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오노르 푸리아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평생을 마초남으로 살던 주인공이 남녀의 성 역할과 권력 구조가 완전히 뒤바뀐 미러링 세계관에 떨어지며 벌어지는 프랑스발 풍자 코미디 시네마다.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을 역지사지의 시선으로 비튼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출발하여, 관객에게 인간 존엄과 성별 권력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신선한 소재가 주는 장르적 쾌감을 정교한 서사로 이어가지 못한 채, 후반부로 갈수록 메시지 훈계에만 집착하며 시네필에게 짙은 허무함과 짜증을 유발하는 용두사미의 전형을 보여준다.

줄거리: 마초남의 수난기, 완벽하게 뒤집힌 미러링 세계 속으로
평생 여성들을 시선의 대상이자 유혹의 객체로만 취재하며 마초적인 삶을 영위하던 다미앵(빈센트 엘바즈). 어느 날 길을 걷다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 그는, 자신이 알던 상식과 성 역할이 180도 뒤집힌 기묘한 평행 세계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여성이 사회의 모든 권력과 기득권을 쥐고 마초적인 텍스처를 뿜어내는 '여초 사회'였다. 다미앵은 졸지에 제모를 강요당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야 하며, 길거리 여인들의 생경한 시선 강간과 성희롱에 위축되는 약자의 위치로 전락한다. 비서로서 권력자이자 성공한 작가인 알렉산드라(마리 소피 페르단)를 보필하게 된 다미앵은, 남성 인권 운동에 동참하는 동시에 그녀와 묘한 감정적 대립각을 세우며 뒤바뀐 세계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결말: 서로 다른 세계를 마주한 연인, 무책임하게 닫히는 열린 결말 (※ 스포일러 주의)
다미앵은 알렉산드라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권력 구조의 이면을 탐색하지만, 결국 여초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다. 격렬한 다툼 끝에 다시 한번 머리에 충격을 받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번에는 다미앵이 아닌 알렉산드라가 다미앵이 원래 살던 '남성 중심의 진짜 현실 세계'로 튕겨 나가게 된다. 여초 사회의 지배자였던 알렉산드라가 도리어 현실의 남초 사회로 떨어져 생경한 시선 강간과 억압, 위축감을 느끼는 클라이맥스 반전은 미러링의 완성으로서 나름의 연출적 쾌감("오!")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한 이후, 진짜 현실에서 어떻게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를 풀어갈지 서사적인 뒷수습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남주의 외침과 함께 급하게 화면이 암전(Blackout)되며 끝나버리는 무책임한 열린 결말을 택하며 막을 내린다.

'고기 찌꺼기 궤변'의 엉터리 가설과 메시지 훈계 도구로 전락한 창작자의 게으름
이 영화는 소재의 신선함에 비해 밑천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난 아쉬운 작품이다.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극 중 등장하는 '고기 찌꺼기 궤변'의 과학적·인류학적 오류다. "과거 남자가 사냥해 온 고기를 안 주거나 찌꺼기만 줘서 여자가 왜소해졌다"는 식의 극 중 대사는 현대 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된 근거 없는 가설이자 뇌피셜에 불과하다. 진화학적 팩트로 볼 때 남녀의 체구 차이는 호르몬과 성선택에 따른 유전적 결과(성적 이형성)이며, 영양이 풍부한 현대 사회에서도 남녀의 골격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인류학적으로도 원시 수렵채집 사회에서 여성은 채집을 통해 부족의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식량 주권을 쥐고 있었고, 사냥해 온 고기 역시 특정 성별이 독점하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보편적 관습이었다. 영화는 얕팍한 지식으로 선동하는 남성 인권 운동가 캐릭터를 풍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엉터리 대사를 배치했으나, 결과적으로 극의 뼈대를 헐겁게 만드는 악수가 되었다.
나아가 과거의 웰메이드 풍자 영화들이 역지사지를 통해 대중에게 유쾌하고 건전한 환기를 주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풍자의 본질을 변질시켰다. 최근 PC주의와 특정 젠더 진영의 비논리적이고 극단적인 주장, 그리고 이를 표 계산에만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행태에 대중들이 강한 학습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관객이 아무리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해도 색안경을 낀 채 방어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씁쓸한 관람 환경이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이러한 피로감을 정교한 서사로 해소해 주지 못한다.
감독인 엘레오노르 푸리아는 2010년 10분짜리 단편 《주차된 여인》의 성공에 취해 이를 90분짜리 장편으로 무리하게 늘렸고, 이후 리메이크작들까지 똑같은 미러링 문법만 복제하고 있다. 서사적 완성도나 정교한 각본의 고뇌 없이, 오직 자극적인 젠더 갈등 소재와 노이즈 마케팅, 그리고 특정 진영의 환호(메시지)에만 기대어 평생을 우려먹는 창작자의 게으른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잡한 각본을 마무리할 역량이 부족해 남주의 외침과 함께 암전으로 도망쳐버린 무책임한 용두사미 엔딩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기대한 관객에게 "이딴 영화가 다 있나" 싶은 허무함과 짜증을 유발할 뿐이다.
기발한 젠더 미러링의 상상력과 후반부 반전의 카타르시스로 출발했으나, 서사적 뒷수습을 포기한 채 암전으로 도망쳐버린 무책임한 용두사미 시네마. 인류학적 오류가 가득한 얕팍한 대사와 메시지 훈계에만 집착하는 창작자의 게으름 탓에, 장르적 풍자의 유쾌함 대신 허무함과 젠더 피로감의 색안경만을 덧씌운 넷플릭스 스트리밍의 아쉬운 파편.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남주의 다급한 외침 끝에 찾아온 어이없는 암전, 그리고 넷플릭스 인터페이스 특유의 다음 콘텐츠 추천 팝업이 뜰 때 깊은 한숨과 함께 플레이어를 닫았다. 이번 상영은 기발한 사회적 미러링의 텍스처를 기대하고 리모컨을 들었다가, 각본의 고뇌를 생략한 채 메시지 주입에만 골몰한 창작자의 게으른 아카이브를 목도한 씁쓸한 기록이다. 초반부 역지사지의 설정이 주던 참신함과 후반부 성별 권력이 뒤바뀌는 짧은 반전의 순간만큼은 눈길을 끌었으나, 서사적인 수습 없이 무책임하게 닫아버린 열린 결말의 태도는 시네필의 라이브러리 안에서 깊은 짜증과 허무함을 남긴다.
비록 기발한 소재의 신선함이 주는 장점은 존재할지언정, 드라마로서의 정교한 매듭 없이 오직 특정 메시지의 훈계 도구로만 변질된 용두사미의 한계가 명확하기에 이 타이틀은 랙의 가장 엄격한 판단에 따라 [크레딧이 올라가도] 카테고리에 역설적으로 수감한다. 인간 본질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 대신, 복잡한 젠더 이슈를 자극적인 노이즈 마케팅과 엉터리 가설로 풀어냈을 때 도달하는 거장과 태만의 한계점으로서 라이브러리 구석에 반면교사의 기록물로 보존해 둘 것이다. 기발함 뒤에 숨은 서사의 빈곤함에 짜증이 밀려왔던 깊은 밤의 재생을 텁텁하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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