이고 먹먹한 눈빛의 잔상.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어린 허쉬파피의 단단한 발걸음 뒤로 불타는 보트가 늪지대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보며 플레이어를 종료했다. 선댄스가 발굴한 이 독창적인 인디 시네마는, 대자연의 웅장한 신화적 연출 속에서도 결국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가장 원초적인 상실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대단히 밀도 높은 텍스처로 전이시킨다. 거창한 문학적 수사나 스펙터클한 성장 문법으로 포장하려 해도, 여섯 살 소녀의 무너진 세계가 자아내는 현실적인 먹먹함은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정서적 타격감을 남기고야 만다.
이 깊고 무거운 철학적 여운을 간직한 채, 화면이 암전된 후에도 오랫동안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들의 안식처인 [크레딧이 올라가도] 카테고리에 이 타이틀의 문패를 올린다. 비전문 배우들의 날것 그대로의 아우라와 벤 자이트린 감독의 경이로운 연출이 결합한 이 작품은, 성장의 위대함보다 홀로 남겨진 자의 외로움이라는 무거운 돌을 가슴에 얹어주며 시네필의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두고두고 곱씹을 묵직한 영혼의 파편으로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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